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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1 / 24
수직의 세계에서 수평을 본 건축가
       

수직의 세계에서 수평을 본 건축가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4평의 기적>

우현정 기자 | 자료제공 코바나컨텐츠

지난해 7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 1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는 소식으로 문화계가 떠들썩했다. 오늘날 아파트의 전신인 공동주택을 발명하고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조형적인 건축물로 평가받는 롱샹 성당을 지은 인물, 그에 대한 전시가 한창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4평의 기적>전(2016년 12월 6일 ~ 2017년 3월 26일)은 그간 그의 건축에 가려진 예술가적 면모를 조명하는 전시로 ‘르 코르뷔지에는 곧 현대미술이다’라는 선언적인 말을 품고 있다. 전시의 목적은 “그림이라는 운하를 통해 건축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르 코르뷔지에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을 터이다. 연대기와 소주제가 합쳐진 전시를 따라가며 그의 그림과 건축이 얼마만큼 깊은 대화를 나눴었는지 확인해 보려 한다.

“건축가는 생각을 남기는 사람,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근대건축의 거장, 서울에 오기까지
이번 전시에 소개된 500여 점의 작품은 모두 파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 재단의 소장품이다. 르 코르뷔지에 재단은 서울 전시에 앞서 뉴욕현대미술관(2013)과 파리 퐁피두 센터(2015)에서도 그의 전시를 연 바 있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근대 풍경의 아틀라스>전은 풍경을 상상하는 건축가로서의 면모를 그가 작업하는 방법(발견된 오브제)에서부터 근대 도시 계획에까지 펼쳐놓는 시도였다. 이 전시는 르 코르뷔지에가 넘나 들었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예술가, 도시계획가, 저술가, 사진가로서의 역할을 보여줌으로써 서울 전시가 가진 기획의 틀보다 폭넓은 시야로 건축가를 해석한다. 한편 르 코르뷔지에 사망 50주년에 맞춰 열린 퐁피두 센터의 전시 <인체의 비례>는 유니테 다비타시옹(1945)에 적용된 모듈러에 함축된 그의 건축 사상과 공간 구성 방식에 집중한 전시였다. 역사적인 인물을 재구성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개인의 정체성을 넓게 펼쳐 보이거나(뉴욕현대미술관), 그가 이룬 업적의 정수를 더욱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퐁피두 센터).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4평의 기적>전은 뉴욕현대미술관의 선례를 따라 그가 구축한 개별성의 근저에 자리한 영감의 원천을 찾아 나선다. 그가 지녔던 다양한 면모 중 왜 하필 화가에 집중하는가? 그에게 또 다른 신화가 필요한 것일까? 그럼에도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사람의 숨겨진 면모를 보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그것은 기록되지 않은, 중요하지 않다고 서랍 속에 넣어둔 채 잊어버렸던 종이 뭉치 속에서 넘치는 에너지로 그려나간 작가의 자화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고 세상 밖으로 나온 그의 그림을 만나 보자.

 

오두막에서 바라본 풍경

르 코르뷔지에는 아마데오장팡과 함께 큐비즘의 장식성과 지나친 조형의 해체를 거부하며 조형 언어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순수주의를 창시하였다.

 

화가로 만나는 르 코르뷔지에
전시는 총 여덟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첫 번째 섹션인 ‘르 코르뷔지에는 누구인가?’는 그가 태어난 1887년 스위스의 라 쇼드퐁 마을에서 시작해 그가 건축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된 계기,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 해당하는 그의 오두막에 이르는 여정을 텍스트로 나열한다.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의 역할을 하지만, 사실 그를 모른다면 텍스트에 담긴 정보도 공중에 흩어지기 마련인 법, 연대기로 읽는 삶은 단조롭고 그 안에 담긴 굴곡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뿐이다. 도리어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흥미로울 수 있겠으나 그런 이에겐 이 연대기는 너무 압축적이다.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며 17개의 건축물을 한눈에 보여주는 부분이다. 검은색 벽과 흑백으로 인쇄된 사진, 사진 뒤로 나오는 간접 조명, 건축물이 자리한 나라의 국기를 공중에 매달아 그의 건축 이념이 전 인류에 미친 영향력을 가시화하였다. 이미 유명한 건물을 재맥락화하는 방법으로 정보전달보다는 시각효과에 힘을 주는 연출 방식 또한 르 코르뷔지에를 아는 사람에게 더욱 신선하게 다가갈 듯하다. 전시를 그의 전기로 비유하면 이제 막 프롤로그(1)를 지난 셈이다. 뒤이어 전시는 에필로그(8)를 제외하고 그의 활동을 미술(2, 4, 6)과 건축(3, 5, 7)으로 짝을 맞춘 뒤 세 시대로 구분하였다.

“나는 내 생애의 날마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 시간을 할애했다. 나는 형태의 비밀을 찾을 수 있는 데생 작업과 회화 작업을 결코 멈춘 적이 없다. 나의 작업과 연구의 열쇠를 다른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건축을 위한 사전 연구로 미술을 꼽은 르 코르뷔지에. 두 번째 섹션에서는 그가 그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주요한 사건이 등장한다. 막 건축에 눈을 뜬 1907년부터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니, 빈, 파리, 베를린을 거쳐 1911년에는 터키와 그리스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예술학교에서 관찰의 도구로 데생을 접한 그는 현지에서 만난 건축물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머릿속에 각인하기 위해 스케치를 활용한다. 다니엘 폴리(파리 국립현대역사연구소 건축학교 교수, 큐레이터)는 이런 여행일기를 ‘속기록’이라 칭하며 향후 그의 건축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선, 공간 구성 방식의 원천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일상의 습관은 분석과 연구의 도구를 넘어 개념을 구체화하는 기초 언어였던 것이다.
세 번째 섹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건축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르 코르뷔지에가 돔이노(Domino) 방식을 고안한 시기를 다룬다. 이 섹션을 지나면 파리에 정착한 이후 순수주의에 몰두하는 화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날 수 있다. 당시 미술계에는 파블로 피카소와 조지 브라크가 주도한 큐비즘이 성행하였다. 여러 개의 시점으로 시간성을 한 화면에 담는 이 사조는 회화의 시각체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예술가들은 신문 기사, 바이올린, 찻잔, 밧줄 등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해 콜라주를 만들고 입체와 평면을 뒤섞는 실험을 계속한다. 이런 가운데 르 코르뷔지에는 아마데 오장팡과 함께 큐비즘의 장식성과 지나친 조형의 해체를 거부하며 조형 언어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순수주의를 창시하였다. 그의 작품 ‘수직의 기타 1’에는 과거 파르테논 신전에서 본 기둥 구조와 유리병이 결합하고 ‘흰 사발에 대한 연구’에서는 위치를 옮겨가며 화면의 구성을 재편하는 컵이 지속해서 등장한다. 몇 가지 사물로 공간의 질서를 만드는 훈련의 산물이다. 이 결과를 1920년대 최대 업적으로 평가되는 『건축을 향하여』(1923)와 사보아 저택(1929)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술과 건축의 인과관계가 눈에 뜨일 만큼 명확하지는 않다. 그를 건축가로만 봐왔던 사람에게 그의 회화는 큐비즘의 하부 장르로 보일 가능성이 높고, 그를 화가로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작품에 대한 연구가 깊어 보이지 않는다. 두 측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큐비즘과 순수주의의 차이를 더욱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다. 장식과 정신이라는 개념어로 두 사조를 구분 짓는 것은 손쉬운 접근이다. 그의 회화에 대한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전시 도록에 실린 전시 기획자 폴리의 글에서는 적어도 르 코르뷔지에의 순수주의에 대한 특이성을 발견할 수 있다. 1918년 르 코르뷔지에와 오장팡이 쓴 ‘입체파 이후’라는 글이나 『건축을 향하여』의 전신에 해당하는 잡지 「에스프리 누보」의 일부를 발췌하여 회화 작품과 연결하는 시도를 해도 좋았을 것이다. 또한 1920~30년대 그의 회화를 지배한 ‘시적 반응의 사물’을 진열장에 넣어 회화 옆에 두는 방식보다 더 나은 방법을 기대한다. 이런 시도가 없는 상황에서 관객은 전시장 곳곳에 새겨진 그의 전언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회화가 왜 그의 ‘비밀 연구’였는지, ‘그림 속 건축’은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헤매다 전시장을 나선 뒤에야 기획자의 글에서 실마리를 얻게 될 확률이 높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며 17개의 건축물을 한눈에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림으로 짓고 건축으로 그리다

화가로서의 르 코르뷔지에에 주목하는 이 전시의 아이러니는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여전히 건축가로서의 면모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할 때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두 차례에 걸친 전후 시기, 도시를 재구축하는 데 열정을 바친 르 코르뷔지에는 부아쟁 계획과 유니테 다비타시옹으로 수직의 세계를 꿈꿨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그의 이론적 배경(현대건축의 5대 원칙과 모듈러)의 근저에는 2차원의 평면을 현실에 대입한 뒤 그 공간 안에서 형태의 관계를 찾는 화가 르 코르뷔지에가 있다. 수직의 세계를 위해 수평의 원리를 탐구한 인물, 서로 다른 두 질서가 만난 곳이 롱샹 성당이다. 20세기 건축의 걸작은 그의 합리성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왜 우리는 화가로서의 르 코르뷔지에를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단지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지 공식을 알지 못했고, 그 경로를 궁금해하지 않았을 뿐이다.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4평의 기적>전에서는 화가로서의 르 코르뷔지에도, 건축가로서의 르 코르뷔지에도 100%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교육적인 대중 전시라 하기엔 불친절하고 기획전시라고 하기엔 기획력이 약하다. 흥미롭게도 이 전시의 강점은 이 허점 안에 숨어 있다. 그의 건축을 이미지로 소비해왔던 사람들, 그의 회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시를 감상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다. 기획자의 글에서, 작품의 영감이 된 시적 사물에서, 평생 그의 뮤즈였던 아내와 어머니에게서, 그가 마지막에 머물렀던 4평짜리 오두막에서 르 코르뷔지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면 “건축가는 생각을 남기는 사람,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라고 말한 그의 유산을 다른 어딘가에서는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4평의 기적>전은 그의 미공개 작품 140여 점을 포함해 전체 500여 점을 전시하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tag.  미술 , 전시 , 르 코르뷔지에 , 근대건축 , 화가 르 코르뷔지에 , 돔이노
       
월간 SPACE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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