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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 / 13
윌리엄 켄트리지: 주변적 고찰
       

켄트리지의 작업실, 사유와 감각의 확장이 지속되는 장소
 
<윌리엄 켄트리지: 주변적 고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Dec. 1, 2015 - Mar. 27, 2016
 
차승주(큐레이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William Kentridge, The main image of the exhibition ‘Peripheral Thinking’ at MMCA
 
윌리엄 켄트리지는 1955년 극단적 인종차별정책이 만연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나 인권 변호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아프리카학을, 예술재단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프랑스에서 연극과 마임을 전공했다. 1975년부터 90년대 초까지는 극단에 근무하며 예술감독로 활동하는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칠 줄 몰랐다. 1990년대 초부터 소위 ‘프로젝션을 위한 드로잉’으로 알려진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일생에 걸쳐 축적된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이해는 이후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음악, 영상, 설치를 포함한 총체 예술로 그 관심과 열정의 결과를 집대성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그에 대한 간략한 프로필이다. 국내 최초 개인전이라는 타이틀로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약 1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 전시 <윌리엄 켄트리지: 주변적 고찰>은 이러한 출생 배경과 간략한 약력을 단서로, 그의 전 작업 영역을 섣불리 규정하고 범주화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 세계에 드러나는 내용적, 형식적 층위는 보다 복잡하고 다채로우며, 전 작업을 관통하여 그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는 생성, 변화, 움직임, 타자 등 소위 포스트모던 철학의 탈 주체사상과 맞닿아 있다.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인종주의에 대한 거부, 이성중심주의 사고체계 안에서 배제된 영역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단일화, 규정화에 대한 거부의 몸짓들로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심에서 비롯된 논리적 사고의 전개가 아니라, 자유연상의 흐름 안에서 탄생한 그 결과들을 보여주는 전시의 제목으로 ‘주변적 고찰’은 분명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공간의 구성 자체도 단일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연대기적으로 풀어내거나, 매체 혹은 주제별 범주화로 정형화하지 않으며 그의 작업세계와 그 주제적인 맥락을 이어간다. 한편 드로잉이라는 매체적 특성으로 인해 전시장의 낮은 조도는 일부 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영상박스 안에서 끊임없이 지워지고 생성되는 애니메이션의 검은 선들이 지닌 그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정적인 전시장은 운율감으로 채워지고, 상징과 은유를 통해 그 내용이 전하는 무게감은 감정의 울림을 배가시킨다. 이는 다채널 영상 매체의 현란한 이미지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간의 거부’, ‘양판희에 대한 메모’, ‘나는 내가 아니고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등이 전시된 2전시장과 연결되어, 스펙터클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적 경험, 현대음악의 리듬이 전해오는 공감각적 체험과 대비되며 전시경험을 다각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개별 작품 안에서 내용과 형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지점은 우선 ‘시간의 거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스듬히 널브러져 있는 판자에 5개의 영상이 영사되고, 정형화된 박스형의 공간이 아니라, 마치 작업실을 연상케 하는 어수선한 공간 안에서 관객은 스크린에 영사되던 메트로놈이 점차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거나,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작가의 퍼포밍으로 온갖 거부의 제스처들을 보게 된다. 이는 표준화된 시간과 인간의 심리적, 상대적 시간이 발생시키는 간극, 그리고 표준 시간에 대한 거부의 움직임을 정돈되지 않은 공간 설치를 통해 극대화하는 것이다. 한편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인 ‘소호와 펠릭스’ 연작은 켄트리지의 자아와 또 다른 자아라고 일컬어지는 백인 자본가 소호와 흑인 시인 펠릭스를 둘러싼 이야기로, 당대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풍경과 사회상을 보여준다. 이는 백인인 작가가 바라본 흑인의 현실을 거리를 두고 봐야만 하는 무기력함과 마음의 부채를 덜기 위한 행위의 흔적들이 드로잉의 지워지고 재생되는 반복적 움직임을 통해 일종의 치유 과정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는 그가 바라보는 외부 세상에 대한 이해방식을 마치 복잡하고 어지러운 ‘예술가의 작업실’이라고 표현했던 그의 머릿속의 확장처럼 펼쳐놓는다. 그 안에는 유동적인 사유의 흐름이 다양한 매체로 전달되어 외부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의식과 감각의 다층적인 길을 열어 보인다. 때로는 찢어진 검은 종이의 실루엣으로,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또 때로는 대형 드로잉 컷과 플립북, 미니어처 극장과 조각, 다채널 영상과 설치로 선보이면서 그의 작업 방식마저도 마치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변화와 생성의 길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림자 행렬’을 비롯한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그림자 형상들이 인종, 성별, 국적이 모호한 것처럼, 어떠한 종류의 규정이나 이분법적 사고에서 오는 폭력성과 억압을 거부하고, 전복적이자 실험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이야기들로 주변과 주변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열정이 배어 있다.

William Kentridge, Drawing for felix in exile, Charcoal, pastel, gouache on paper, 70×100, 80×100, 120×136, 110×118 cm, 1994
 
 
시간을 체화하는 드로잉
 
김해주(독립 큐레이터)
 
윌리엄 켄트리지 개인전의 첫인상은 무게감이었다. 흑과 백으로 쉼 없이 채워진 드로잉과 이를 통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상이 서정적인 음악과 결합하면서 묵직한 정서가 감돌았다. 108점의 작업들은 전시공간을 빼곡하게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복도까지 넘쳐났다. 켄트리지는 드로잉, 설치,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를 사용하면서 전시를 비롯하여 공연과 오페라 연출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종차별, 폭력 등의 묵직한 주제를 다룸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모노톤의 색감과 낮은 조도의 조명이 전시장 전반에 흐르는 무게감에 한몫을 했겠지만 ‘인권 변호사의 아들’, ‘남아공 인종차별 고발작가’ 등의 수식어 역시 전시공간에 제대로 발을 들이기도 전에 그런 느낌이 들게 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배경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용한 부분은 아니었다. 전시장에서 들여다본 그의 개별 작품 속에서는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보다는 드로잉을 만들어내는 몸이 보였고 흐르는 시간에 대한 상념이 드러났다.
전시 작품의 상영 방식에서 드러난 극장과 같은 집중의 형식과 웅장함에서 다방면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극과 마임을 공부했던 배경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은 작품의 결과만큼이나 그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몸을 주요한 동력으로 사용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켄트리지는 자신의 몸을 밀고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만든다. 특히 그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은 뚜렷한 몸의 흔적이다. 그는 쉽게 지워지고 다시 덧그릴 수 있는 목탄을 주로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간다. 지우고 덧붙이는 동작들 사이에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되는데 이러한 반복으로 종일 작업을 하면 약 10초 정도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시간을 체화하는 과정이다. 지워낸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는 목탄 드로잉은 시간의 연속성을 표현하는 데도 유용하다. 이 연속적 시간은 결국 생각이 변화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연속하는 그림들은 정지된 사고나 관념의 설명보다는 현실 속을 산책하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내면의 상태이다. 그는 마치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듯 이미지를 포착하고 또 흘려보낸다.
 
 
 
 
William Kentridge, Drawing for stereoscope, Charcoal, pastel, and colored pencil on paper, 49×64, 60×62, 80×120, 120×160 cm, 1999
 
플립북은 켄트리지 스스로가 임의성으로 설명하는 자신의 작업 특성을 가장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실제의 인쇄물로 여러 권 만들기도 했고, 영상으로 제작하기도 했으며, 책을 읽으며 강연하는 퍼포먼스의 장면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영상작업 ‘간접독서’(2013)는 텍스트의 내용을 따라가는 독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순간 발생하는 독자의 상념을 따라가는 손의 반복이다. 흔들리는 나무, 깃발을 든 여자, 복면을 쓰고 총칼을 든 남자가 페이지들 속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다 사라지는 가운데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닮은 흰 셔츠의 백인 남자가 산책을 지속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걸으면서 동시에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는 플립북 자체의 형식이기도 하고 역사(텍스트) 위를 밟고 걸으며 동시에 자신에게 집중하는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사회의 모순, 허상, 부조리, 비극 등이 작품의 배경이자 리서치의 재료이지만 그는 이것을 사실적으로 정리하거나 고발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세상을 이루고 시간을 구성하는 풍경의 일부로서 바라본다. 이 관찰이 너무나 아름다운 드로잉과 영상들로 연출되어 관객을 압도한다. 구슬픈 음악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몰입의 효과를 만든다. 특히 시간과 운명 속에 놓인 인간을 주제로 하는 ‘시간의 거부’(2012)는 관객을 영상과 설치 안에 함몰되도록 구성해 놓았다. 나무 베틀처럼 반복적 소리를 만들며 제자리를 걷는 ‘숨 쉬는 기계’, 일명 ‘코끼리’와 종이 나팔 모양의 스피커들, 그리고 천장 높은 공간의 사면을 채우는 영상들은 관객의 시선을 장악하고 시간의 흐름 자체를 체감하게 한다.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은 개인 예술가들이 선택하는 강렬한 기호체계, 즉 기존의 양식이 아니라 개인의 태도가 만들어내는 개별성을 미술사 안에서 공식화하기 위해서 ‘개인의 신화’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이미지 그 자체의 실재가 아니라 이미지화된 실재들을 생산해내는 개별 작가들의 동력과 그 특이성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였다. 제만이 뒤샹, 보이스를 거론하며 설명한 이 개념처럼, 켄트리지 역시 자신만의 복잡하고 거대한 머릿속을 작품과 전시로 표출한다. 이 같은 강렬한 에고 속에서 그가 배경으로 사용한 사회적 모순과 정치 상황의 실체는 오히려 감춰지거나 작품 그 자체를 벗어난 수식어 안에서 작동한다. 그것이 작품의 섬세한 맥락과 기호들을 읽기 위해 내가 갖춰야 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혹은 작가가 간과하거나 지나치고 있는 시선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차승주는 영국 리즈대학교 미술관학 석사를 졸업하고, 고양문화재단 미술관 큐레이터(2007~2008) 및 전주국제영화제 기획팀장(2009~2010)을 지냈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디자인박물관 운영 기본계획 연구’에 공동 참여 했으며, 2013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전시로 <박흥용>,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 <숨쉬는 환영>, <이준>, <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 등이 있으며, <모딜리아니와 잔느>, <즐거운 나의 집> 전시 등에 협력 큐레이터로 참여한 바 있다.
김해주는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집단에서 도출되는 공동의 몸의 형태와 반응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안무사회>(2015), <결정적 순간들>(2014), <Once is not enough>(2014), <Memorial Park>(2013)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tag.  미술 , 아트 , 미디어 , 작가 , 윌리엄 켄트리지 , 차승주 , 김해주 , 드로잉
       
월간SPACE 2016년 2월호 (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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