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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10 / 31
과거로부터 온 편지 (2)_윤승중
       

21세기 건축: 전체를 보는 태도

 

윤승중 ((주)원도시건축 명예회장)


윤승중은 (주)원도시건축과 한국건축가협회의 명예회장이다. 1937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부터 김수근건축연구소 계획실장,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도시계획부장을 거쳐 1970년 원도시건축 연구소를 설립했다. 1973년부터 변용과 파트너십 체제로 운영하며 한일은행본점, 제일은행본점, 성균관대학 수원캠퍼스, 포항제철 중앙연구소, 국토개발연구원, 조선일보사, 대법원 등 많은 건축상 수상작품을 설계했다.


「SPACE」200호, 윤승중의 '근대건축과 한국의 현대건축' 


To. 월간 「SPACE(공간)」 편집부

 

저는 1966년 11월 「SPACE」이 창간될 당시 옆에서 잠시 거들었던 연고로 현직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줄곧 열렬한 애독자였으며 남다른 애정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민간상업지이면서 건축전문지로 「SPACE」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6년전 1960년 11월호로 창간했으나 단 2호로 단명했던 「현대건축」이 최초의 건축전문지였지요. 이문보, 이민섭 등이 주도하여 대학 졸업 직후에 큰 사명감을 가지고 「현대건축」을 창간하게 되는데, 2호를 출간한 후 3호의 인쇄까지 마쳤으나 5・16 직후 강제 퇴장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대학동기였던 나는 다른 직장이 있어 표지 디자인과 본문삽화, 광고 디자인 등 먹으로 직접 그리는 일을 맡았는데 당시 인쇄소에서 사진식자도 도입하기 전이라 ‘現代建築’이란 표지제호를 직접 먹으로 그렸던 생각이 납니다. 이처럼 건축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던 터라 본격적인 체제와 조직으로 출발한 「SPACE」에 더욱 애착을 가졌지요.

   건축을 문화로 이해하는 사회적 인식이 거의 불모지였던 창간 당시에 건축과 도시를 연계하며, 선각자로서의 역할을 선언하고 출발한 「SPACE」가 이제까지 시대적 요구에 맞춰 몇 번의 변신을 보여주면서 50년의 긴 시간 동안 그 사명을 이어왔습니다. 처음 건축과 도시의 전문지로부터 점차 건축과 더불어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등 여러 예술 분야를 통합하여 예술을 통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노력, 그리고 예술 작업에서 실험정신과 창의성을 계발하는 두 가지 어려운 ‘이상’을 함께 추구하여 왔습니다. 또 근래에는 한국예술의 세계화를 지향하여 영문을 도입하고 국제적 지위를 가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20세기 초에 기능주의, 보편주의, 순수주의, 이상도시, 질서, 과학기술의 신뢰 등으로 표현되는 주장들을 내세운 모더니즘의 초기 거장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건축, 새로운 도시, 새로운 인간생활의 미래를 제시함으로써 건축과 사회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고 건축의 힘을 과시했지요. 그러나 현대의 과학문명을 기반으로 세계화되어 있는 모더니티는 지역성과 문화의 아이덴티티를 파괴하고 역사와의 단절을 심화하며 획일성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건축을 탄생시킨 초기 거장들이 점차 물러가면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모더니즘은 그 근본에서부터 강한 비판을 받으며 건축과 도시의 이상을 통한 사회개혁이라는 논리에 회의하게 되었고 지역적 특수성을 배제한 추상적, 보편적 방법으로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보게 되었지요.

   모더니즘 초기 아토미즘(atomism)에 입각한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엄격함에 대한 비판으로 또 다시 새로운 건축의 방향은 매너리즘적 경향으로, 또 건축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보려는 경향으로, 기억과 연상작용을 중요시하여 이미 구체화된 메타포를 사용하며, 의미의 이중성, 다중성을 중요하게 보며, 건축 개념을 확장하여 토속적인 것, 전통, 대중예술, 상업적 비속까지도 건축에 포함하려는 포용적인 태도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고의 영향으로 전후에 교육받은 건축가들에 의해 모더니티에 대치되는 팝아트적, 옵아트적 경향의 건축, 기계미학을 더 성숙시킨 하이테크적 건축, 또 생태주의적 건축 등 다양한 주장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건축의 다양성이 포스트 모더니즘, 레이트 모더니즘에서 해체주의까지 20세기 후반을 주도해왔습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탄생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요즘 우리 인류는 또 다시 혁명적인 큰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사물인식, 빅 데이터 등으로 대변되는 21세기 초반에 건축과 건축가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생각해봅니다. 후기 산업사회가 가져다 준 물질적 풍요, 그리고 디지털기술을 포함하는 하이테크놀로지는 우선 건축가들에게 더 많은 신소재와 새로운 공법을 제공하고, 또 크게 진화된 컴퓨터 프로그램들에 의해 자유롭게 상상력을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더하게 됨으로써 건축 구상에 여러 가지 새로운 가능성과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치 공기 속에서 숨을 쉬듯이 자연스런 인터페이스를 지향하며, 무수한 컴퓨터를 통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환경’을 제공하려는 유비쿼터스 프로젝트들은 건축환경까지를 포함하게 되므로 상당 부분 건축이 하이테크놀로지와 타협해야 됨을 예고합니다. 이러한 하이테크놀로지의 가세와 상업주의의 영합으로 건축의 많은 부분이 제품화, 브랜드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며, 또한 디지털시대는 여러 장르와의 통합과 중첩으로 건축의 아이덴티티와 역할과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건축이 삶의 일상을 이끌어내는 도구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질서와 의미의 형성자이며, 고급 예술이기를 표방했던 건축과 건축가의 영향력이 크게 도전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20세기 초 선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건축이 시대적 변화의 요구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자율적 영역의 논리를 뛰어넘어 더 큰 윤리의 책임, 그리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내일의 건축을 제시하기를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20세기 건축이 과학기술, 기계, 산업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건축을 통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의지로 출발했다면, 100년이 지난 이제 건축은 다시 디지털시대라는 새로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제시하기 위하여 부분적, 건축적 성취보다는 ‘전체를 보는 태도’로 접근함으로써 건축, 건축가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SPACE」의 사명은 이처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건축, 건축가들의 동반자로서, 또 조언자로서 바른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앞으로 실시간 접속이 가능한 웹진이나,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시차 없는 소통이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아날로그적 인쇄매체인 월간지의 역할은 정확하고 잘 정리된 아카이브 기능과 균형 있고 선명한 문제의 도출, 그리고 넓은 지면에서 얻는 시각적 즐거움까지 그 존재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슬로우 서비스도 필요하지요.

   700호를 향해 가는 「SPACE」 제작진 모두에게 격려와 큰 기대를 보냅니다.

 
tag.  건축 , 건축가 , 모더니즘 , 디지털시대
       
월간 SPACE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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