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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4 / 02
다시 깨어난 브루탈리즘: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다시 깨어난 브루탈리즘: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나탈리 페리스│진행 이지윤 기자│사진 몰리 본 스틴버그(별도표기외)│자료제공 헤이워드 갤러리



영국 근현대미술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헤이워드 갤러리가 2년여에 걸친 리노베이션 끝에 다시 문을 열었다. 개관 50주년이 되는 올해까지 헤이워드 갤러리는 영국을 넘어 건축사적으로도, 현대 미술사적으로도 모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한 흐름을 반영하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아 왔다. 현대 예술과 건축에 대한 새로운 해석, 헤이워드 갤러리의 새 단장 소식을 주목해보자.

우울한 회색의 하루, 템즈강 건너편 옥상에서 형형색색의 삼각형이 밝게 빛나며 방문객들에게 손짓한다. 바로 런던 사우스뱅크에 있는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으로 장관을 이루는 헤이워드 갤러리 꼭대기에 설치된 유명한 삼각 구조물 조명이다. 매시간 생생한 빨간색에서 시작해 주황, 노랑, 파랑, 보라, 분홍으로 끝날 때까지, 유리로 된 이 삼각 구조물은 다양한 색의 향연으로 넘실거린다. 스코틀랜드 출신 예술가 데이비드 바첼러의 이 재미있는 조명 신호는 2018년 1월, 2년여에 걸친 외부 보수공사, 내부 재단장의 완성과 갤러리의 재개관을 알렸다. 밤에만 전시되고 있는 이 ‘60분 스펙트럼’(2017)은 ‘현대 도시를 특징짓는 강렬하고 복합적인 색깔과 첨단기술의 시대에 사람들이 색깔에 반응하는 방식’에 대한 데이비드 바첼러의 끊임없는 탐구 중 하나다. 이것은 어두운 밤하늘에 런던의 상징적인 건물의 변화무쌍한 미래를 알리는 예고이기도 하다.

통합이라는 원칙 하에 헤이워드 갤러리는 근현대미술의 국립 대여 컬렉션인 예술평의회 소장품(Art Council Collection) 수집품들을 소장하고 전시하도록 설계되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1946년에 설립된 예술평의회 소장품은 영국 최대의 미술 컬렉션이다. ‘벽 없는 박물관’이라는 개념으로 운영되는 이 컬렉션은 영국의 국립 컬렉션 중

가장 널리 순회 전시되고 있으며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에게 닿도록 공공기관 대여나 순회 전시, 도록 출판 등에 헌신해왔다. 또한 영국의 현대미술과 디자인 및 공예품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매년 작품을 구입한다. 주 전시 공간 입구 옆자리에 재개장한 헤니(HENI) 프로젝트 공간은 이 같은 노력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행위와 변형’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매튜 다비셔와 라이언 갠더, 아말리아 피카, 사이먼 스탈링의 네 작품이 새롭게 전시 되고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예술의 위치에 대해 자문하는 예술을 지지함으로써 보는 사람들이 동시대의 의미를 생각할 것을 촉구했던 헤이워드 갤러리의 원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헤이워드 갤러리는 항상 예술과 건축의 접점에 서는 특권을 누려왔다. 이런 점은 1987년의 <르 코르뷔지에: 세기의 건축가>, 2008년의 <싸이코빌딩>, 2013년의 <라이트 쇼> 등 그동안의 많은 선구적인 전시회와 미술관 자체의 빼어난 건축적 표현에서 드러난다. 엘리자베스 여왕 홀 및 퍼셀관에서 헤이워드 갤러리의 초기 건축 개념이 소개되었는데, 이는 사우스뱅크 센터 문화관과 이어진다. 노먼 잉글백이 이끄는 존 아텐보러, 워렌 쵸크, 론 헤론 등 젊은 건축가들 팀이 사우스 뱅크의 개발을 감독하는 가운데 알란 워터하우스와 데니스 크롬튼이 헤이워드 갤러리의 설계를 담당하였고, 힉스와 힐이 공사를 담당한 가운데 1968년 7월 9일 엘리자베스 2세가 개막식을 주관하였다. 브루탈리즘 건축 특유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이 건물은 지어진 후 50년 동안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다. ‘1960년대의 콘크리트 흉물’이라고 불리면서 헐릴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 특히 외부 콘크리트 보행로는 가장 많은 비판을 받으며 철거 위협의 대상이 됐다. 건축사학자 니콜라우스 패브스너는 헤이워드 갤러리를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렘 콜하스가 언급했듯 헤이워드 갤러리는 ‘전시 공간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나 관습에 순응하지 않았다. 두드러지는 볼륨감 있는 내부 공간부터 평평한 콘크리트 입면에 이르기까지 헤이워드 갤러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학적인 모험을 감행한 민주적인 실험’을 하고자 했다. 헤이워드 갤러리의 관장 랄프 루고프(이하 루고프)는 이때의 분위기를 최근 이렇게 회고했다. “이 건축물에는 미술관이 설계된 1960년대 중반의 정신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는 각자의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 정비공사의 가장 큰 성취는 바로 이 같은 ‘민주적인’ 관점이 존중되었다는 것이다. 내부 공간에 자연광을 더욱 많이 끌어들이고 실내 온도 조절을 향상했다. 또한 콘크리트 표면 청소와 석재 바닥의 교체, 조각 정원 바닥의 포장 교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개선공사는 관람객들의 경험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의 골조가 특징적인 주 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볼트 구조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러 층을 가로지르며 펼쳐져 있는 동선은 하나로 지정된 통로나 구성을 갖고 있지 않다. 비슷한 규모의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전시장과 상업 공간의 연결 통로처럼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가 여기엔 하나도 없다. 헤이워드 갤러리에서는 일 년에 서너 번 특별전시만 열린다. 마르셀 뒤샹의 철학이었던 ‘모든 예술 작품이 갖는 의미의 절반은 관객이 만들어낸다’라는 생각에 영감을 받아 루고프는 헤이워드 갤러리가 관람자로 하여금 전시 중인 작품 이외에도 견고한 콘크리트 계단과 기둥, 벽이 지닌 규모의 위용 앞에서 자기 자신의 물리적인 실체를 느끼도록 하는 공간이 되게끔 한다.

헤이워드 갤러리의 복원과 재설계를 담당한 건축가 페일든 클랙 브래들리 스튜디오(이하 FCB)는 시각적인 경험의 강도에 충실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어떤 요소에서는 외부 세계가 건물 내부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약 3,500만 파운드(한화 약 52억 원)가 들어간 ‘기본적인 보존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하면서 FCB는 건물에 ‘새로운 생명’과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미래’를 보장해주고자 노력하였다. 이 사업의 핵심은 헤이워드 갤러리의 상징인 피라미드 지붕을 재해석하여 ‘자연광을 조절해 갤러리 내부로 다시 들여오는’ 것이었다. 예술평의회와 헤리티지 복권 펀드(Heritage Lottery Fund), 사우스뱅크 센터 및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후원하는 ‘빛이 들어오게 하자’라는 이 캠페인은 위층의 갤러리들을 완전히 바꿔놓아 지금은 루이스 칸의 예일 영국미술센터와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번 개선 공사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은 피라미드 형태의 천창이다. 1960년대 중반 헤이워드 갤러리 설계와 공사 과정에서 예술평의회에 자문을 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헨리 무어는 날렵한 콘크리트 공간에 직접적이면서도 섬세한 채광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전시 작품에 있어 ‘신이 주신 훌륭한 일광’인 자연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공사 기간 동안 66개의 피라미드 모양의 천창이 지붕에 설치되었으나 비가 오는 날에는 물이 샜고 빛의 세기를 조절하기 위해 설치한 블라인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누수를 막기 위해 설치한 가천장 때문에 자연광은 들어올 수 없었고 상층 갤러리의 높이도 수 미터 이상 낮아졌으며 전시할 수 있는 작품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놀라울 정도로 변화된 리모델링을 통해서 일련의 우아한 백색의 코퍼 조명이 천창으로부터 내려온다. 유리로 된 피라미드는 두 면은 반투명하고 나머지 두 면은 투명해서 갤러리 내부에서 바깥 하늘을 볼 수 있다. 새로 설치된 접이식 블라인드를 새로 만든 천창 아래쪽에 설치해서 자동으로 태양광을 조절할 수 있고 큐레이터가 원하는 대로 완전히 빛을 차단하거나 개별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 



이렇게 조절되어 내부로 유입되는 태양광은 관람객들에게 공간과의 연결성, 작품과의 연결성을 떠올리게 하고 바깥에 놓인 세상과 그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헤이워드 갤러리의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는 재개관 전시회로 독일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회고전을 선택한 것은 큐레이터의 탁월한 결정이었다. 지난 40년간 ‘세상이 구성되어 있는 방식’에 매우 자세하게 초점을 맞춘 거스키의 대표작들은 새로 단장한 헤이워드 갤러리의 극적인 환경에 아주 잘 어울린다. ‘현대 세계경제의 대담한 연대기’에 경의를 표하며 느슨한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전시회는 사회적인 용도로 사용된 풍경을 관찰했던 초기의 작품부터 세계 자본주의의 헤아릴 수 없는 권모술수를 시각화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거스키의 40년간의 작품 활동을 모두 다루고 있다.

거스키의 많은 사진에서 그가 추상에 대해 느끼는 관심과 흥미를 찾아볼 수 있다. 공공건물의 천장 조명이라는 소재를 강조하는 ‘브라질리아, 회의실 I’(1994)은 무엇이 관람객과 사진가의 주목을 받을 만한가를 다루고 있다. ‘무제 I’(1993) 은 뒤셀도르프 미술관에 있는 회색 카펫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대형 사진으로, 멀리서 보면 강렬한 시각적인 경험을 주지만 가까이서 보면 카펫을 이루고 있는 섬유 각각의 세밀한 재료적 특징을 드러내는 시각적인 작업이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물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낯설게 보이게 한다”라고 한 거스키의 언급처럼 클로즈업은 그가 이 세상을 보다 가까이에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다. 단색처럼 보이면서 보기에 다른 색깔로 바뀌어 가는 띠가 나타난 ‘무제 18’(2015)과 같은 보다 최근 작품은 추상미술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쳤음을 증명한다. 위층 갤러리에서 선명한 빛을 받아 더 뚜렷해진 사진은 겹쳐 보임 같은 반응을 자아내는데, 한편으로는 네덜란드 튤립 농장의 규모를 보여주는 시각적인 패턴을 찾게 한다. 이같이 극단적으로 다른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거스키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간과하고 넘어가는지 보여주는데, 그의 작품 안에 있는 복잡함은 자세히 볼 때야 비로소 드러난다.

1992년부터 디지털 편집 및 후속작업을 실험하기 시작한 거스키는 매우 세부적인 장면의 모든 요소에 동등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구성 방식을 개발했다. 그는 색면 그림처럼 민주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정도로 색상을 강렬하게 만들고 크기를 늘림으로써 도시와 자연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패턴의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일부 비평가들은 거스키의 ‘신의 시선’을 접할 때 그가 채택한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과 사진이 정립해 놓은 신뢰를 깨뜨리는 그의 예술적 활동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거스키의 현실 왜곡은 광범위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이미지메이킹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진 이미지가 본질적으로 진실이라는 믿음이 터무니없다는 인상을 관객에게 준다. 거스키는 “사진이라는 것은 그것이 묘사하는 내용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예술은 습관적인 반응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상상력이 사슬에서 벗어나 방황하고 탐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루고프는 향상된 공간의 창조적 잠재력에 집중하는 헤이워드의 창립 기념 프로그램을 총괄한다.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헤이워드 갤러리는 예술과 건축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유토피아적인 건축의 유산을 다루는 조각과 설치 작품들을 만드는 한국 작가 이불이 차기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2018년 7월 7일 헤이워드 갤러리의 50주년 기념식에 맞춰서 ‘빛나는 목걸이 같은’ 작업을 갤러리의 파사드에 설치할 예정이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루고프는 미래의 예술과 건축에 대한 진보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계속 진행할 것임이 분명하다. 


나탈리 페리스는 작가이자 편집자, 연구원으로 런던에서 활동중이다. 옥스포드 애쉬몰린 박물관의 2018년 전임강사로 재직 중이며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AHRC기금으로 최근 끝마친 박사프로젝트 ‘유희적 시기: 1945 ~ 1980년 전후 영국 문학의 추상화’를 단행본으로 출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인문학 리뷰의 부편집장이자 건축 전문지 「SPACE(공간)」의 영문 편집자이며 예술도서 출판사인 에니싸몬 에디션의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 예술 및 문학 비평가로서 프리즈, 가디언, 테이트 엣셋트라, 타임즈 리터러리 서플러멘트, 화이트 리뷰 등에 기고하였으며 베로니카 하우어, 알렌 존스와 같은 예술가의 카탈로그 에세이를 담당했다. 2014년에는 에이단 멜러 미술 비평상을 수상하였다.

 
tag.  건축 , 공간 , 헤이워드
       
월간 SPACE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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