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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2 / 01
<군중과 개인: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
       

1980년의 가이아나, 그리고 2016년의 서울


<군중과 개인: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

아르코미술관

Oct. 21 – Nov. 27, 2016



지난 10월 21일부터 11월 27일까지 아르코미술관 제 1전시실과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군중과 개인: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전이 열렸다.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전시는 중남미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에서 과거 12년간 이어졌던 매스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아카이브로 풀어낸다. 고원석(공동 전시 기획자)은 단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흥미로운 행사의 존재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예술과의 접점을 통해 우리가 처한 동시대적 상황에 대한 시각의 환기를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관람객에게 이번 전시는 어떤 마음의 파장을 불러왔을까?


전종현 | 자료제공 아르코미술관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솔직히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아직도 이 전시와 명확히 공명하지 못했다. 물론 전시란 정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동시대성의 문제와 그 흔적들을 환기하는 사유의 징검다리로 존재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스스로 징검다리를 건너 어디에 얼마나 이르렀는지 뚜렷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라는 소재가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여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여러 스펙트럼에 대해 다른 이가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매몰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전시에 대한 객관적인 배경 설명과 함께 기획자와 나누었던 이야기와 그가 의도했던(혹은 강조했던) 부분들을 공유하면서 이제 대중의 눈에서 사라진 전시를 다시 소환시키려 한다.


가이아나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동부 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본래 그 지역 일대는 ‘기아나’라고 불렸다. 원주민어로 ‘수향(水鄕: 못이나 하천이 아름다운 지역)’이라는 뜻이다. 대항해시대를 촉발시킨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지역 중 하나인 기아나는 일찍이 제국 열강들의 각축 지역이 되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기아나 지역을 5개로 쪼개 통치했을 정도다. 그 중 스페인령 과야나(기아나의 스페인식 발음)는 베네수엘라로 흡수됐고, 포르투갈령 기아나는 브라질의 아마파 주가 됐으며, 네덜란드령 기아나는 수리남이란 독립국가로, 프랑스령 기아나는 아직도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지방행정구역)에 속해 있다. 마지막으로 영국령 기아나는 1966년 독립하며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유일한 남아메리카 국가인 가이아나(기아나의 영어식 발음)가 되었다.


노예 무역과 강제 이주의 결과로 인도계 가이아나인과 아프리카계 가이아나인이 인구의 약 90%를 점유하고 있으며 원주민은 7%에 불과한 가이아나는 1966년 독립국가가 된 이후 1970년 공식적으로 가이아나 협동 공화국 수립을 발표했다. 처음에는 친미 성향이었으나 1980년 협동조합을 기초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은 새 헌법이 발효되고 독립운동의 주요 인사 중 한 명인 포브스 번함이 대통령이 되며 그가 속했던 아프리카계 가이아나인 위주의 국민회의당은 1992년 인도계 가이아나인이 주축이 된 국민진보당에게 정권을 내줄 때까지 12년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다.


번함은 같은 식민지배를 겪고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며 사회주의 국가 중 샛별로 떠오르던 북한에 주목했다. 여러 번 북한을 방문하면서 특히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매스게임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 식민지배의 과거를 극복하고 국민 단합을 꾀할 방법으로 매스게임을 선택했다. 1980년, 1983년 북한의 매스게임 전문 기술진이 가이아나에 두 차례 파견되어 온갖 노하우를 전수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천여 명의 학생들은 보통 두 달간의 집중훈련을 마치고 독립기념일인 2월 23일 수도 조지타운에 위치한 국립공원 무대의 계단식 좌석에서 매년 매스게임을 벌였다. 이 매스게임에 대한 기록들은 차곡차곡 아카이빙 되었으나 1992년 정권이 바뀌면서 구체제의 산물이라는 명목하에 대부분 소각되었고 남아 있던 것도 홍수로 쓸려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권성연(공동 전시 기획자)은 과거 12년간 매스게임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조지 사이먼에게 소수의 아카이브를 새롭게 찾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고원석과 권성연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자료를 모으며 현지에서 원본을 빌려오거나 사진으로 찍은 디지털 파일을 재출력하는 형식을 취해 이번 아카이브 전시를 꾸리게 되었다.


거대한 역사적 서사에 비하면 실제 전시는 단출한 편이다. 연습 장면과 출연진 등 매스게임 관련 사진을 다룬 테이블을 중심으로 시선의 정면과 양 측면에는 마치 스타디움에 군중이 앉은 모습처럼 5단 구조(오른쪽은 3단)의 전시대에 이미지 패널들을 장대하게 도열시켰다. 오른편은 매스게임 카드섹션의 배경화면을 이루는 회화도안을, 중앙은 아주 작은 회화도안과 실제 구현된 매스게임 사진을 함께 붙여 놓은 앨범을, 왼편은 매스게임 안무도식을 다뤘고 정면의 전시대 너머 벽에는 가이아나 최대 신문사인 「가이아나 크로니클」의 매스게임 관련 기사 이미지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간 구도가 선사하는 스펙터클은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이번 전시가 안고 있는 아카이브의 낮은 품질과 다양성의 부재 때문이다.


원본의 경우 회화도안에서 몇 개, 그리고 사진 앨범은 현존하는 4개의 앨범 중 가장 상태가 좋은 1986년도 버전, 안무도식은 1983년과 1990년 버전이 배치됐다. 현지에서 찍은 다소 조악한 촬영 이미지 출력본이 절반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원본을 토대로 한국에서 제대로 찍은 출력본이 나머지 단을 메우고 있다. 물론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새롭게 찾아낸 아카이브 중 극소수만이 반출 허가가 났고, 대부분 현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디지타이징을 시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뒤쪽 흰 벽에 틀어놓은 영상만 해도 현지 방송국이 가지고 있는 매스게임에 대한 유일본이라니 기획자들은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흐릿하게 프린트된 여러 이미지를 보노라면 미술관의 실물 전시와 함께 마음껏 확대해 볼 수 있는 온라인 전시가 간절해진다.


하지만 소위 아카이브의 ‘때깔’은 부족하지만 콘텐츠가 함의하고 있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고 유의미하다. 전체주의 문화가 극도로 발달된 북한에게 매스게임을 배웠지만 곧 가이아나는 매스게임에서 다루는 주제를 철저히 현지화했다. 초반에는 부국강병, 노동 등의 사회주의적 소재를 다루었지만 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가이아나의 문화, 예술, 동물, 꽃, 주요 국가적 사건들, 인종 차별과 비폭력주의(시민 불복종운동, 무기 감축운동), 청년 등을 주제로 다루며 사회주의 정권의 상투적인 매스게임과는 큰 차별점을 보인다. 천여 명이라는 참여자들이 약간 엉성하게 재현한 카드 섹션의 이미지에는 다문화를 접할 때 드는 호기심과 더불어 일종의 친밀감마저 느껴진다. 당시 야당을 비롯해 매스게임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낮에는 매스게임, 저녁에는 가이아나의 가면극 축제 ‘마슈라마니’를 기대하며 독립기념일을 즐겁게 맞이하는 사람도 많았으리라. 특히 매스게임을 체육 교과과정으로 편성하면서 스포츠이자 체육교육의 일환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대두된 이유도 있을 터이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시로 다루는 이유에 대해 고원석은 이렇게 말했다. “당대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문화 교류가 일어났다는 사실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역사를 동시대적 시점으로 재구축하는 관점으로 볼 때 신생국가로서 국가 재건을 위해 행해졌던 집단주의의 그림자가 아직 우리 사회 속에서 계속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프레임을 씌워 재단시키고 중간자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강요가 팽배해 있는 세상에서 12년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매스게임이라는 낯선 소재는 그 원동력이 다른 형태로 오늘날의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지 않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전시는 특정 주장에 대한 논거가 아니라 사유의 지점들을 짚어준다고 믿는 그는 그래서 아카이브만 홀로 다루지 않고 현대 예술 작품을 함께 큐레이팅했다. “집단, 군중과 개인 간의, 묘하면서 정의되기 힘든 관계성이 드러나는 작업들을 함께 병치시켰다. 기본적인 재현이 펼쳐진 상태에서 거기에 개입되는 스펙트럼을 동시대적 관점으로 연결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 고원석이 고른 작가 6명의 작업들은 군중과 개인 간의 관계에 암묵적으로 흐르는 긴장감을 감추고 있다. 노순택의 ‘붉은 틀 재편집’은 북한의 아리랑 축전을 비롯해 군중이 밀집한 사진들을 여러 각도와 집합으로 보여준다. 그 안에는 개인의 정체성은 거의 희미하며 이미지의 파편으로만 남을 뿐이다. 안정주의 ‘내셔널 세레모니’도 지금 이 시대 초등학교에서 행해지는 국민 의례 장면과 개개인의 모습을 중첩시키며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깔려 있는 전체주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곽윤주의 ‘의지의 승리’와 전준호의 ‘형제의 상’은 각각 2006년, 2007년 작품으로서, 만들어진 전통인 단체 부채춤과 장고춤을 추며 그 순간을 이겨내는 그로테스크한 화장을 한 예고생들을 조형적인 대칭 이미지로 포착하고,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을 각각 분리해 3D 이미지로 만들어 마치 왈츠를 추듯 서로 만나지 못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개인에게 씌워진 프로파간다의 아이콘을 비판한다. 문화혁명기를 거친 중국 예술가 집단인 플릿쉬어폼과 코리안-캐나디안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다이아나 유의 작업도 넓게 보면 그 궤를 같이 하며 전체 전시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전시를 통해 사람들은 아마도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 군중, 그리고 개인이란 단어의 군도를 여행하게 될 것이다. 전시장을 나오자 전준호의 작품 배경음악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리듬에 맞춰 반복되는 평화로운 왈츠. 그 안에서 춤추듯 엇갈리는 수많은 인영들. 서로 부드럽게 의견을 교환할 것 같지만 실제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현실 세계에 울려 퍼지는 음악. 그 파장의 범위에서 빠져 나오고 나서야 이 글을 써보는 것이다.





“Mass Games,” Guyana Chronicle, February 29, 1980, 14-15., reproduction of a newspaper, digital c-print,

Original copy of newspaper © Guyana Chronicle, Digital photograph © Vicki S. Kwon




“Civil Disobedience” A View of the 1988 Mass Games, photographic print, black & white, 22.4 x 15.24cm

Original print © Guyana Chronicle, Digital image © Vicki S. Kwon


View of the 1990 Mass Games, photographic print, colour, 8.8 x 12.5cm 

Digital image © Unit of Allied Arts and Asia Culture Institute



The 1990 Mass Games Choreography Instruction Book, Chapter “Congratulations”, pen, gouache, watercolour on a sketchbook, 21.1 x 36cm

Digital image © Unit of Allied Arts and Asia Culture Institute


Jaguar, Schematic Painting for the 1987 Mass Games Backdrop, gouache and watercolour on paper, 21.8 x 80.5cm 

Digital image © Unit of Allied Arts and Asia Culture Institute



Joonho Jeon, The Statue of Brothers, digital animation, 53 sec, 2007 ©Joonho Jeon



Jungju An, National Ceremony, Single-channel video, 3 min 50 sec, 2012 ©Jungju An



Yunjoo Kwak, Triumph of the Will_1, lambda print, 123 x 200 cm, 2006 ©Yunjoo Kwak


Suntag Noh, Red House re-editing, inkjet pigment print on paper, an arrangement of 48 photos (6 of 75 x 50cm and 48 of 50 x 35cm), 2000 - 2016. ©Yang Chulmo








 
tag.  전시 , 미술관 ,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 아르코미술관
       
월간SPACE 2016년 12월호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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