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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 08 / 07
틀 안에서 불완전한 아름다움
       


틀 안에서 불완전한 아름다움

<와바>, <자크 코프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Feb. 28 - Aug. 16, 2015
 
장영철(와이즈건축 대표)
 
 
Fritz Vehring, Labyrinth, Bricks, 12 speakers, 5,350 x 8,300 x 1,770 mm, 2015
 
왜 벽돌?

벽돌은 진흙을 구워서 건물의 벽과 지붕을 만드는 작은 건축도자다. 진흙은 인간이 문명을 형성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존재해왔다. 벽돌은 인류역사의 시작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쓰이는 건축재료다. 그래서 벽돌은 세계의 곳곳에서 오랫동안 건축도자의 문화를 전승시키고 때로는 재사용되면서 근세의 도시를 만들었다. 벽돌건축은 무명의 재료로 고졸해 보이기도 하지만 지역성을 보여주는 개성적인 건축을 표현하는 넓은 포용력을 가진다.
와바(WABA)의 구성원 자크 코프만은 198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벽돌을 ‘재발견’한다. 그가 르완다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그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와 기술을 가지고 주민들에게 더 좋은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예술’불모지인 르완다에서의 작업은 작가에게 예술작품 이전에 사람과 그 사람이 사는 땅에 대한 책임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벽돌은 그 자체로는 존재 의미가 없다. 많은 수의 벽돌이 벽이나 지붕으로 구축될 때 그 의미가 생긴다. 벽돌은 땅에서 만들어지고 그 땅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벽돌로 공간을 만들 때, 그 공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척박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구축함에 있어 벽돌만큼 뛰어난 재료는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크 코프만에게 그런 벽돌의 재발견은 단순히 지역에서 실제로 구축 가능한 재료인 동시에 세계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장소에 관한 윤리적 성찰의 의미도 더해졌을 것이다. 
 
 
Ulla Viotti, Excavation, Bricks, Natural stone, bamboo, 9,550 x 5,320 x 1,600 mm, 2015 
 
 
벽돌공장

벽돌공장에 가본 적이 있는가? 아마 사람들은 건장한 노동자들이 물에 반죽한 점토나 고령토를 벽돌 틀에 이겨 넣고 벽돌을 찍어내어 말린 다음 가마에 넣고 구운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벽돌을 꺼내 공기 중에 식혀 야적장에 쌓아 놓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오늘날의 벽돌공장은 사람들이 벽돌을 찍어내지 않는다. 모든 설비는 자동화가 되어있고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제품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가마의 온도는 컴퓨터로 제어한다. 심지어 벽돌을 운반하고 포장하는 것도 로봇의 몫이다. 흙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장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의 공장은 매우 정리가 잘 되어있고 깔끔하며 떡가래처럼 벽돌은 쉴새 없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나온다. 이것을 ‘공학적 벽돌’이라고 하는데 지금 대부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벽돌은 이런 표준화의 산물이다.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서 벽이나 바닥을 구성하므로 벽돌 각각의 품질과 규격의 표준화를 달성하는 것은 현대 벽돌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표준화된 벽돌을 이용해 울라 비오티, 프리츠 베링, 로버트 해리슨, 구엔 히니, 자크 코프만은 ‘건축도자와 예술 사이’라는 주제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2층 전시장에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스웨덴 출신 울라 비오티는 벽돌건축이 가지고 있는 원형성에 천착하고, 프랑스에서 온 자크 코프만은 벽돌의 규격과 질감이 나타나고 이와 같은 지역적인 특성이 자연스럽게 건축에 반영된 까닭이다. 이런 특성이 지속해서 건축에 발현될 때 건축의 원형이 만들어진다. 벽돌의 지역적 원형, 이것이 울라 비오티가 자신의 작업에서 꾸준히 추구해온 벽돌의 정체성이 아닐까. 아마도 그가 이번 전시에 아쉬움이 있다면 자신이 제조한 벽돌로 작업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에 비해 구엔 히니의 작업은 손이 개입하여 원본이 가지는 ‘아우라’를 발산시킨다. 그는 그동안 구상적인 형태의 ‘조각벽돌’작업을 선보였는데 이번의 작업은 좀 더 추상적이다. 그의 작업은 자유로운 곡선의 형태로 나무 벽돌 틀을 만들고 그것을 따라서 철사로 만든 칼을 이용해 젖은 점토를 조각하는 것이었다. 전시장에서 점토는 여전히 젖은 상태였고 유동적인 형태는 더욱더 촉각에 호소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구엔 히니가 그 벽돌들을 3D나 캐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검토한 후 작업을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건축가들이 컴퓨터를 통해 연구한 유동적인 형태의 매스 모형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훨씬 원형의 감성이 느껴지는 것은 그 작업에 ‘손’이 개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1층 전시장에서 진행 중인 자크 코프만의 개인전에서도 진흙의 원재료인 진흙이 지닌 원초적인 감성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미국 출신 로버트 해리슨은 벽돌을 ‘팝’하게 다룬다. 그런데 규격화된 벽돌로 표현한 이들의 작품은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작가들의 원초적인 ‘손’의 개입에 한계가 있었던 까닭이다.
 
 
Jacques Kaufmann, The Sprial Qi, Bamboo, clay, 7 x 12 x 7 m, 2015
 
보통 작가들이 작업하는 벽돌은 가까운 지역의 타일이나 공장에서 온다. 작가의 고유성을 표현하는 재료를 ‘빌려’오기 때문에 공장의 제조공정에 어떻게 작가가 개입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로버트 해리슨은 이러한 공장의 제조공정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는 제조공정에 도자예술가가 협업하는 것이 작가에게 많은 경험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작가들은 수작업을 할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들은 오히려 벽돌건축을 편안하게 느끼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변형들은 도자 예술가들에게 진흙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단품 대량생산 방식에 대하여 유럽의 벽돌 예술가(장인)들이 대처한 방식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수공-이형벽돌의 생산방식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형벽돌은 기계로 뽑아내고 직사각형 규격으로 절단된 소성 전의 ‘젖은 벽돌’을 목재나 금속 절단 상자 안에 넣어 금속 와이어 커터로 자른 후에 소량 소성이 가능한 보다 작은 가마에 넣어서 좀 더 ‘느리게’ 생산하는 것이다. 덕분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국의 벽돌건축은 시공단가는 낮추면서도 입면을 테라코타의 아름다운 장식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알프레드 워터하우스가 자연사박물관을 이 방식으로 지었고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우디 역시 새로운 벽돌과 테라코타 건축물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19세기 말 미술공예운동과 아르누보가 성행하며 수공-이형벽돌과 테라코타를 이용한 벽돌건축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소성 과정은 도자예술가들에게 또 하나의 창작 수단이다. 가마의 종류, 소성 온도, 방법에 따라 벽돌 질감이나 색깔, 형태에 큰 차이가 난다. 작가가 색깔을 구현하는 데 꼭 필요한 팔레트인 셈이다. 그러나 가마를 작가들의 기대에 맞게 변경해서 사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 전 세계의 벽돌공장의 제조공정은 생산단가를 줄이거나 품질을 향상하고자 큰 규모의 소성 가마를 보다 적은 연료로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소량을 생산하기 위하여 가마의 소성 조건을 변경하기가 어렵다. 자동화와 표준화로 인해 도자 예술가에게 벽돌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정된다.
 
 
Robert Harrison, Elementary Brick, bricks, cooper tubing, wire mesh, culvert pipe, celadon, buncheong, granite stone, 6,000 ×10,000 ×2,400 mm, 2015
 
작가와 벽돌 
 
재료는 작가들의 ‘영토’이고 재료가 한정되면 작가성도 한정될 터이다. 와바가 벽돌을 자신들의 영토로 선언했을 때, 그들의 작가성 또한 작품이 설치될 지역성을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벽돌이 지역성을 띠는 이유는 그 땅에서 나온 흙의 특성이 고스란히 미묘한 차이로 발현되고, 그 차이로 인해 작업의 정체성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벽돌 건축이지만 중국의 벽돌과 로마의 벽돌이 다른 것은 흙의 입자, 강도, 그리고 소성 조건에원초적인 감성에 생명이 깃든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전시에서 진흙이 원래 가지고 있던 물성은 진흙 안의 공극과 수분이 소성 중에 실수로 생겨나는 예외적 상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그 불규칙한 틈 사이로 작가의 재료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벽돌의 아우라는 이렇게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장인처럼 제조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작가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표준화된 벽돌은 일상의 건축재료로서 기능적으로 만족스러울지 모르나 작가성이 표현되어야 하는 재료로서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지금의 건축가들은 표준화된 재료를 쓰는 데 익숙해졌다. 모더니즘 건축의 화두 가운데 표준화의 친척인 모듈이라는 유령이 있다. (실제 건축현장에서 모듈이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곳이 얼마나 있고, 그것이 기대했던 비용의 절감과 공간의 효율성을 가지고 오는지는 의문이다) 만일 형태나 재료가 정형이 아니라면 건축가들은 그것을 컴퓨터에 넣어 그 예측할 수 없는 기하학을 삼차원의 환영을 통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불완전함이 주는 편안함과 풍부한 감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도 기계시대를 맞닥뜨리며 이러한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산업혁명이 휩쓸고 지나간 빅토리아 시대에 그는 조악한 복제품의 대량생산에 위기감을 느끼고 수공예적인 가치로의 복원을 생각했겠지만 결함이나 분절 선이 없어 보이는 디지털로 표준화된 세계에서도 수공예적인 가치가 가질 수 있는 따뜻함과 풍요로움은 필수적이다.
영국 웨일스의 데니스 루아본이라는 회사는 이형벽돌의 소량생산을 위해 작은 규모의 가스 가마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 가마를 통해 48시간 동안 소성하고 건조시킨 ‘건축 벽돌’을 생산할 수 있고 이렇게 사흘 동안 천천히 만들어진 건축 벽돌은 영국의 건축물을 보수하고 재단장하는데 폭넓게 사용이 된다. 어떤 도자예술가들은 전통적인 방법의 가마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거기에서 종종 예측하지 못했던 ‘걸작’이 탄생하기도 한다. 한 예로 덴마크의 페터슨 타일 회사는 페터 춤토르와의 협업을 통하여 전통적인 방식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콜룸바 벽돌로 유명한 데, 이 벽돌은 독일 쾰른의 콜룸바 미술관에 사용된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이 벽돌은 따뜻하고, 편안하며, 시간성을 가지고 있어 옛 것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구엔 히니의 젖은 벽돌 작업을 후원해준 벽돌회사에서 그가 만든 조각벽돌을 구워 내,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자료제공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장영철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버클리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로재, 스티븐 홀 아키텍츠, 라파엘 비뇰리 아키텍츠에서 실무를 하고, 2008년부터 전숙희와 함께 와이즈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서울 가회동에 ‘Dialog In the Dark 북촌’을 완성하였다. 현재 여러 단체와 함께 건축 놀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2013년 공공예술 프로젝트인 ‘홍티둔벙’을 부산 사하구 무지개 공단에 기획 및 설치하였다. 2011년 대한민국 젊은 건축가상을, 2012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으로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tag.  미술 , 설치미술 , 아트 , 전시 , 미술관 ,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 와바 , 자크 코프만 , 벽돌 , 장영철
       
월간SPACE 2015년 5월호 (5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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