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Magazine
 
SPACE Magazine
Google
     
 
+ E-SPACE >> E-MAGAZINE >> ART & DESIGN
2016 / 07 / 22
이 시대 공동체의 조건과 욕망
       

이 시대 공동체의 조건과 욕망 
 
<서울 바벨
 
서울시립미술관 
Jan. 19 - Apr. 5, 2016 
 
우현정 
 
 
 
Installation view, the works of 800/40 and 200/20 in the exhibition ‘27 Club’
 
미래완료형 공간의 생성 조건
신생공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2014년 이후 생겼으니 이제 겨우 2년 남짓이다. 자발적 예술 플랫폼으로서 1980~90년대생 젊은 작가나 기획자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연대를 이룬다는 (대체로 이런 공통된 특징을 가진) 신생공간의 출몰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청량리, 상봉동, 을지로 등 기존의 미술관, 갤러리와는 동떨어진 지리적 좌표를 만들며 서울의 아트맵을 물리적으로 확장하는 모습은 SNS를 통해서 가상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모습과 겹치며 ‘어떤 생각(들)’을 실어 나르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각 공간이 위치한 지리적 특수성과 온라인에서 빠르게 변모하는 이야기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전에 없던 방식으로 예술이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 생각의 중심을 이룬다. 신생공간의 주축이 되는 미술인들은 작가이자 기획자인 경우가 많다. 통상 기획자의 초청으로 전시에 참여하는 방식과 달리 이들은 스스로 전시를 만들고 그에 맞는 타이틀을 자신에게 부여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작가 이력을 쌓는 것이다. 물론 기성 작가로 인정받기 위함은 아니다. 창작 레지던시 입주나 신진작가 공모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전시할 기회가 많지 않은 미술인들이 능동적으로 활동 영역을 찾아 나가면서 시작된 일이다. 무명의 작가,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에게 제대로 된 공간을 마련할 경제적 기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제대로 된’이라는 말은 ‘서울 중심가에 있는 화이트 큐브’로 치환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공간은 ‘변두리, 비어 있는 상가, 지하실, 오래된 한옥’이 되었다. 큰 자본이 없으니 당연히 공간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임대료이다. 수입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이 공간의 생명주기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문을 닫는 이유가 운영 비용만은 아니겠지만. 새로운 공간의 탄생은 다른 공간의 죽음과 교차하고 이는 곧 새로운 공간 자체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서울 바벨>이 문을 열고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오늘의 살롱>, <청춘과 잉여> 전시로 주목을 받았던 커먼센터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신생공간의 등장과 활동이 현 미술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점검해 보는 <서울 바벨>에 의해 이 공간들은 미술관에 입성했다.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서 공간을, 그리고 그 안의 활동, 더 깊숙하게는 작가들을 판단할 기회가 생긴 시점에서 “미술인이 운영하는 공간, 미술계의 경직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 공공의 이익을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한 공간”을 표방한 커먼센터의 활동이 종료된 것이다. 이는 <서울 바벨>에 참여한 17개 공간의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자의 현재는 치열하다.
 
 
Performance view of sbt from Archive Bomm in the exhibition ‘NEWS NOWS’
 
두 가지 욕망의 탑 앞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월 19일 시작한 <서울 바벨>전을 기획한 신은진(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은 “서울의 구도심과 구산업 지역 혹은 변두리 외곽 지역의 틈새에서 독립적으로 공간을 운영 중이거나 스마트폰과 SNS를 기반으로 한시적 공동작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안적 공동체의 창작 활동 영역과 방식에 주목하고 이러한 현상을 매핑하기 위해” 이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매핑의 결과를 ‘바벨’이라 칭한다. 그 이유로 ‘공동체에 포함되거나 귀속되지 않은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들며 탑을 쌓는 방식, 목적을 복수로 남겨둔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기본 전제로 삼은 이 탑은 완공 대신 끝없이 다시 쌓음으로써 생명을 연장한다. 서로 다른 모양의 벽돌로 무너지지 않는 탑을 유지하려는(키우려는) 욕망은 이 전시에 참여한 이들이 합의한 공동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를 위해 (이 전시에서만큼은) 또 다른 욕망이 작동했다는 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시 풍경을 봐야 한다. 시립미술관에 들어서면 총 17개 팀 약 70여 명의 기획자와 작가들의 이름이 프린트된 하늘색 벽 가운데 화려함을 뽐내는 전시 제목과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색과 대비되는 어두컴컴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신생공간의 각축장이 펼쳐진다.
 
 
Installation view, the works of Jeong Hong Sik, Oh Eun, Jeong Jae Yong and Choi Jung Ho from Hyperbolic Time Chamber
 
미술관으로 들어오면서 각 공간의 지리적 정보는 상실되었다. 이번 전시가 하나의 현상의 실체를 파헤치고(구현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보는 과정이라면 현상의 기반이 되는 ‘장소’의 부재는 다수의 정보 손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획자가 마련한 대안은 신생공간의 가변성, 임시성, 불완전성을 산업 재료로 드러내는 것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어느 순간 생겨난 공간들, 하지만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공간들의 상태를 아시바, 목제 팔레트, 합판, 각목 구조물로 가시화하고 이를 이용해 각 공간을 적절히 분리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변두리 풍경이 어쩐지 너무 매끄럽다. 파노라마 사진에서 카메라 화각에 잡히지 않는 부분을 은근슬쩍 연결해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처럼 <서울 바벨> 전시에서 인공미를 지우긴 어렵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 고급 정장을 입은 듯하다. 위에서 말한 또 다른 욕망으로 인해 이런 인상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엔 서울시립미술관(또는 기획자)과 참여작가(신생공간)의 태도가 뒤섞여 있다. 이들이 왜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는지 사실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짐작하건대 전자는 신생공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한 한 좋은 옷을 입혀주고자 했고, 후자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자신들의 활동무대에 한 번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싶었으리라. 제도권에서 이뤄지는 전시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젊은 작가들은 이 전시에서 지난 작업을 선별하며 현재의 위치를 점검했을 것이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자기증명은 장진택(독립 큐레이터)이 말한 젊은 세대의 ‘몰입’과 ‘절박함’과 맞물려 꿈틀대는 욕망을 뿜어낸다. 그 결과 전시는 풍성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진행형으로 프로젝트의 면모를 드러낸다. 몇몇 참여팀은 제한된 시간을 쪼개고 겹치는 방식으로 전시의 모습을 바꾸었다. 예를 들면 아카이브 봄이 기획한 전시 <NEWS NOWS>의 참여 작가 유목적 표류(음악가 김민홍, 안무가 곽고은, 영상작가 정진수)는 1월 19일 오프닝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2~3월 2, 4번째 수요일마다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이를 아카이빙하여 전시 막바지에 한 공연으로 엮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림상가에 근거지를 둔 800/40은 2015년 진행한 ‘24시간 레지던시’를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옮겨 왔다. 매일 1명의 작가가 미술관 개관시간에 맞춰 입주한 뒤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창작활동을 지속한다. 오은, 정재용, 정홍식, 최중호로 이뤄진 정신과 시간의 방은 독립된 전시관을 꾸미고 관 운영에 관한 시행 규칙을 세우는데 작가는 최장 2주마다 1점 이상의 작품을 추가해야 한다. 한편 수차례 전시를 관람하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기획자가 말한 ‘전시의 전시’가 됨으로써 한 작가가 서로 다른 공간, 장소, 시간 속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A라는 공간과 작업한 한 작가의 활동이 모니터에서 아카이브 영상으로 송출될 때, 그가 B라는 공간의 참여 작가로 전시장에서 신작을 진행하는 광경이 연출될 수 있다. 또한 전시장에 관람객이 아닌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참여 작가나 공간의 관계자들이 돌아가면서 이 가상의 서울 변두리를 배회하고 있는데 이들의 행동반경은 그리 넓지 않다. 각 팀에게 주어진 공간 주변 위주로 걷다가 다른 곳으로 잠시 산책을 다녀오는 정도이다. 화이트 큐브로 들어오면서 사라진 지리적 정보가 독특한 형태의 감각으로 복구되면서 서울의 이곳과 저곳이 겹쳐진, 그러나 어디에도 없을 그런 장소가 탄생했다.
 
 
Installation view, the works of Seokmin Kong, Gim Hyewon, Byun Sanghwan, Sungseok Ahn, An Chorong, Lee Euirock and Jun Sangjin from nowhere
 
불꽃놀이와 화염의 소용돌이 가운데
<서울 바벨> 전에 앞서 신생공간과 젊은 작가들의 활동에 주목한 행사와 사건들이 있었다. 손에 꼽을 만한 것으로는 2015년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굿-즈>가 있다. 이는 ‘동시대 미술의 환경/조건에 대해 고민하는 시각예술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굿-즈', 소량 제작된 에디션, 작업의 파생물 등을 직접 판매하는 행사’로서 2014년 교역소에서 진행한 작품 판매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왔다. 방문자 6,000여 명, 판매수익 1억 3천만 원이라는 기록을 남긴 <굿-즈>는 신생공간들이 SNS상에서 보여주던 에너지가 현실에서 성공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 물론 2014년 말에서 2015년 상반기까지 활성화되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청년관을 위한 행동’도 징검다리의 역할을 했다. <청춘과 잉여> 전시의 연계행사로 교역소에서 열린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에서 임근준(미술평론가)이 제안한 내용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젊은 작가를 위한 전시장 마련과 관장 선임의 투명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뒤이어 워크숍, 라운드테이블, 공개 강연, 웹사이트 오픈, 기자회견, 성명서 제출 등을 진행하며 그야말로 변화 촉구를 위한 사회운동의 성격을 가졌지만 작년 6월 이후로는 잠정적인 휴식에 접어들었다. <서울 바벨>을 포함해 위의 사례들을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우선 현상의 발생과 판단 사이의 시차가 매우 짧고 판단을 하는 와중에도 현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전시도록에 나온 두 이미지가 이런 동시대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꽃놀이와 화염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 표지와 전시장 입구 하늘색 벽을 찍은 사진을 보자.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은 어떤 일이 이미 끝났음을 알리는 회색 구름에 잡혀 먹힐 듯하다. 복잡한 심경으로 다음 장에 있는 전시장 입구 사진을 보니 스크린에 ‘임시재생목록’의 한 장면이 멍한 정신을 일깨운다. “죽지 마라. 얘들아.”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 | 사진 조재무 
 
 
Seunghyuk Park, Prop, Brick, stainless steel, pipe, color with white cement, 39 x 195 x 15cm (each), 2016
 
  
 
tag.  미술 , 설치미술 , 전시 , 미술관 , 작가 , 신생공간 , 시립미술관 , 동시대미술
       
월간SPACE 2016년 3월호 (580호) 
 
기사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을 달아주세요.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
 
 
+ 다른 기사 보기
사회와 연대하는 예술
얄팍한 이미지 뒤에 서린 욕망: 2016 서울 포커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셀 수 없는 편린의 역사를 붙잡다: <동백꽃 밀푀유>
매개기억
최우람: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세계
수직의 세계에서 수평을 본 건축가
달은 가장 오래된 공간, 2016
<군중과 개인: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 김수자/마음의 기하학>
템플
새로운 유라시아 파빌리온
마탈리 크라세: 리플렉시티, 2015, 언플러그드 디자인
응봉교 방음터널
백현진: 다른 사람, 다른 삶, 다른 작업 그리고 오늘의 백현진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의 역설
랩[오]: 예술의 본질에 다가서는 기술의 잠재력
안티브이제이: 빛의 경험, 새로운 인식의 틀
한계를 넘어서: 다니엘 뷰렌 vs 황용핑
현재를 독해하는 복수의 시간성
움직이는 예술
김병호:합리에 깃든 자연의 정서
윌리엄 켄트리지: 주변적 고찰
다이내믹 릴렉세이션
백남준을 추억하는 세 가지 방법
한양도성 순성안내쉼터
도시공간에 침투하는 미술의 전략
턴 온 더 블랙 미러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 정체성의 구축과 해체
틀 안에서 불완전한 아름다움
함경아: 유령의 발자국
 
 ISSUE TO TALK
 E-MAGAZINE
ARCHITECTURE
URBAN
INTERIOR
PEOPLE
ART & CULTURE
BOOKS
ACADEMIA
 DAILY NEWS
 
best tag.
이우환, 무회건축연구소, 김재관, 판교주택, 인물, 도서, 건축사진, 이미지, 음악, 도면, 디자인, 환경, 서평, 서울, 미술, , 아키텍쳐, 단행본, 인테리어, 건물, 도시, 전시, 공간, 건축가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5만원 이상 결제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LG U의 구매안전(에스크로)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결제대금예치업 등록번호: 02-006-00001
사업자등록번호 206-81-40424 | 통신판매신고번호 제2013-서울서대문-0150호 | 대표자 황용철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박성진
㈜CNB미디어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 52-20(연희동) 03781 | 대표번호 02-396-3359 / 팩스 02-396-7331
청소년보호책임자 이름 김준 | 소속 공간연구소 | 전화번호 02-396-3359 | 이메일 editorial@space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