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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2 / 27
미래를 감각하다: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미래를 감각하다: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해 평창 올림픽플라자와 강릉의 올림픽파크에는 ‘파트너 쇼케이싱’이라는 이름으로 대회 공식 후원사들의 홍보관이 마련됐다. 올림픽 기간인 2월 9일에서 2월 25일과 패럴림픽 기간인 3월 9일에서 3월 18일까지 운영된다. 국제적인 메가 이벤트에서 임시성과 유연함을 띠며 다양하게 선보이는 파빌리온은 조형과 내용 등의 측면에서 해당 기업이나 기관의 성격을 알리고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평창올림픽 스타디움 바로 옆, 단순한 기하와 검은 파사드로 단연 모두의 눈길을 끄는 구조물이 있다.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이다.

반타블랙으로 마감한 검은 벽과 하얗게 빛나는 LED 막대가 우주를 표현한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지금이지만 건축에서 미래를 어떻게 다루고 표현할 것인가는 언제나 흥미롭다. 건축가들은 모양을 구부리고 뒤틀어 생경한 모습을 자아내거나 건축에 쓰지 않던 재료를 발굴해 적용하곤 한다. 이에 비하면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의 첫인상은 얌전한 편인데 멀리서도 눈에 띄는 긴 가로형의 사각 외관이다. 자연과 인문 환경이 전혀 없었던 공터에 아무런 맥락도 없이 들어선 건물이라 이렇게 절제된 형태가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설득력 있다. 영국 건축가 아시프 칸이 외관을 담당해 작업하면서, 유니버스라 이름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오목하게 들어간 판재의 곡면에 하얗게 빛나는 LED 전구가 박힌 막대 1,946개가 붙어 있다. 끝이 반짝거리는 막대의 길이가 모두 다르고 벽이 안으로 굽어 있어 입체감을 자아낸다. 새카만 벽은 가장 어두운 검은색의 반타블랙이라는 특수 안료로 마감했다. 가시광선을 99% 흡수하는 신재료로, 건축물에는 처음 사용했다. 온통 하얀 겨울의 공간에 자리 잡은 무광의 단색 검정 마감은 시선을 한번에 잡아 끄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검은 벽과 하얀빛의 전구를 이용해 우주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파사드를 감상하다 보면, 이내 내부가 궁금해진다.


관람객이 처음 맞이하는 공간은 넓이 227m2 규모의 워터관이다. 바깥과 연결되는 느낌의 무채색 통로를 지나면, 벽과 바닥, 천장이 모두 새하얀 전시실이 나타난다. 마치 폭포와 같이 물이 떨어지는 뒤쪽 벽에서 일종의 액티비티를 시작한다. 각자가 이 벽의 물을 작은 컵에 담아, 전시장 중간을 넓게 차지하는 수로에 붓는 것이다.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 스위치 역할을 하는데, 이 에어스위치 위에 손을 올려 대면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르게 된다. 동그란 물방울 모양을 유지한 채 빠른 속도로 수로를 따라 내려간다. 코리안(Corian)이라는 인조대리석 수로를 발수 코팅했다. 3차원으로 곡률을 가지며 꺾여 있는 대리석 판 위 수로를 흐르는 물방울은 씨앗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도시를 달리는 자동차 같기도 하다. 물방울들은 호수라 이름 붙인 중앙부에 모인다. 아시프 칸의 설명대로 외벽의 우주와 별이 멀고 아득한 느낌이라면, 이곳의 물방울은 작고 인간적인 스케일이다.

태양에너지가 전기를 생성하고, 그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이 손으로 만지는 재료 중에서 물은 가장 친숙한 소재다. 생명의 상징이자 우주의 근원인 물이, 전시에서 수소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쓰였다. 장영(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웍스 크리에이티브디자인팀장)은 현대자동차가 주력하는 수소전기차를 알리는 데 있어서 연구소나 과학관 같은 설명 방식을 지양하고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난해한 오브제를 액자에 넣은 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교조적인 전시를 그간 많이 봐와서일까. 일상이 아닌 시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축제의 흥분을 지닌 채로 물을 붓고 만지며 기억하는 프로그램은 신선하고 세련돼 보인다. 석고보드 위 흰 페인트 도장으로 마감한 벽면과 전체 바리솔 조명 처리한 천장이 중앙부의 수로 설치물과 어우러져 고유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이어지는 하이드로젠관은 총 4단계의 시퀀스로 구성했다. 수소전기차가 동력을 만들고 달리며 물을 만드는 과정을 순서별로 담은 것이다. 높은 경사지붕을 가진 좁은 통로 형태의 태양에너지 방에는 태양광 발전판을 닮은 금속 패널이 반투명 거울 뒤에 붙어 있다. 두 번째 코너는 벽과 천장에 반구형의 폴리카보네이트 위에 크롬을 입혀 붙였다. 물의 전기분해를 표현한 방으로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에 뚜렷이 남는 공간이다. 연료전지를 나타낸 세 번째 방에는 가느다란 광섬유가 촘촘히 붙어 빛을 낸다. 손으로 벽을 쓸며 체험한다. 마지막 방은 다시 물로 회귀한다. 천장의 강화유리판에 물방울이 비처럼 똑똑 떨어지는데, 이 파동이 벽에 비친다. 일견 텅 빈 방이지만, 몰입감은 높다.

선수들이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신호 소리를 듣는다. 홀로, 같은 조건에서, 속도와 완성도를 겨룬다. 올림픽은 인류가 염원하는 평등의 이상이 형식적으로 보장되는 드문 기회다. 현대자동차에서 이번 평창올림픽을 맞이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키워드가 바로 평등이다. 환경과 에너지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시급한 이슈고, 석유 자원의 고갈과 높은 비용, 환경오염 등은 자동차 제조업체로서 현대자동차가 당면한 가장 큰 숙제다. 현대자동차는 기존의 문제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미래의 산업을 이끄는 능동적인 플레이어로 발돋움하려 한다. 현대자동차의 비전은 모든 이가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다. 노력, 욕망, 첨단, 완벽함 등 올림픽과 관련된 개념은 많지만, 현대자동차의 선택은 평등과 평등한 미래,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소에너지였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올림픽 정신을 담으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올림픽 파빌리온을 내심 기대했던 게 무색할 만큼 평창 동계올림픽 행사장의 다른 파빌리온들이 다소 어수선하고 제품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는 바람에, 현대자동차의 시도가 더욱 돋보인다. 제조업, 건축가, 미술가 등의 협업은 전부터 등장했던 것이지만 이번 파빌리온은 분명히 특별한 지점이 있다. 현대자동차의 크리에이티브 파워하우스 크리에이티브웍스와 아시프 칸은 현대자동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면서도 각자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높은 완성도를 이뤄냈다. 공간에 대한 개입은 과하지 않고 특정 작가가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러나 공간을 모두 체험하고 나면 수소자동차나 현대자동차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실물 자동차가 한 대도 전시되어 있지 않으나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체험을 극대화한 이번 파빌리온에서 기업의 홍보관, 혹은 파빌리온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김나래 기자 | 사진 신경섭 | 자료제공 현대자동차

 
tag.  건축 , 건물 , 평창 , 파빌리온 , 현대자동차 , 수소
       
월간 SPACE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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