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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 / 26
김병호:합리에 깃든 자연의 정서
       

김병호:합리에 깃든 자연의 정서 
 
자동차 공장, 원단 자재 창고가 즐비한 성수동의 작업실에서 김병호를 만났다. 이곳에 있는 3D 프린터로 출력한 여러 종류의 파이프, 삼각형 뿔 모양의 황동 가공물, 적동으로 만든 컵, 스테인리스 스틸 반원구 등은 재료라기보다는 작품이 되기 전의 상태라 할 수 있다. 김병호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효율적, 합리적 가치에 따라 인간의 삶과 관계 또한 규격화되는 현상을 작업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삼아 기계적 시스템을 활용하여 모듈을 만들고 이를 조립해 작품을 완성한다. 모듈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이 어떤 전환점에 서 있는지 대형 야외 프로젝트와 준비 중인 신작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려고 한다. 인터뷰 우현정 | 자료제공 작가(별도표기 외
 
Byoungho Kim, Vertical Garden, Urethane coating on brass, stainless steel, piezo, arduino, 350(h)×210×500cm, 2016/ Photographed by Myungsoo Kang
 
우현정: 공간 구획 시 기준이 되는 기본 치수이자 단위를 의미하는 모듈을 작품의 기본으로 삼는다. 작가 스스로 사회적 관계 안에서 모듈의 하나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모듈이 작업 전반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병호: 작품은 작가의 독립된 의지로만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작업실이 아닌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을 통해 여러 종류의 기계와 이를 다루는 엔지니어가 작품의 부분들을 만들어내는데, 나는 이것을 부품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이 부품들은 서로에게 조형적, 미학적, 기능적 연결고리를 가지는데 이들이 관계성을 가지기 때문에 모듈이라 부르게 되었다. 모듈로 구성되는 작품은 곧 이런 관계성이 가시화됨으로써 의미를 가진다. 나 또한 철저히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 속에서 존재한다. 즉 작품이 만들어지는 여러 단계 중 일부로 기능한다는 의미이다. 견고한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설계 단계이며, 예술가의 드로잉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초기 드로잉은 도면화 단계에서 상당 부분 합리적으로 재구성된다. 적합한 재료, 국제적 생산 규격, 효율적 구조와 체결 방식 등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도면은 예술계를 떠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며 모듈이 되기 위한 구성적 환경이 된다. 

우현정: 모듈 작업은 언제 처음 시작했으며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김병호: 모듈적 요소는 학창 시절부터 드로잉과 작품에 꾸준히 등장해왔지만 구체성을 띠게 된 계기는 입체 작품을 만들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적용한 작품 ‘The Manipulation’은 2013년 개인전 <정원 속의 정원>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때는 구조물보다는 하나의 오브제 형태로 전시되었다. 하지만 모듈은 여러 개가 모여 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또한 작품 제작을 위한 방법론일 뿐 중요한 것은 작품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있다. 최근 작품에 등장하는 모듈은 볼링 핀이나 포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대상으로부터 추출한 형태는 아니다. 기능적으로 수평, 수직으로 잘 연결될 수 있는 구조가 설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 결국 관계성이 만들어낸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듈을 수직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서 적재할 수 있는 판을 삽입하여 보다 적극적인 기능을 가진 유닛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Byoungho Kim, The Manipulation, Brass, 16(h)×21cm in diameter, 2013/ Courtesy of the Artist & Arario gallery / Photographed by Wooheon Lee
 
Byoungho Kim, Garden, Aluminum, steel, powder coating, 280(h)×750×250cm, 2013/ Courtesy of the Artist & Arario gallery / Photographed by Wooheon Lee
 
우현정: 부산 센텀 시티 신세계 백화점에 설치된 ‘수직의 정원’이나 이천 SKMS 연구소에 있는 ‘기억에 대한 의심’은 기하학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면서도 자연의 모습을 닮았다. 상반된 듯 보이는 두 지점(조형-자연)은 작품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
김병호: 사실 정원은 자연적이지 않다. 그 단어에는 이미 인공미가 포함된다. 영토에 영역을 표시함으로써 개인과 공공의 소유로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정원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가진 욕망과 도시 계획 등의 문제를 포괄한다. ‘수직의 정원’은 신세계 백화점 옥상정원에 설치된 작품으로 ‘수직’은 비자연적인 것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초자연적 면모를 기대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기하학적으로 잘 꾸며진 정원을 통해 현대사회와 거기에 속하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환경 조건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 기능주의적 건물, 그리고 건물의 일부인 정원 안에 머물며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문명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된 첫 작업은 2013년에 선보인 ‘정원’으로 자연 속의 인공 정원을 가시화한다. 다채로운 색을 매치하여 기하학과 자연을 연결함으로써 삶의 조건과 환경, 나아가 그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을 반추하고자 한 것이다. 
 
 
Byoungho Kim, Doubts about the Memory, Nano & fluorine coating on stainless steel, 530(h)×280×175cm, 2016
 
우현정: 미술관이 아닌 장소에 설치되는 야외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해왔다. 이럴때 작품과 장소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지는데,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작품에 반영하는가?
김병호: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게 좋겠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야외미술 프로젝트 APMAP 2014년 전시 에 참여했다. 프로젝트 현장은 제주도였다. 그곳을 오가던 중 땅은 자본, 전쟁, 자연 현상 등으로 항상 변한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전시 장소에 집중해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구상했다. “땅의 굴곡은 역사다”라는 화두를 가지고 서광다원의 녹차밭 고랑 15개를 선정해서, 제주문화유산연구원의 도움으로 측량사와 함께 GPS 고저 측량을 실시했다. 그 결과값을 캐드(CAD)로 옮기고 9~10개의 지점을 추출했다. 각 점을 연결하면 곡선이 생기고 곡선을 사방으로, 그리고 위아래로 반복하면 총 여덟 부분이 결합한 조각작품이 된다. ‘15개의 풍경’은 보기에 따라서는 청동기 시대 유물 같기도 하다. 그 장소는 개발을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를 다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탈바꿈시켜 기념비화 한 것이다. 
 
 
Byoungho Kim, Fifteen Landscapes, Transparent urethane & fluorine coating on brass, steel, concrete, 200(h)×25×25cm(15pcs), 2014/ APMAP 2014 jeju ? ‘BETWEEN WAVES’/ Courtesy of Amorepacific Museum of Art
 
우현정: 송광사에 탑을 설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듈을 연상시키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김병호: 전시가 작품을 위한 하나의 틀이 되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탑 프로젝트는 이 틀을 벗어나 처음으로 작품을 가지고 진정한 현실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1:5로 축소한 탑 모형을 들고 무작정 순천 송광사에 찾아갔는데 작품 설명을 들은 주지스님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전통적인 사찰에 현대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부분에 대한 걱정도 많이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송광사는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중 하나이고 절 안팎으로 국보와 보물이 많은 절이기 때문이다. 엄숙한 분위기에 부딪히지 않는 적절한 위치를 물색 중이다. 이미 설계와 구조해석이 완료된 상태이며,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찰에서 올 10월부터 1년간 전시한 뒤 다음 행보를 찾고 있다. 본래는 미술 작품이므로 현실에 거주하다 다시 미술계 안에서 가치를 지닌 채 유지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작품 제목은 재료에 따라 달라질 텐데, ‘3층 청동탑’이다. 

우현정: 작품을 현실 속에 구현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김병호: 탑 프로젝트의 드로잉 단계라 할 수 있는 작품 ‘The Manipulation’ 이후 탑에 대한 막연함이 구체화되었다. 조형적으로 보면 중력에 대한 반중력의 미학 등으로 풀어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불교라는 토속 종교 안에서 내가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에 집중했다.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가족의 건강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탑은 우리의 공통된 감성, 즉 정서이다. 불교문화 안에서 행하던 의식들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가진 정서에 다가가는 것이 바로 작품이 현재와 공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탑 프로젝트는 기념비성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비’처럼 과거의 기억을 기록하는 활동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탑도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라고 볼 수 있다. 기념비는 계속 생산되고 소비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어 터부시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 작품을 현재 진행형인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인간이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역사를 어떻게 보고 판단할 지에 대한 부분은 현실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Byoungho Kim, 1:5 scale model for Three Storied Bronze Pagoda, Brass, 73(h)×25×25cm, 2016
 
우현정: 그렇다면 이 작품은 미술관 전시나 대형 야외 프로젝트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김병호: 화이트 큐브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소통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에서는 예술가가 은연중에 갖는 의도적 행위를 최소화하고 현실에 부딪힐 수 있는 경계 접점을 찾아 나가는 게 핵심이 된다. 예술 행위를 통한 예술의 성역화를 목적으로 하기 보다 예술가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자각하고 그에 맞춰 더 깊게 파고들고자 한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탑 프로젝트 역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평생에 걸쳐 진행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지금 중요한 출발점에 서 있다.

우현정: 작품의 규모나 제작 방식으로 봐서 혼자서 가능한 작업은 아닌 듯하다. 제작 단계별 협업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김병호: 2000년 백남준의 호암미술관 전시에서 레이저와 관련된 작업을 보면서 미술가와 대등하게 조명되는 기술자가 인상깊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전문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 과정이 순조로울 때 작품의 의미도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탑 프로젝트의 기계적 설계와 구조 해석은 카티아(CATIA) 프로그램을 이용해 김동주가 진행했다. 이와는 별개로, 위에서 언급한 기념비성에 대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폴리머건축사무소 대표 김호민, 미디어 채널 앨리스 온 대표 유원준과 함께 2013년부터 ‘더유닛’ 으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미술계, 건축계에서 학제적 연구를 기반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김병호는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정원 속의 정원>(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2013)을 비롯해 총 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참여한 주요 기획전으로는 <인조선경(人造仙境)>(쑤저우금계호미술관, 쑤저우, 2015), <코리아 투모로우>(DDP, 서울, 2014),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아트 프로젝트 APMAP>(서광다원, 제주, 2014), <징안국제조각프로젝트>(징안조각공원, 상하이, 2012), <코리안 아이>(사치갤러리, 런던, 2012)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서울국제금융센터, 조니워커하우스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일신문화재단, 선화문화예술재단, 세종정부청사 등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tag.  미술 , 설치미술 , 전시 , 작가 , 김병호 , 공공미술 , 아웃도어프로젝트 , 탑프로젝트 , 아트
       
월간SPACE 2016년 5월호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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