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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 / 27
현재를 독해하는 복수의 시간성
       

현재를 독해하는 복수의 시간성
 
<아크로샤쥬>
 
푼타 델라 도가나 
Apr. 17 – Nov. 20, 2016 
 
 
Installation view at Punta della Dogana, 2016/ ©Palazzo Grassi / Photographed by Fulvio Orsenigo
 
베니스의 푼타 델라 도가나가 미술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6월, 14개월의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치고 갤러리로 탈바꿈하면서부터이다. 도르소두로 섬 끝자락에 있는 이 건물은 1441년(1675년 재건) 지어졌고 세관 건물로 사용되다가 미술관이 되기 직전 30년 동안 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곳에 구찌를 비롯한 다수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프랑수아 피노가 베니스 시와 33년간 사용한다는 계약을 맺고 2천만 유로(약 350억 원)를 들여 개인 미술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는 피노재단이 현대미술관으로 2006년 팔라조 그라시를 개관한 데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였으며 안도 타다오가 리노베이션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비엔날레라는 전 지구적 축제가 열리는 가운데 베니스의 주요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푼타 델라 도가나의 기획전 <아크로샤쥬>를 찾았다. 생경한 이 단어를 단서로 삼아 오늘날의 미술관, 작품, 관객의 관계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비엔날레와는 다른 큐레이팅 방식을 들여다보려 한다. 글 우현정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주인이기도 한 피노의 소장품은 2,000여 점으로 알려졌다. <아크로샤쥬>는 피노 컬렉션에 포함된 이후 단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는 29명의 작가, 7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아크로사쥬’는 ‘(무언가를) 걸다’라는 뜻으로 괄호 안의 무언가가 필연 미술품이라면 ‘걸다’에 담긴 기획자의 의도를 파악해 봐야겠다(기획 전시의 제목은 논쟁적인 아이디어의 총합이며, 전시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무심한 듯 중립적이고 간결한 이 단어에서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큐레이터 캐롤라인 부르주아는 ‘동작의 결과, 단순한 생각을 지닌 작품을 위주로 선별했다. 이 작품들은 비어 있음의 감각뿐만 아니라 측면, 순간, 미술사의 미장아빔(심연으로 밀어 넣기)을 불러일으킨다. 비록 작품들 모두 전혀 다르지만, 이런 조합은 확실한 단순함, 다른 작품과 관객을 위해 더 넓은 여유를 어떤 식으로든 창조하는 감각을 공유한다. 이런 작품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자유가 우리가 <아크로샤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부분이다’라고 했다. 그의 설명은 이 전시가 관객에게 부여하는 역할의 범주가 예상보다 크다는 것, 따라서 해석의 여지 또한 다양하며 그만큼 모호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top) Sol LeWitt, Wall Drawing #343g. On a black wall, a cross within a square. The background is filled in solid white. The figure is black, 2013/ Pinault Collection, Installation view, Paris, 14/16 Verneuil - Marc Blondeau, Sol Le Witt- 25 years of Wall Drawings, 1969-1994, 8 Oct–17 Dec 1994 / ©Sol LeWitt by SIAE 2016
(bottom) Prabhavathi Meppayil, Berlin September / Five, 2014/ Henrik Olesen, Untitled, 2000
Pinault Collection, Installation view at Punta della Dogana, 2016/ ©Palazzo Grassi / Photographed by Fulvio Orsenigo
 
작품 사이의 이론적, 역사적 고리가 느슨한 만큼, 전시의 이해를 도와줄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인 클레어 비숍은 『래디컬 뮤지엄』(2013)에서 동시대 미술관과 소장품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다. 그는 조르주 디디 위베르망이 ‘각각의 역사적 대상 안에서 모든 시간은 서로 조우하며 충돌하거나 유연하게 각자 서로의 바탕이 되고 서로 갈라지거나 얽히기도 한다’▼1고 말한 부분을 짚으며 예술 작품은 시간적 매듭, 즉 현재와 과거의 혼합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품이 다수의 중첩된 시간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이 관점을 빌어 부르주아는 피노의 소장품 전시를 주제, 특정 시기, 예술 운동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런 접근법이 역사의 탐구가 되지 않게 시선을 미래에 고정해두라는 비숍의 충고에 부르주아는 ‘전시된 작품들은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이끌며, 그저 쳐다보는 것이 아닌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어 감정과 감각이 시각적 인지와 사고만큼 중요한 어떤 장소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는 관객에게 전시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넘김으로써 비숍이 소장품 전시의 핵심으로 여겼던 ‘왜 특정한 시간성이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특정한 작품에서 나타나는지’에 관한 질문을 피해간다. 그렇다면 전시의 주인공인 작품은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top) Peter Dreher, Tag um Tag guter Tag (Day by Day Good Day) (Day Set), 1974–2014 /
Tag um Tag guter Tag (Day by Day Good Day) (Night Set) / 1974–2013/ Pinault Collection, Courtesy the artist and Koening & Clinton, New York/ Installation view at Punta della Dogana, 2016/ ©Palazzo Grassi, Photographed by Fulvio Orsenigo /©Peter Dreher by SIAE 2016
(bottom) On Kawara, SEPT.13, 2001/ Pinault Collection/ Photographed by Archive Pinault Collection
 
작품이 특정한 시공간에 속해 있지 않다는 해석은 작품, 관객, 공간의 교차 관계를 만들어내고, 작품과 작품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된다. 서로 전혀 연관이 없을 듯 보이는 작품들 사이의 미미한 교집합들을 발견하며 각 작품에 해석을 덧대는 방법으로 전시를 읽어보자. 이등변 삼각형의 형태가 점차 좁아지는 전시장의 한가운데 정사각형의 방이 있다. 이곳에는 1968년 시작된 솔 르윗의 ‘벽 드로잉 #343’ 시리즈 중 기하학적 형태에 충실한 여섯 개의 작품을 재현해두었다. ‘인 시튜’의 개념이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원작은 전시가 끝난 후 모두 폐기된 뒤다. 원작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흰 배경 위의 검은 사각형’(1915), ‘검은 십자가’(1915), ‘검은 원’(1915)을 참고하였으며 이 형태는 검게 칠해진 것이 아니라 검은 벽에 도형 이외의 부분을 흰색으로 칠함으로써 형태는 말 그대로 전면으로 떠올랐다. 푼타 델라 도가나에 재현된 이 작품이 과거 자신의 원형과 1차로 마주한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말레비치를 2차로 불러오고 좌측 방의 또 다른 작품에 말을 건넨다. 헨릭 올레슨은 사회적으로 억압되거나 재현되는 동성애가 미술, 과학, 법의 역사에서는 어떻게 다뤄지는지 집약적인 리서치 기반의 작업을 전개해왔다. 이번에 선보인 ‘무제’(2000)는 네모난 박스, 흰색, 설치의 간결함 등 미니멀리스트의 암호를 이용해 솔 르윗의 상징적인 몇몇 작품들을 풍자하며 재료를 바꾸거나 배열을 조정함으로써 원본을 따르되 그 의미를 전환한다. 피터 드루어와 온 카와라가 일상의 기록으로 만나거나 피에르 파올로 칼초라리와 니나 카넬이 물질의 상태를 변환하는 실험실 개념을 공유하는 등 전시장 안에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그러나 사소한 스쳐 지나감을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구체적인 약속을 만들거나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지 않는데 이는 작품 스스로가 독립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상호 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덕이다.
 

Pier Paolo Calzolari, Senza titolo (Materassi), 1970
Pinault Collection, Installation view at Punta della Dogana, 2016/ ©Pier Paolo Calzolari / Courtesy Archivio Fondazione Calzolari/ ©Palazzo Grassi, Photographed by Fulvio Orsenigo / ©Pier Paolo Calzolari by SIAE 2016
 
전시 안내서에서 작품들 사이에 자리한 몇몇 구절들이 어쩌면 전시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지금 관객이 보고 있는 이 장면, 현재를 구성하는 시간성에는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현재와 또 다른 현재를 모두 포괄한다. 이는 다시 작품과 관객, 작품과 공간, 공간과 작품이라는 물리적 현현으로 재해석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관계의 총합이 불완전할지라도 눈앞에 펼쳐진 이 순간이 현재를 보여주는 최선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작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나 모든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독해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이뤄지며, 확고한 형태의 의미 생산을 거부하는 것으로 <아크로샤쥬>는, 그리고 기획자는 전하고자 한 말을 충분히 한 셈이다. 자료제공 푼타 델라 도가나


어디에도 텅 빈 공간,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볼 것, 들을 것이 있다. 실상 우리가 침묵하려 할수록 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 존 케이지
 
당신이 찾는 것은 여기에 없다 - 실도 메이렐레스
 
표현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 표현할 힘이 없는, 표현할 욕구가 없는, 표현해야 할 의무가 없는 표현 - 사무엘 바케트
 
사물이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에 접촉하지 않고 남겨지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W. G. 제발트
 
변화시킬 수 없다면, 최소한 묘사라도 해야 한다 -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1. 조르주 디디 위베르망, ‘역사와 이미지: 인식론적 전환’은 이뤄졌는가?’ 마이클 짐머만 엮음, 『미술가가: 국가 전통과 기관의 실천들』, 2003, 131쪽(클레어 비숍, 『래디컬 뮤지엄』(번역본), 2016, 33쪽에서 재인용 

 
 
 
tag.  미술 , 아트 , 전시 , 미술관 , 푼타 델라 도가나 , 피노 재단 , 아크로사쥬
       
월간SPACE 2016년 7월호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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