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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11 / 01
과거로부터 온 편지 (3)_임창복
       

공공건축의 참여 문턱을 어떻게?

 

임창복(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임창복은 1946년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사와 토론토대학교 석사, 서울대학교 박사를 취득했다. 아시아지역 국제건축학술지 「JAABE」의 건축도시 분야 편집장을 지낸 바 있고, MIT와 동경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의 도시는 어디로?' 글 임창복, 「SPACE」300호


To. 한국 건축계

 

25년 전 「SPACE(공간)」 300호를 기념하는 글을 의뢰받고 ‘한국의 도시는 어디로?’라는 단문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자동차 중심으로 신도시가 우후죽순 개발되는 시기여서 대중교통과 보행 중심 도시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 글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이번에 600호를 기념하기 위해 원고 청탁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 할 건축계의 과제에 대한 단상을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1992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일본 현대건축의 발전에서 역사문화가 어떻게 접목되어졌는지와 과학기술적 시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심을 두고 동경에 약 2개월간 머물며 건축과 도시를 탐방하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구로가와나 제임스 스털링과 같은 국제적 거물 건축가를 초청한 국제 현상에서 하라 히로시의 교토역사 안이 당선된 시기입니다. 그의 메가스트럭처 구법으로 도시의 축과 연계해 역사도시 교토의 경관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거대 공간을 풀어낸 방식이 독특했지요. 하라 선생의 작품에는 일본의 역사문화와 통합해보려는 의미 있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필자는 학구적인 하라 선생이 초청된 이 현상설계의 방식에 오히려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국제현상이라 해도 교토의 역사와 문화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일본 국내외 건축가 4인을 초청했고, 그분들이 고민한 작품 가운데 선택하려는 기획자의 깊은 배려가 돋보였어요. 우리나라에서 절차의 공정성만을 강조하며 큰 잔치를 벌이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 같아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당시에 토요 이토와 세지마 가즈요를 그분들의 작은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대가로 성장한 세지마가 그 당시에는 후쿠오카에 여자대학 기숙사를 완공한 후 막 사무실을 옮긴 시점이었지요. 여자대학 기숙사의 간결한 공간과 정교한 마감에 감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가나자와에서 개최된 어느 학술대회 기간에 방문해본 현대미술관에서는 더욱 성숙해진 현대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여 그녀에게 가나자와 미술관과 같은 공공 프로젝트 참여의 기회가 부여되었는지 잘은 모르나 1992년 일본에 머물 때 동경대 교수가 그녀를 주목하고 한 번 만나보라고 권유하던 것이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제가 알고 있던 다른 여성 건축가보다는 세지마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암시했습니다. 남을 평가하는 데 소극적이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의 평소 언행으로 보아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녀가 계속 성장하여 프리츠커 상까지 수상하게 된 배경에는 본인의 재능이 물론 자리 잡고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신진건축가로 활약한 초기부터 그녀의 건축적 재능에 주목하며 후원한 건축계의 응원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토요 이토의 경우도 초기 자신의 집을 경량철골로 지은 주택에서는 그리 대단한 기술적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 끝에 1992년 나가노에 공사 중이던 미술관에서는 벌써 비정형 3차 곡면을 활용한 건축으로 발전하고, 이어서 센다이 미디어테크로 선보인 그의 건축적 변신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의 경우도 평소 과학기술을 새롭게 탐구하는 자세가 주변에 많은 오디언스를 만들었고, 이들이 있었기에 공공건축에서의 기회를 부여받지는 않았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자신의 노력과 함께 소위 건강한 지원 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지마나 토요 이토가 세계적 건축가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는 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바 있습니다. 대회를 참석해 보고 우리네 건축가들의 작품 수준이 아주 높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 건축가들을 만나고 드는 생각은 이제 우리의 건축가 수준이 선진 외국의 건축가들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네 건축가들은 사회로부터 따듯한 배려를 받지를 못합니다. 특히 젊은 건축가들을 위한 기회가 적은 것 같습니다. 건축가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공 프로젝트 참여가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네 공공 프로젝트 발주 방식은 프로젝트의 내용에 따른 응모 건축가와 작품 선정에 대한 고민보다는 투표의 공정성이 최우선이지요. 많은 경우 작품 내용에 대한 논의는 가급적 피하고 심사자의 기명이 표기되어야 한다는 게 조건입니다. 언젠가 국제현상 심사를 위해 외국에서 온 심사위원 한 분이 국제 관행은 무기명 투표라고 하며 퇴장을 하겠다고 불쾌함을 드러낸 경우도 기억납니다. 공공건축물이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온 예산으로 마련되는 사업임을 생각한다면 그 진행 방식은 크게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국제현상이기에 외국의 위원들에게 심사를 맡기고, ‘공정한 투표’를 했다는 이유만을 내세워 당선작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현실로는 우리의 건축문화 발전에서 결코 의미 있는 기회로 활용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도 공공건축물 현상설계를 일회성 이벤트에서 벗어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과정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발주자나 응모자 그리고 기획자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감대를 함께 가꾸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tag.  건축 , Architect , 일본 현대건축 , 공공건축 , 현상설계
       
월간 SPACE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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