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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4
예술가들의 연구실
       

“모호한 것은 모호한 것을 통하여, 미지의 것은 미지의 것을 통하여.” 이것이 연금술의 설명 방식이라고 칼 융(C. G. Jung)은 말했다. 연금술이 해석하기 어려운 묘사와 표상으로 기록된 이유는 그 실험 과정과 결과가 상징을 통하지 않으면 충분히 표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금술사의 실험실은 신화적 상징과 형이상학적 관념이 지배하는 장소이자 도구를 사용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실제 장소로서, 신적인 세계와 현실 세계 중간에 위치한 또 하나의 세계였다. 현대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연구실 역시 무대 뒤에 숨겨진 미지의 세계로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마도 그곳에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끌어올린 이미지들과 외부 세계와의 접점에서 얻어낸 많은 자료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을 것이다. 인사미술공간의 <예술가들의 연구실을 개방하다>전은 과학 이론을 예술 작업의 주요 영감으로 사용하는 세 작가의 연구 공간을 보여주었다. 작품과 관련된 자료들을 가상의 연구실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전시하는 형태였다.

연금술사들은 궁극의 물질을 얻기 위해 신과 같은 창조 과정으로 원료들을 다루는데, 이러한 과정에는 물과 불처럼 극과 극의 요소도 하나로 다루어진다. 이서준 작가의 ‘뷰글리(Beaugly) 연구소’도 나름의 질서를 갖고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 연구소는 지구 멸망 후 유로파 행성에서 다시 태어나게 될 후생 인류를 위한 공간과 식량을 연구한다. 그중 ‘후생 인류의 발생 배아도’는 조작으로 판명되어 진화론을 반박하는 용도로 사용되곤 하는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의 배아 발생도에 기반을 두었고, ‘후생 인류의 주거 공간’은 성당 도면을 차용하고 있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하나로 엮어 제시하는 이 풍경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는 더 설명되지 않고, 단계 사이사이 빈 틈에 과학적 증명 대신 상상력이 투사된다. 상상의 단계 여기저기에 위치하게 될 비현실적인 형상들은 마치 삽화 속 연금술 실험실처럼 신비롭다.

 
Lee, Seojun., St. Peter’s Basilica, Photograph and 2D graphic, 2012

연금술의 알 수 없는 상징들은 작업자의 개별적인 목표와 규칙을 반영한다. 연금술사들은 세상의 논리를 떠나서 고독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연금술사들의 실험실이 그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인 것처럼 예술가들의 연구실 역시 그렇다. 최종하 작가는 ‘인디 머신(Indie-Machine) 연구소’에서 제작된 기계들이 작가 본인의 개인적 필요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작품의 가치가 사회적 의미의 잣대로 평가되는 것을 거부한다. 예를 들어 ‘취소 기계’는 이미 뱉은 말을 취소해야 한다는 작가 자신의 강박에서 나온 작업이다. 혼자 담배 피우는 사람을 위한 자동 환기 장치나 그 밖의 다른 장치도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기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개인의 욕구를 담고 있다. 독립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의 연구실에 주류 과학계에서 외면받아온 빅터 샤우버거의 대안적 에너지에 관한 책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개인의 진실함으로 고독하게 이루어지는 작업들이 거꾸로 우리 사회가 내포한 집단적 욕망과 그 그림자를 암시하는 많은 예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Choi, Jongha., Cigarette Machine, Drawing, 2011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연구실은 사회의 특정 문제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폐쇄적인 연금술사들의 실험실과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박재영 작가의 ‘다운라이트(Downleit) 연구실’에서 ‘마인드컨트롤 피해자 y씨의 자료’는 마인드컨트롤 피해자들에 대한 국내외 사례를 담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이 조정당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 근거로 믿는 부분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기술이다. 일반인들에게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은 과학적 발견들은 사회 속에서 불안정한 의구심을 양산한다. 한 개인이 자신을 괴롭히는 배후를 밝혀달라고 청원했다가 법원으로부터 거부당한 ‘진정사건처분통지서’나 전자파를 막기 위해 함께 고안해낸 장치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이 실제임을 보여준다. 박재영 작가는 그 의심이 참이든 거짓이든, 진실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느끼는 실질적인 고통과 그 감각이라고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자기최면기계’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가짜 장치이지만, 믿음이 불러일으킨 실제 감각을 통해 작동할 수도 있다. 과학도 종교도 증명해주지 못하고 치유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예술 영역에서는 진지하게 다루어질 수 있다.

 
Park, Jaeyoung., Mind Control, Installation, 2011

 
Park, Jaeyoung., Record of Mr. Y, Victim from Mind Control, Installation with photographs, 2011


결국 ‘현자의 돌’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금술사들은 수백 년 동안 시지프스의 길을 걸었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돌을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 발견해 내는 가능성들이다. 예술가들의 연구실을 보는 관객들은 모든 과정을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작가들이 구축해 놓은 세계의 단면을 본다. 코르크 따개에서 위성의 렌딩 기어 모형을 잇는 상상의 거미줄을 보는 것이다. 그 거미줄이 잘 짜여 있을수록 좋지만 해독 불가능한 이미지들이 사유의 고리를 끊어놓아도 문제될 것은 없다. 우리의 상상력이 그 선을 이을 테니까. 연금술은 화학 실험이면서도 정신적 과정이었다. “모호한 것은 모호한 것을 통하여, 미지의 것은 미지의 것을 통하여.” 이것은 예술이 탄생하는 공간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의 연구실을 개방하다
인사미술공간 / Apr. 26 - May. 13, 2012

김영주(독립기획자) | 자료제공 고동연(큐레이터)
 
tag.  미술 , 아트 , 전시 , 535호
       
월간 SPACE 2012년 6월호 (5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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