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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 / 27
백남준을 추억하는 세 가지 방법
       

백남준을 추억하는 세 가지 방법
 
2016년 1월 29일은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 미술계는 백남준 작고 10주기를 맞아 그를 다각도에서 재조명하는 행사를 기획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월 18일 올해 전시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오는 7월 20일 백남준의 생일에 맞춰 그가 유년시절 지낸 집에 기념관을 연다고 밝혔다. 이 기념관은 최근까지 식당으로 운영되던 한옥을 보수하여 작가의 삶을 보여주는 디오라마를 포함한 사이버 뮤지엄이 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백남준아트센터, 갤러리현대, 백남준문화재단은 기일을 전후로 각각 라이브 스크리닝 퍼포먼스, 대규모 전시, 국제 심포지엄과 워크숍을 선보였다. 이 리포트에서는 이 세 가지 행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백남준을 어떻게 추억하고 소생시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취재 우현정 | 자료제공 갤러리현대,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문화재단
 
Courtesy of Gallery Hyundai
Re-presentation of Nam June Paik’s legendary shamanic performance Zen for Walking in 1990
 
 
방법 1. 1965년 ‘유토피안 레이저 TV 스테이션’의 회귀

오늘날 인터넷 다채널 방송국을 예언한 백남준을 기리는 방법으로 백남준아트센터(이하 아트센터)는 추모 행사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총 3일간 펼쳐진 행사 ‘유토피안 레이저 TV스테이션’은 백남준의 1965년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레이저의 고주파를 이용해서 수천 개의 크고 작은 TV 방송국들이 생겨나면 독점구조의 상업적 방송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생각을 따라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이번 행사는 1월 29일 오후 1시 고인의 유골이 안치된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리는 추모행사와 박승원 작가의 고양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오마주 퍼포먼스를 유튜브를 통해 송출하면서 시작했다. 박승원은 ‘Dear Mr. Paik’에서 고인을 연상시키는 파란색 셔츠에 멜빵 바지를 입고 무거운 검은색 사물을 줄에 매단 채 걷거나 텔레비전 세트를 머리에 쓰는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했다. 29일과 30일 오후 5시부터는 아트센터 로비에서 젊은 작가와 뮤지션이 백남준에게 헌정하는 사운드 퍼포먼스를 연달아 선보였는데 그중 최준용은 줄을 이용해 두 개의 기타를 매달고 이들이 충돌할 때마다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의 증폭과 변형을 위해 의자와 스탠드 마이크를 추가로 달고 주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통해 청취의 방식을 확장해 나간다.
첫날 세 명의 공연자(전형산, 서민우, 최준용)가 소리와 소음, 청각과 촉각 등 사운드의 본질을 실험하는 데 집중했다면 다음날 테잎에잎, 파펑크 x 하임, 디그루는 프로젝션이나 티비 모니터를 이용해 사운드와 결합한 인터랙티브 공연을 선보였다. 디그루는 백남준이 생전에 남긴 말,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물 정보를 발췌해 비트의 강도에 따라 이미지를 변환시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행사와 퍼포먼스 그리고 공연 사이에는 백남준의 대표적인 싱글 채널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존 케이지에게 바침’(1973)과 같이 널리 알려진 작품에서부터 ‘중국에서 우표를 핥을 수 없다’(1973)나 ‘리빙 위드 더 리빙 시어터’(1989)와 같은 다소 생소한 작품도 있었다. 놀라웠던 부분은 두 작품 모두 빠른 화면 전환과 종잡을 수 없는 편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디테일과 내러티브의 손실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인물 간의 대화가 때때로 반복되고 시간을 역행하는데도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모두가 말한 백남준의 ‘천재성’의 일부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래를 사유하는 예술가’의 과거를 비춰 현재를 환기하는 축제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하다.
 
Courtesy of Nam June Paik Art Center
최준용은 줄을 이용해 두 개의 기타를 매달고 이들이 충돌할 때마다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의 증폭과 변형을 위해 의자와 스탠드 마이크를 추가로 달고 주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통해 청취의 방식을 확장해 나간다. 
 
Courtesy of Nam June Paik Art Center
행사와 퍼포먼스 및 공연 사이에는 백남준의 대표적인 싱글 채널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존 케이지에게 받침’(1973)과 같은 널리 알려진 작품에서부터 ‘중국에서 우표를 핥을 수 없다’(1973)나 ‘리빙 위드 더 리빙 시어터’(1989)와 같은 다소 생소한 작품도 있었다.
 
 
 
방법 2. 백남준의 서울

<백남준, 서울에서> 전시는 백남준이 1990년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를 가운데 두고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던 백남준이 자신의 고향 서울을 다시 찾는 과정을 되짚어가며 그를 새롭게 해석하는 필터를 제시한다.
10살에 한국을 떠난 백남준이 서울로 돌아온 때는 1988년이다. 1983년 프랑스 파리 김창열의 작업실에서 백남준은 국내 갤러리 관계자를 만났고 1988년 국내 첫 개인전을 갤러리현대에서 열었다. 그런 인연으로 <백남준, 서울에서>의 개막식에서 김창열은 갤러리에서 출발해 밧줄로 묶은 바이올린을 끌며 1963년 독일에서 백남준이 한 ‘걸음을 위한 선’ 퍼포먼스를 재현했고 신관에 도착한 뒤 1962년 ‘바이올린 독주’를 따라 바이올린을 책상 위에 내리쳤다. 그 뒤로 ‘늑대 걸음으로’에 쓰인 굿판을 재현한 광경이 펼쳐진다. 1990년 갤러리현대 뒷마당(현 금호미술관 자리)에서 진행된 이 진혼굿에서 백남준은 백색 두루마기를 입고 피아노를 도끼로 망가뜨리고 못을 박았다.
또한 보이스를 상징하는 중절모자를 16개의 시멘트 주형으로 떠내 자신의 사인을 남기며 친구의 영면을 기도했다. 오프닝은 백남준과 개인적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거나 예술계에 당부의 말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그중 이용우(상하이 히말랴야미술관장)는 “백남준에 관한 연구가 이전보다 퇴보했다”고 밝히며 ‘테크놀로지 사상가’, ‘비디오 무당’으로서의 면모를 조명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남준이 1967년 존 케이지에게 보낸 서신에서 ‘전자 골동품 예술’이라 칭한 그의 예술적 비전은 1986년 ‘로봇 가족’ 시리즈를 통해 실현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인물들(존 케이지, 샬롯 무어맨, 요셉 보이스,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이 외에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는 1995년 독일 폴프스버그 미술관에 설치했던 ‘잡동사니 벽’이 있다. 1990년대 초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오브제를 한데 모아 부조처럼 쌓아 올렸는데 여기에는 빈티지 자동차와 가마에서부터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부품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종류가 다양하다. “백남준이 사유했던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백남준의 치열했던 예술 정신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성과는 40년에 걸쳐 제작된 작품들을 모으고 이를 원본에 가까운 상태로 복구해낸 데 있다. 과거의 행적을 완벽하게 재연하는 방식이 백남준 연구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나 전시 기획의 ‘키워드’로 서울을 꼽은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Courtesy of Gallery Hyundai
1990년 갤러리현대 뒷마당(현 금호미술관 자리)에서 진행된 이 진혼굿에서 백남준은 백색 두루마기를 입고 피아노를 도끼로 망가뜨리고 못을 박았다. 또한 보이스를 상징하는 중절모자를 16개의 시멘트 주형으로 떠내 자신의 사인을 남기며 친구의 영면을 기도했다.
 
Courtesy of Gallery Hyundai
김창열은 갤러리현대에서 출발해 밧줄로 묶은 바이올린을 끌며 1963년 독일에서 백남준이 한 ‘걸음을 위한 선’ 퍼포먼스를 재현했고 신관에 도착한 뒤 1962년 ‘바이올린 독주’를 따라 바이올린을 책상 위에 내리쳤다.
 
 
방법 3. 비디오아트의 테크닉

백남준문화재단은 1월 27~28일 ‘백남준 테크니스트 3인에게 듣는다/묻는다: 백남준 비디오 조각 보존과 뉴미디어아트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국제 심포지엄(듣는다)과 워크숍(묻는다)을 진행했다. 첫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백남준과 함께 작품을 제작했던 마크 파스칼, 폴 개린, 이경성을 초청해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백남준의 작품을 최적의 상태로 보존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공개 대화를 열었다. 마크 파스칼(신시내티 대학교 교수, 전 칼 솔웨이 갤러리 소속 테크니스트)은 1980년대 신시내티 백남준 작업실(일명 백남준 공장)에서 ‘로봇 가족’, ‘행성들’, ‘파우스트’, ‘거북선’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당시는 낡은 텔레비전 캐비닛, 폐기된 위성 접시를 수집해 조형물을 만들고 뉴욕에서 폴 개린이 만든 영상을 VHS 테이프로 재생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백남준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해 줄 실력자를 곁에 두고 협업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태도와 천재성을 결부시킨다. 강연 끝에 파스칼은 “주변 이들에 대한 그의 신의와 우정이 그가 가진 가장 훌륭한 재능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업적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양한 규모의 작품은 예술 관리자의 악몽”이라는 내용도 빠뜨리지 않았다. 생전에 디지털 기기가 빠르게 변하는 것을 지켜본 백남준 역시 비디오아트의 취약성을 인지하고 하드웨어 교체 및 소프트웨어의 호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1990년대 중반 수집가에게 전달한 문서에 따르면 백남준은 몇 가지 조건 안에서 작품의 수정을 허용했다. 같은 크기의 화면이라면 텔레비전 세트를 교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필요하다면 이 세트를 지지하는 골조를 변경하고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를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변환해도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파스칼은 2000년대 들어 아날로그 텔레비전이 사라지고 이후에 나타난 문제점을 애너하임에 있는 ‘비디오아치’ 작업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원작에 쓰인 13인치 소니 모니터를 더 이상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LCD 평면화면을 사용하게 되면 각도에 따라 화면이 흐릿하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원작이라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이 던져졌다. 강연이 끝나고 열린 토론에서 김정화(카이스트 교수)는 어떤 식으로 백남준의 작업을 다큐멘테이션하고 기록할 것인지 기준을 세워야 하며 작품 과정에 대한 사진, 드로잉, 매뉴얼을 담은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폴 개린은 중앙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작품을 취합하고 배포하기에 앞서 백남준과 협업했던 전문가들이 모여 작품에 대한 맥락과 스토리텔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현재 생산되는 디지털 정보의 아카이빙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백남준의 작품 원본(master source)을 보존하는 방법 또한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백남준 작업의 노후화와 갱신의 문제를 기술의 영역에 국한해 헛된 노력을 반복하기보다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원본의 정통성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연구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Courtesy of Nam June Paik Cultural Foundation
심포지엄에는 백남준과 함께 작품을 제작했던 마크 파스칼, 폴 게린, 이경성을 초청해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백남준의 작품을 최적의 상태로 보존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공개 대화를 열었다.
 

백남준이라는 다면체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전위음악가, 플렉서스운동 작가, 테크놀로지 사상가, 비디오 무당, 정보연금술사 등 백남준을 가리키는 말은 많지만 우리는 그의 파편만을 이미지로 기억한다. 포스트프로덕션(기존의 문화생산물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현상으로 니콜라 부리오가 창안한 개념)의 시초 격인 백남준과는 어울릴 법한 모습이다. 하이퍼텍스트와 조각난 이미지가 떠돌아다니는 디지털 세상에서 그를 추억하고 소생시키는 적합한 방법은 백남준이라는 다면체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대로 나누는 방식일 것이다. 흩어져 있는 파편을 모으고 그 사이의 의미를 연결할 때 우리는 백남준이라는 과거로 사라진 미래의 인물과 재회할 수 있다. 지금은 앞에서 말한 서로 다른 세 가지 방법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함은 접어두고 다음 파편을 찾아 나설 때이다. 1984년 1월 1일 뉴욕과 파리를 위성으로 연결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KBS를 통해 생방송되었을 당시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 메시지가 당도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백남준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tag.  디자인 , 전시 , 작가 , 백남준
       
월간SPACE 2016년 3월호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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