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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1 / 25
옛 서울시장 공관 리모델링
       

옛 서울시장 공관 리모델링

 

원오원아키텍스건축사사무소

 

최욱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건축설계 및 이론을 공부했고, 맥도웰 콜로니(미국)와 발파라이소 파운데이션(스페인)에서 펠로우십을 받았다. 현재 원오원아키텍스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객원교수다. 2006년 베니스비엔날레, 2007년 선전-홍콩비엔날레에 초대되었으며 2013년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 개인전 를 열었다. 대표작인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2013 DFAA(Design For Asia Awards) 대상을 수상했고,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은 2014 김종성 건축상을 수상했다.

 

유적을 대하는 태도
전봉희
(서울대학교 교수)

유적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19세기의 건축이론가 존 러스킨(1819~1900)과 비올레 르 뒥(1814~1879)의 주장은 크게 갈린다. 존 러스킨은 복원은 파괴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며 모든 가능한 추정적 복원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던 데 반하여, 비올레 르 뒥은 양식적 완전성의 회복을 위한 창조적 재구성에 적극적이었다. 이후 이 두 가지 이론은 역사적 건조물의 복원을 둘러싼 논쟁의 두 극점이 되어왔다. 하지만 더불어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다는 점이다. 이 시기가 되어서 비로소 고딕 유적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고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이때가 되어서 비로소 고딕 시대가 남긴 건축물은 더 이상 당대의 것이 아닌 유적이 되어버렸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20세기 전반기의 건축에 대한 보존 노력도 같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옛 서울시장의 공관을 리모델링한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의 작업은 두 가지 층위의 유적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조의 한양도성이고, 다른 하나는 1940년경에 완공된 개인 주택이다. 이번 리모델링 작업을 통하여 드러난 지붕널에 뚜렷하게 쓰여 있듯, 원래의 건물은 1938년도에 생산된 제재목을 이용하여 지었다. 기록에 1941년부터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의 사장이 살았다고 하니 입주까지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 모양이다. 이 집은 해방 이후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다가 대법원장 공관과 서울시장 공관을 거쳐, 한양도성 복원사업에 맞물려 2013년부터 여러 해에 걸친 작업을 통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본관 건물을 전시장으로 재구성하는 것 외에 성벽에 면해 있는 부속 건물 일부를 헐어내고, 입구에 관리자의 공간과 장애인의 접근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을 갖추는 등의 작업이 공사에 포함되었다.

본관 건물을 전시장으로 재구성하는 것 외에 성벽에 면한 부속 건물 일부를 헐어내고, 입구에 관리자의 공간과 장애인의 접근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을 갖추는 작업이 공사에 포함됐다.

 

시에서 행하는 소규모 공사에 이름난 건축가가 참여하게 된 사정이 궁금했는데, 설계비를 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형식을 통하여 입찰의 방식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격 입찰을 통하여 설계자를 선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직도 공공 공사에는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이 딱하다. 이미 두 세기 전에 러스킨은, 우수한 장인의 작업을 보장하는 길은 동일 임금을 지급하는 길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동일한 임금 조건일 때 비로소 능력에 의한 평가가 가능하고, 능력이 부족한 장인은 도태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로 자본주의화가 덜 진행되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작품들 속에서 창의적인 디테일과 정교한 시공을 볼 수 있는 것도 역시 같은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간에 오랫동안 공관으로 사용되면서 개축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모습을 완전히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남아 있는 간살이를 통해서 볼 때, 현관과 홀을 갖추고 이에 연접한 입식의 방들이 중심부에 있고, 안쪽과 이층으로는 엔가와(緣側)와 토코노마(床の間)를 갖춘 좌식의 다다미방들이 연접한 일본의 근대 절충식 주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해방 이후의 변화는 생활 공간 측에 집중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리모델링 전의 마지막 시기의 사진 자료를 보면, 툇마루 공간과 비슷한 엔가와는 복도로 바뀌었고, 토코노마는 막아서 벽장으로 사용하며, 부엌과 욕실, 그리고 침실 등이 모두 근대적 설비의 도입으로 바뀌어 있다. 어디가 어떻게 바뀐지 모르는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건축가는 이 집이 서 있는 자리와 이 집의 골격을 이루는 구조,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다.
이 집이 자리한 장소는 혜화문에서 이어 나오는 한양도성이 북악산을 향하여 능선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초입이다. 바로 옆으로는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오래된 고갯길이 성벽을 자르고 지나간다. 성안의 마지막 집이고, 언덕 아래의 혜화동 로터리에서 시작된 주택가가 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뒷담은 성벽으로 대신한다. 땅에 대한 고려는 집을 길게 자르는 종단면도에서 잘 드러난다. 서쪽으로부터 이층으로 된 부분과 단층으로 된 부분, 그리고 마당과 그 건너의 성벽에 이어지는 경로를 연속된 축으로 설정하고, 점차 스케일이 작아지면서 높이도 낮아지고 시선이 연결되게 계획하였다. 특별히 조작을 많이 가한 곳은 과거 주방 등이 있던 1층 동쪽 끝부분의 바닥을 들어내고 흙바닥을 노출시켜서 실내의 실외 공간을 꾸민 부분이다. 이를 통해 이 집에서 중요한 것은 바닥이고, 이 바닥의 아래에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음을 관람자에게 넌지시 이야기한다. 그래도 의아해하는 관람객들을 위해서는 맞은편에 낮은 창을 내어 건너편의 성벽을 힐긋 보이게 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달았다.

 

계단실이 있는 홀 부분의 2층 바닥을 덜어내 아래위 층에 나누어져 있는 전시 공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묶었다.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는 두 가지 층위의 유적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조의 한양도성이고 다른 하나는 1940년경에 완공된 개인 주택이다.

 

집의 골격에 대해선, 임의로 달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털어내고 본채를 살린 다음, 그 본채에서도 다시 기둥과 구조벽, 그리고 상부의 지붕틀을 보존하는 대신, 벽면과 바닥면, 천장면을 적극적으로 손대어 새로운 용도에 맞추었다. 1층에서 동쪽 끝의 바닥을 덜어내었다면, 중앙부 구 접객 공간에서는 계단실이 있는 홀 부분의 2층 바닥을 덜어내었다. 이를 통해 아래위 층에 나누어져 있는 전시 공간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묶을 수 있었다. 필요에 따라 창의 틀만 남기고 덧벽을 댄다든지, 반자를 털어내고 천장을 노출시킨다든지 하는 것도 전시장으로서의 용도에 맞춘 것이다. 주택으로 지어진 사적 공간의 스케일을 공적 공간의 그것에 맞추어 조정한 작업으로 보인다.
그래서 만들어진 공간은, 최욱의 것이 되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적산가옥이 최욱의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가히 놀라운 변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데, 그러고 보면 기시감이 있다. 어쩌면 건축가의 작업 이력에서 전기라고 할 수 있는 삼청동의 한옥 작업이 그랬다. 삼청동의 한옥이야 그게 그거라고 할 만큼 표준화되어 있어서 굳이 안 가 봐도 실체를 짐작할 수 있는데, 그가 리모델링한 한옥은 한옥의 공간감 전체를 흔들어놓을 만큼 커다란 울림이 있었다. 몇 년 후에 선보인 두가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가지 그의 작업은 한국 건축을 공부하는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어 오랫동안 생각 속에 남아 있었다. 짐작하기론 역시 바닥에 그 비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서양인 건축주의 입식 생활을 위하여 또 때론 그와 상관없이 좌식의 공간을 유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는 두 번의 작업에서 모두 바닥을 적극적으로 손대고 있다. 그가 만든 바닥은 미끄러질 듯 평탄하여 대지와 인공의 공간을 수평으로 가른다.
바닥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에게 창은 ‘풍경을 보기 위한 디테일’이고, 벽은 ‘빛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며, 디테일은 ‘형태의 완성도가 아닌 감성의 질감’이다. 이 작업에서 그는 건축가란 같은 악기로 같은 곡을 연주하면서도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자와 같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적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그의 작업이 비올레 르 뒥과 다른 점은 작업의 목표 시점을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양식적 완전성을 향한 회귀라기보다는 다양한 시간적 층위를 포용하고 그것들을 체험하게 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양식의 복원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며, 오늘의 머리와 손과 마음으로 유적과 맞선 결과물이다.

 

‘ ’ 인용부호는 건축사무소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에세이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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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동 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4년 하버드엔칭연구소 방문연구원, 2010~11년 풀브라이트방문연구원(U.C. 버클리)을 역임했으며 현재 목천건축아카이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서울대박물관, 서울학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내 응접실 리모델링 전과 후의 모습. 건축가는 필요에 따라 창의 틀만 남기고 덧벽을 대거나, 반자를 털어내고 천장을 노출시켜 집에서 전시장으로 공간을 탈바꿈시켰다.


건축가에게 창은 ‘풍경을 보기 위한 디테일’이고, 벽은 ‘빛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며, 디테일은 ‘형태의 완성도가 아닌 감성의 질감’이다.


 

설계: (주)원오원아키텍스건축사사무소(최욱)
설계담당: 최진석, 황선영, 배익환, 윤희영
위치: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27-1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1,628.1㎡
건축면적: 355.63㎡
연면적: 517.25㎡
규모: 전시동 - 지상 2층, 지하 1층 / 사무동 - 지상 1층 / 안내동 - 지상 1층
건폐율: 21.84%
용적률: 30.75%
구조: 전시동 - 목구조(일부 철골보강) / 사무동 - 목구조 / 안내동 - 조적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외단열 미장 마감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도장, 목재
구조설계: (주)은구조기술사사무소
시공: 현도종합건설(주)
기계설계: 주성엠이씨기술사사무소
전기설계: (주)한길엔지니어링
설계기간: 2014. 9. ~ 2015. 4.
시공기간: 2015. 1. ~ 2016. 8.
건축주: 서울특별시 한양도성도감, (재)아름지기

 

진행 윤솔희 기자 | 사진 김인철 | 자료제공 (주)원오원아키텍스건축사사무소

 
tag.  건축 , 갤러리 , 최욱 , 서울시장공관 , 전시실 , 적산가옥 , 리모델링
       
월간 SPACE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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