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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 / 08
백현진: 다른 사람, 다른 삶, 다른 작업 그리고 오늘의 백현진
       

백현진: 다른 사람, 다른 삶, 다른 작업 그리고 오늘의 백현진
 
백현진의 개인전 <들과 새와 개와 재능>이 열리는 PKM 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이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가 이전에 했던 수많은 인터뷰를 살펴보았다. 어떤 질문에도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는 작가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보단 그가 지난날 했던 말, 그에게 던져진 말에서 현재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가 과거에 했던 말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작업을 한다”이다. 당연한 이치이며 간단한 일이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도 했다. 긴 시간을 거쳐 그가 그려낸 오늘의 풍경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인터뷰 우현정 | 자료제공 PKM 갤러리
 
 
Installation view of Hyunjin Bek solo exhibition at PKM Gallery, 2016
 
우현정: “연남동에 사는 백현진입니다”로 본인을 소개했었다. 요즘에는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하다.
백현진: 연남동이 유명해지고 나서 쓰지 않는다. 이 지역은 예전부터 대만 화교 출신이 많고 그 외에도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서 좋았다. 무언가를 한다고 이야기하면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이상한 태그가 붙어서, 말 그대로 내가 있는 위치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요즘에는 “그림 그리고 노래하는 백현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영남과 연관 짓는 건 싫다. 이리저리 도망도 가보고 소개할 때 농담도 해봤지만 지금은 화가이자 가수라고 이야기한다. 이름을 계속 바꾸다 백현진이라고 쓰는 것처럼 팩트를 말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Hyunjin Bek, Civilization’s Gorge, Oil, acrylic spray, oil stick on oil paper, 136.3×105.2 cm, 2014
 
우현정: 2008년 인터뷰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도 같이 생각난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걸 글로 쓸 필요는 없다.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걸 그림으로 그릴 필요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백현진: 다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나온 문장으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지는 필름으로 만들 것을 괜히 소설로 만들지 말고 회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음악으로 하지 말란 소리이다. 그들이 만든 문장을 내 필터로 걸러서 사용한 거다. 그 텍스트를 분석해서 다른 식으로 해석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게 메아리가 되어 내게 어떻게 들리는지, 쓰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음악가고 화가니까 두 분야를 왔다 갔다 하며 소리나 회화로 결과물을 생산해낸다. 양쪽으로 안되면 다른 매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동영상이면 뭔가 좀 더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추적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도달하려는 게 아니라 세상에 반응하는 태도 같은 거다. 구체적으로 되고 싶은 건 없지만 음악가나 화가로서 작업할 때 똑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혼자 거리에서 배우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주워듣고 엿보면서 알게 된 대로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

우현정: 위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창작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왜 물건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백현진: 그게 편하다. 내가 선호하는 대로 사용하는 거고 사람들도 그렇게 칭하면 좋겠다고 천명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보다는 물건이 힘이 덜 들어간 낱말이다. 그 상태면 충분하다. 그래서 컴퓨터 폴더에, 회화는 ‘비주얼 매터’, 음악은 ‘사운드’, 문학은 ‘텍스트’로 명기했다. 소리 나고 음악 났지 음악 나고 소리 난 적 없고, 사람 나고 예술가 났지 예술가 나고 사람 난 적 없다. 맨땅에 헤딩이라도 난 더 큰 맨 덩어리에서 헤엄치고 싶다.
 
 
Installation view of Hyunjin Bek solo exhibition at PKM Gallery, 2016
 
우현정: 2008년 첫 번째 개인전의 도록 첫 장에 ‘글-그림-음악’이 삼각형 꼭지를 이루는 그림이 있다. 현재 작업은 어떤 요소들로 균형이 맞춰져 있나?
백현진: ‘글-그림-음악’이라는 글귀는 고시생이 열심히 공부하자고 써놓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20년 정도 같은 일을 했는데 여전히 같은 문구를 붙여 두진 않을 듯하다. 요즘은 말 그대로 무리 없이 돌아가는 어떤 상태면 만족한다. 무리 없는 상태라면서 대안공간이나 클럽이 아닌 왜 이름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하는지, 굳이 앨범은 왜 내는지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다. 더 멋대로 하면서도 더 무리가 없이 살려고 노력한다.

우현정: 이번 개인전에 나온 작품은 작가의 의식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물처럼 보인다. 개연성이 없는 단어가 조합되면서 하나의 사건을 연상시키고 초점이 나간 사진이 된다. 도록 글에 ‘눈을 뜬다’와 ‘눈을 감는다’는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감정과 상황들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백현진: 이준규 시인의 글이다. 도록에 항상 미술 평론가의 글을 실어왔는데 늘 무리가 있었다. 옷으로 치면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느껴졌다. 예를 들면 백양 메리야스를 입고 있는데 거기에 들뢰즈 프린트를 찍은 것처럼 말이다.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평론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업 중엔 끊임없이 조건이 변한다. 몇 년 전에 과수면증으로 오래 누워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림을 그리고 싶긴 한데 특별히 무언가를 그리고 싶진 않았다. 화면에 그렸다 지웠다 다시 그렸다 하던 중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을 통과하고 이제야 문장으로 이 정도 정리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참혹하고 암담한 마음이었다. ‘여기서 난 뭐 하고 있지? 이렇게 그림만 그리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과 함께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 안에서 균형을 잡았다거나 그 시간을 견뎠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런 상황에 나온 그림이 이 정도다. 정부 비판의 메시지가 담긴 ‘암담함과 참혹함’이 포스터는 아니다. 화면 속 문구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형태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복잡한 상황을 통과하면서 화가가 만들어낸 결과 중 하나이다. 현대미술은 퀴즈쇼로 가려고 한다. 예를 들면 벤야민 같은 레퍼런스를 달고 말이다. 그런 텍스트를 찢어버리고 싶다. ‘암담함과 참혹함’ 재차 봤을 때 파란색이 예뻐 보이면 그 상태로도 충분하다. 정부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고 시위를 하던 중 젊은 아가씨가 지나가서 눈이 갈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거짓인가? 좋은 의미에서 얽히고 설키면서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들도 있다. 역으로 치면 신도림 환승로처럼.
 
 
Hyunjin Bek, Gloom and Misery, Oil on oil paper, 136.2×106.6 cm, 2014–2016
 
우현정: 이번 전시 제목에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덧입힌 글을 페이스북에서 봤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개인을 구분하는 편인가?
백현진: 개인과 예술가 역할을 분리하지 못한다. 민중미술 그림에는 낫과 농민의 손이 투쟁이라는 글귀와 함께 한 화면에 자리한다. 나는 산만한 사람인지 여기에 투쟁이라 쓰고 저기에 바나나를 그린다. 어제 바나나를 먹어서 혹은 벨벳언더그라운드 앨범 재킷의 바나나가 생각나서 그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나? 이에 대한 답을 홍상수 감독을 통해서 엿봤다. 하나의 작업에 수만가지 메시지를 넣어도 된다. 그런데도 메시지가 선명한 포스터 한 장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상업공간이 아닌 곳에서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과 포스터 전시 한 번 할까 생각 중이다. 그런 전시를 한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최소한 이런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막막함과 답답함에서 출발했다. ‘암담함과 참혹함’이란 그림에서 특정 단어에 테이프를 붙였듯 타협도 하는 인간이다.

우현정: 이번 전시 기간 중 하루 2시간씩 진행하는 사운드 퍼포먼스 ‘면벽’은 원래 진행하던 ‘지속음과 함께하는 야반소리’의 연장이다. 지속음과 야반소리는 어떻게 나온 말인가?
백현진: 그간 서양식 음계를 무너뜨리고 가청주파수 안의 소리, 그중 지속음에 관해 나름 깊게 탐구해 왔다. 수영장이면 라인을 걷어내고 수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야반소리도 그렇게 시작했고 이번 전시장도 이와 맞닿는 측면이 있다. 소리를 작업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장비를 하나씩 갖추고 엠씨스퀘어에서 나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며 멍한 상태에서 작업한다. 이렇게 하면 노래하거나 붓을 들기 전 아무리 복잡했던 생각도 어느 정도 비워진다. 전시 오프닝에 참석한 13회 카셀 도큐멘타 감독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예가 소리로 인해 색이 달라 보인다는 말을 했다. 사실 청각이나 시각은 공기 중의 진동을 통해 감각되고 지각된다. 나는 진동 주기를 변경하면서 붓질을 계속했다. 그것과 한몸이 되어서. 그와 같은 조건을 이 공간에 구현한 게 ‘면벽’이다. 야반소리는 야반도주가 생각이 나서 따온 말로 일종의 현실도피의 뜻을 내포한다.
 
 
Installation view of Hyunjin Bek solo exhibition at PKM Gallery, 2016
 
우현정: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작업한다는 건 매우 부러운 부분이다.
백현진: 운이 좋게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중얼중얼 노래하고 있으면 좋으니까 계속하게 됐다.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릴 땐미움이나 욕망 같은 부질 없는 생각은 접어둘 수 있으니 작업을 많이 한다. 도인처럼 수련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이 두 가지 일을 할 땐 깔끔하고 선명한 상태에 빠져든다. 그 상태로 계속 머물고 싶기에 시장과 상관없이 이 일은 지속하는 것이다. 앞으로 화가로 시장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볼펜 하나로도 그림은 계속할 수 있고 노래도 지속할 수 있다. 그림과 노래를 몸에 더 밀착시켜야 한다. 복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혼자 잘 지내는 방법들이 필요하다.
 
우현정: 이번 전시를 보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좋다”라는 평이 많이 들린다.
백현진: 전시를 보고 어떤 사람은 분발하라고 말하거나 도통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반면 회화의 맛을 보여줘 고맙다고 할 수도 있다. 대다수 사람은 잘못된 교육 때문에 일종의 허깨비에 홀려 페인팅을 즉물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좋다’라는 반응이 기쁘고, 안규철 작가가 오프닝에서 “이런 그림은 처음 본다. 회화로도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라고 말해서 좋았다. 
 
 
Installation view of Hyunjin Bek solo exhibition at PKM Gallery, 2016 
 
백현진은 서울,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아트선재센터, 성곡미술관, 상해 민생 현대미술관, 쾰른 미하엘 호어바흐 재단, 두산 갤러리 등 주요 미술기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백현진은 인디밴드인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 방준석 음악감독과 함께 듀오 프로젝트 방백을 결성하여 활동 중에 있다.
 
 



 
 
 
tag.  미술 , 아트 , 전시 , 작가 , 백현진 , PKM Gallery
       
월간SPACE 2016년 3월호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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