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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11 / 03
과거로부터 온 편지 (5)_서현
       

일사불란에서 중구난방의 시대로

 

서현(한양대학교 교수)


서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컬럼비아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등 여섯 권의 저서를 집필하고 효형출판 사옥, 해심헌, 문추헌, 건원재 등을 설계했다.

「SPACE」500호 특집 '한국 건축에 건축 저널리즘은 가능한가?' 


To. 한국 건축계

 

2017년 여름이 물러갈 때 볼멘소리가 불거져 나왔지요. 소리의 연원은 건축계였습니다. 뭐가 이리 많고 복잡하냐는 불만이었습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건축문화제, UIA서울세계건축대회, 건축영화제. 시작과 끝도, 장소도 헛갈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리한다고 서울건축주간이라는 이름으로 덮으려고 했는데 새로운 게 또 생겼냐고 더욱 헛갈려 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전시회가 함께 열리는 신기한 가을이 왔던 것입니다. 오합지졸, 중구난방, 사분오열이라는 지탄의 이야기도 들렸어요. 많은 것도 모자라 전시는 또 왜 그 모양이냐는 힐난도 있었고요. 단합된 힘을 보여줘야 할 건축계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남아 있겠느냐는 자탄이기도 했습니다. 콘트롤타워, 큰 어른, 조직력과 같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대안들을 두서없이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례 없이 건강해진 건축계의 모습이라고. 사회가 민주화된 만큼 성숙해진 건축계의 모습이라고. 이 사회는 단일한 주제와 통일된 의견으로 돌진하는 집단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600호를 맞는 저널 「SPACE(공간)」가 목도하는 건축계와 이 사회의 모습이라고.

   수년 전 「SPACE」가 겪었던 경영난의 시기를 기억합니다. 누가 인수해서 살리느냐를 놓고 시큰둥하되 무시 못하는 관심이 건축계에 떠돌았습니다. 저 역시 건축계의 내부인사에 속하므로 궁금했지요. 역시 건축계의 내부인사라고 해야 할 부유한 사업가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그는 상황은 알고 있었으나 역시 부정적이었습니다. 「SPACE」가 건축계의 의제 설정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어요. 20세기 초반 유럽의 건축을 바꿔놓은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저널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SPACE」는 건물을 소개하는 시각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평가였습니다.

   저는 그런 평가를 내린 이가 이미 이전 세대의 가치관과 사회평가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이 사회는 따라야 할 구호도, 동의해야 할 단일한 담론도 필요 없는 길로 들어섰으니까요. 그것이 민주적 사회의 모습이고 그것이 「SPACE」가 담긴 이 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담는 건축과 건축계가 또 일사불란할 수가 없습니다.

   거대담론의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한국의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거대담론은 ‘전통’ 논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또한 가장 길었던 논쟁의 담론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이 주제는 부여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수졸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25년을 끌어온 화두는 완성된 것인지 소멸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제 의제에서 벗어났습니다.

   사회적으로 1970, 80년대는 거대담론의 시대였습니다. 민주, 통일, 민족이 정치권에서 술자리까지 이어지는 주제였어요. 90년대에 집단이 사라지고 개인이 등장했습니다. 본격적인 외환위기와 함께 개인의 생존이 더 중요해졌고, 건축계의 흐름도 바뀌었습니다.

   개인의 집합인 사회가 바뀌어도 막상 개인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전 시대에 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은 여전히 거대담론으로 건축을 설명하곤 합니다. 유럽의 철학자들에 대한 인용이 없으면 자신의 작업을 표현하기 어려운 세대지요. 물론 멋진 인용일 수는 있으나 이후의 세대와 대화는 어렵습니다. 그 인용이 하이데거이든, 들뢰즈이든 혹은 칸트든.

   저는 현상공모 심사 초대에는 별로 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젊은 건축가 시상에 관한 초대에는 굳이 빠지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목격하고 분석하는 것, 그것은 제게 주어진 임무는 아니어도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도시화가 마무리된 다음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세대, 자기 방을 갖기 시작한 세대, 유럽과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이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의 등장을 「SPACE」 600호는 목격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본 이들은 거대담론으로 건축을 치장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문학이 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처럼 이들은 재료와 구조에 훨씬 더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건축을 서양철학이 물화된 객체가 아니고 그냥 건축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건축이 지닌 특이한 문화적 현상이라기보다 사회변화의 한 부분으로서 건축이 보이는 현상일 것입니다.

   저는 건축이 시대의 목격자여야 할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저도 흘러간 세대에 한발 한발 가까워지고 있어서 한물 간 서양 철학자를 잠시 인용해야 하겠습니다. 도시는 오래된 도서관과 같다는 이야기. 도서관에서 발견한 비트겐슈타인의 이 문구는 감동적입니다. 새 책과 오래된 책이 두서없이 꽂혀 있는 바로 그 도서관. 도시는 오래된 사회와 새로운 사회의 목격담인 건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때 건물은 이 사회가 밟고 간 시대의 목격자가 될 것이고. 그리고 「SPACE」는 그 건물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격자는 먼저 적극적 관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매월 벌어진 사건의 기록이라면 「SPACE」는 잡지(雜誌, magazine)일 것입니다. 그것은 은행과 미장원의 대기석을 채우다 곧 폐지로 판매될 예정인 것들이죠. 그러나 비평적 관찰을 기록한 매체라면 기꺼이 전문지(專門誌, journal)라고 할 것입니다. 그 자리매김이야말로 또한 기꺼이 스스로의 몫이겠습니다.

 
tag.  건축 , Architect , 저널리즘 , 매체 , 담론
       
월간 SPACE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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