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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 / 02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의 역설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의 역설
 
<색, 다른 공간 이야기> 
 
대림미술관
Feb. 25 - Aug. 21, 2016
 
 
Installation view of COLOR COMPLETES FURNITURE 
 
대림미술관의 2016년 첫 전시 <색, 다른 공간 이야기>가 지난 2월 25일 열렸다. 고백하자면 2012년 <핀 율 탄생 100주년전- 북유럽 가구 이야기> 이후에 대림미술관을 찾은 적은 없었다. 이따금 통의동의 다른 전시장을 찾아가던 도중 늘어선 입장객의 행렬이 해를 더해갈수록 길어진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그들의 연령대나 차림새의 변화를 확인할 뿐이었다. 이 미술관의 전시를 보지 않았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마다 무슨 전시를 하는지 알고 있었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온 작가도 있었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다시 오기까지 4년이 걸렸던 것일까?  우현정 | 자료제공 대림미술관
 
Installation view of COLOR IS EVERYWHERE
 
알지만 찾지 않던 전시장에서 만난 봄
위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번 전시를 살펴보는 게 순서일 듯싶다. “색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색다른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일깨우고자 한다”는 기획 의도를 반영하듯 전시장은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다. 색이 오브제와 결합하고 공간에 접목되는 과정, 즉 평면(사진)에서 입체(인테리어 디자인)로 확장되는 모습을 다섯 단계로 세분화하여 관객이 색을 새롭게 바라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Color is Everywhere’의 주인공은 미국의 색채 전문기업 팬톤이다. 여섯 명의 사진작가는 음식, 풍경, 사물, 인물에서 찾을 수 있는 주요 색을 팬톤의 컬러칩과 같은 화면에 배치하여 일상에서 색을 발견하는 시도 자체를 예술 작업으로 변화시킨다. 그렇다고 이 결과물이 화이트 큐브에만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 ‘팬톤 프로젝트’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온라인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미술 작품에 매겨진 무거운 시선에서 자유롭다. 액자 틀을 벗어난 색은 유리, 패브릭, 가죽, 금속과 만난 뒤(‘Color Meets Material’), 디자이너의 영감이 되고(‘Color Challenges Design’), 몇몇은 최고급 브랜드를 상징하는 가구가 된다(‘Color Completes Furniture’).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곳은 (당신의) 집이다(‘Color Paints Space’). 페인트 브랜드 듀럭스에서 제시하는 올해의 색을 네 가지 주제로 나눠 이상적인 생활공간을 연출하는 것으로 전시를 마무리한다. 팬톤의 컬러칩에서 보던 색은 벽으로 스며들었고, 디자이너의 작품과 가구가 무심한 듯 툭툭 놓여 있다. 여기에서 ‘무심한 듯 툭툭’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디자인 박물관의 명작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시되어도 무방할 작품이 본래의 기능에 맞춰 사람들 곁으로 내려와 앉았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거장의 마스터 피스부터 컨템포러리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작품까지’를 두루 포괄하는 이번 전시의 볼거리는 충분하다. 전시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상에 남은 색과 닮은 페인트 한 통을 사서 방의 한쪽 면을 새롭게 연출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 수도 있겠다. DIY 문화가 부상하고 셀프 인테리어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시대 흐름과 시기를 적절하게 이용한 그야말로 봄에 걸맞은 전시라 할 수 있다. 겨우내 무거웠던 몸을 일으키고 갑갑했던 집안 공기를 환기하기에 색의 변화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커튼을 바꿔 달던 엄마의 모습은 장갑을 끼고 롤러에 페인트를 묻혀 벽을 칠하고 가구를 용도에 맞게 고치는 당신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Alison Anselot’s Pantone Project in the part of COLOR IS EVERYWHERE /ⓒAlison Anselot 

어떤 환상이 주는 만족감과 박탈감
이 전시가 관객에게 주는 충족감은 분명히 있다. 론 아라드, 토쿠진 요시오카, 찰스 & 레이 임즈, 필립 스탁 등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65점의 의자의 역사적 문맥이나 탄생 배경과 같은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둬도 좋다. 알바 알토의 대표작 ‘라운지 체어’와 ‘스툴 60’이 다른 작품과 톤을 맞춰 공간 안에 자리할 때 그의 명성 또한 잠시 잊게 된다. 사진으로만 보던 것들, 갖고 싶었고 경험해보고 싶었던 작품을 개인 공간(으로 보이게끔 연출한 전시장)에서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눈앞의 대상이 내 것이 되는 환상에 빠지는 것이다. ‘저 의자를 창가에 두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신기루는 사라지고 현실이 민낯을 드러낸다. 선명한 벽 색에 묻혀 보이지 않던 디자이너의 이름이 다른 의미에서 부담스럽게 느껴질 터이다. 전시장을 나온 작품은 상품이 되어 역사의 무게에 버금가는 경제지표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때문이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을 신조로 삼아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 온 대림미술관은 예술이 어렵다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시선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술로 영감을 주고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 여기까지가 <색, 다른 공간 이야기> 전시가 약속할 수 있는 한계지점이다. 그간 대림미술관에서 선보인 전시를 살펴봐도 이 선을 넘어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의 취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훈련을 거듭해 오면서 대림미술관만의 특색이 생겨났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이름 대신 색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관객의 감성에 다가간 것처럼 기획전시의 강점인 전문성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2014-2015)이 비틀스에 기대고 <라이언 맥긴리- 청춘, 그 찬란한 기록>(2013)이 청춘과 힐링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전략을 깎아 내릴 생각은 없다. 단지 이번 전시를 보면서 느낀 복잡한 심경의 실체가 궁금하고 왜 오랫동안 대림미술관 방문을 주저했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생각해 보고 싶었다. 복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작품의 반이 가려진 채 관람하는 상황도 싫고, 입장을 기다리며 인스타그램에 올릴 셀피를 찍는 광경을 참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2015년 총 관람객 수 46만 명이 말해주듯 미술관의 유명세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불편한 관람 경험이 발걸음을 돌리게 한 결정적인 원인은 아닐 것이다. 이제 서두에 던진 질문의 답을 써보려고 한다.
 
 
Glass works by iittala in the part of COLOR MEETS MATERIAL /ⓒiittala, birds
Fabrics from KVADRAT in the part of COLOR MEETS MATERIAL/ ⓒKVADRAT

대중문화가 된 미술을 보는 이중적 시선
2014년 1월호 「지큐 코리아」에 장우철 에디터는 ‘나는 왜 라이언 맥긴리 전시회에 가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리고 이후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3월호 「아레나 옴므」의 이우성 에디터가 ‘나는 라이언 맥긴리의 전시에 갔는가’라는 답글로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2년이 흐른 일이지만 이 논쟁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대림미술관의 전시 성격이나 기획 방향이 그 이후로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전자는 전시 제목에 나온 청춘을 노골적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라이언 맥긴리를 소개 혹은 소비하는 가장 ‘낮은’ 선에 맞추고, 그를 모르는 ‘대중’이라는 좌표를 향한” 이 전시는 그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개인을 소외시키고 흥행에만 목적을 두었기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에 대해 후자는 엘리트주의를 경계하며 ‘대중’의 실체가 무엇인지 반문한다. <색, 다른 공간 이야기> 전시에 출품된 작품 간의 느슨한 연결고리는 사실 고도의 전략을 통해 만들어진 정교한 퍼즐과 같다. 생산적인 담론보다는 작가의 명성이나 이미지의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 전시에서 기획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관객과 미술을 대중문화로 소비하는 관객 모두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포섭된다. 여기에서 ‘나는 어떤 관점에 가까운가? 그런데 그 구분이 중요한가?’라는 후속 질문이 생긴다.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는 미술관의 비전은 사립미술관의 자율성에 해당하는 영역으로서 이 부분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대림미술관이 화이트 큐브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영역을 개척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D 패스를 고안해 강연, 콘서트, 워크숍, 피크닉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사람들 간의 네트워킹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큰 성과이다. 2002년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유형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생산해 냈고, 그 영향력을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에너지로 활용하며 2012년 한남동에 전시공간 ‘구슬모아 당구장’을 열었다. 이곳이 유명해지기 전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사진 전문 기관으로 2000년대 중반 <존재하지 않는 세계>(장 보드리야르사진전, 2005)나 <리빙룸: 콜렉션 1>(2006) 전시를 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대림미술관의 성공에서 비롯한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고 응원하면서도 왜 그곳을 찾지 않았던가?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한편에 엘리트주의를 놓지 못하는 전공자의 미련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있다. <색, 다른 공간 이야기> 전시에서 마주한 박탈감은 대중문화가 된 미술은 전시장 내에서 눈으로만 소비할 수 있을 뿐, 현실 속의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직결된다. 전시를 보고 나와 내가 살 수 있는 건- 다른 말로 예술을 통해 일상을 바꿀 수 있는 범위는- 페인트 한 통과 걸작을 유사 모방한 탁자 정도다. 미술관에서 작품에 부여된 미술사적 가치를 거둬내자, 불현듯 상품처럼 느껴지는 현상에 혼란을 느꼈고, 전시 도록은 이케아 카탈로그의 고급 버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전시가 그곳을 찾은 대다수 사람의 일상과는 접점이 없다는 사실을 꼬집는 이유는 전시를 관람하며 지적 호기심(또는 허영심)을 채우려는 욕망을 완전히 지워 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미술 작품으로 어떤 위안과 감응을 얻고 싶고, 그게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일상을 환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여전히 미술을 성역 안에 가둬두는 것일까? 다시 고백해야겠다. 4년이나 지나서야 불편했던 마음을 들여다본 이유는 놓지 못한 것과 갖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Fredrik Paulsen’s works in the part of COLOR CHALLENGES DESIGN / ⓒFredrik Paulsen
Morten & Jonas’s wokrs in the part of COLOR CHALLENGES DESIGN / ⓒMorten & Jonas
 
tag.  디자인 , 전시 , 미술관 , 대림미술관 , 컬러 , 팬톤
       
월간SPACE 2016년 4월호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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