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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2 / 09
셀 수 없는 편린의 역사를 붙잡다: <동백꽃 밀푀유>
       

셀 수 없는 편린의 역사를 붙잡다

동백꽃 밀푀유


아르코미술관


Dec. 9, 2016 – Feb. 12, 2017

 

우현정 기자 | 사진 정영돈(별도표기 외) | 자료제공 아르코미술관

이 전시에 관심이 끌린 이유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시 제목과 전시를 소개하며 인용한 블루마블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다. 동백꽃과 밀푀유의 조합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처럼 블루마블에서 서울에서 타이베이로 가기 위해서는 세계일주를 꼭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익숙하던 대상을 낯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세 명의 큐레이터는 이를 레비-스트로스의 원격접사로 설명한다. 멀리서 가까이 보기. 한국과 대만의 협력기획전 <동백꽃 밀푀유>는 몇몇 측면에서 예상을 빗나간다.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꽃’과 ‘천 개의 잎사귀’가 만났을 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을까? 과연 그 이야기를 다 수렴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Courtesy of the Artist
Chen Chieh-jen, Realm of Reverberations, Single channel video, 104min, 2014

 

담론의 무게에 눌리지 않을 것
이 전시는 2015~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사업 중 하나인 한국-대만 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한국의 김현주, 조주리와 대만의 왕영린이 기획했다. 전시를 보기 전 보도자료로 접한 <동백꽃 밀푀유>에 대한 느낌은 두 단어의 조합과 은유가 아름답다는 감탄, 그리고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가 너무 커서 되려 실체가 빠져버린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전시로 펼쳐지는 시각예술의 화려한 면모 이면에 자리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쟁점을 동아시아의 역학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과 대만 작가의 예술적 통찰과 실천으로 전달”하는 전시는 다시 몇 가지 키워드로 갈래가 나뉜다. 작가에 따라 노동, 경제 식민화, 가족과 민족, 권력에 묶이거나 압축성장, 공동화, 개발과 배제에 연결될 수도 있고 또는 사건의 병치, 잉여와 소실, 집단기억, 공시적 서사에 들어맞기도 한다. 이렇게 연결고리를 만드니 오히려 전시의 방향을 읽기가 더 어려워졌다.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밀푀유를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거대한 개념인데 기획자들은 어찌 이렇게 무모해 보이는 약속을 하는가, 궁금해졌다. 아니, 사실은 세 기획자의 관심사와 두 나라의 공유지점을 엮기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타협에 이르지 않았는지 속단했다. 그리고 밀푀유를 떠올리며 참으로 영리한 답변이라 생각했었다.
이에 대한 한국의 두 기획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김현주는 “예술은 개별성과 특수성에서 비롯하기에 하나의 주제나 키워드로 묶는 전시가 전시의 허상”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키워드에 대해서는 “10명의 작가가 하나둘 맞물렸을 때 도출될 수 있는 임의의 결과물”이며 따라서 “작가들의 묶음은 조금씩 비켜 나가며 포개지는 교집합”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조주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작가의 작업을 범주화하는 것을 지양하기에 세부 주제를 명시하거나 전시 연출에서 규정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간에 미묘한 연결성과 공통된 정서”를 인정했다. 기획자들은 이를 역사 속에 가려진 것들, 망각된 존재의 만남이라고 본다.
잎사귀 사이에 있어 눈에 띄지 않았던 과거의 흔적은 작가의 손에 이끌려 낱장의 잎으로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동백꽃 밀푀유>, 전시명이 주는 인상에 끌려 기획자가 작성한 서사시(epic)로 보였던 전시를 다시 보게 된다. 전시는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이다. <동백꽃 밀푀유>를 떠받치는 무거운 담론들은 잎사귀 한 장만큼 가벼울지도 모른다. 첫 번째 예상이 엇나갔다. 밀푀유의 안쪽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담론의 무게에 눌리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될 터이다. 전시의 방법론인 원격접사의 뜻을 처음보다는 좀 더 이해할 듯싶다.

 

Liu Yu, The Ship of Fools Mooring at the Train Station, 2 Channel video, 25min 16sec, 2016

Musquiqui Chihying, The Camera(36), The Camera(16), 2 Channel video, 3min 12sec, 1min 46sec, 2016

 

어긋나게 포개기
전시 제목만큼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면 전시 포스터일 것이다. 포스터는 동백꽃을 연상시키는 분홍색과 녹색 잎사귀가 번갈아 가며 서로 다른 크기로 책장이 넘어가는 순간을 포착했다. ‘한국과 대만의 근현대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레이어’를 묘사하기에 적절한 표현이며 책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접사하여 얼마나 넓은 면을 지녔는지 얼마나 두꺼운지는 상상에 맡겨둔다. 무한대의 세계의 일부를 잡아내는 방식은 특정한 문제에 천착해 작품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집요함을 닮았다. 이들 사이의 대응 쌍은 없을까. 국제교류전에 드리운 익숙한 잣대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국과 대만이 마주 보는 상황에서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부각하기보다 두 나라의 특수성을 벗어나 동아시아 전반을 비추고자 했다는 두 기획자의 변은 작품을 통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기획자의 설명을 전하기에 앞서 작품을 먼저 소개했어야 했나. 때늦은 도착이다.

 

Shin Jehyun, Sugar Mandala, Mixed media, Variable size, 2016

2층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신제현의 ‘설탕만다라’는 사탕을 부숴 만든 가루(설탕)로 그리는 만다라이다. 작품은 전시 기간 내내 그리고 지워지고 그리기를 반복한다. 관객의 발걸음에 의해 손상되는 작품은 불교의 수행법의 원칙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미완성의 상태를 일시적 완성으로 지연시킨다. 설탕으로 만든 사탕을 다시 본래의 상태로 원상복귀하는 이 작품은 사탕수수 산업에 드리운 과거 경제 식민지화를 조명하며 그와 관련된 텍스트를 기호로 활용한다. 작품에 사용된 시중에 판매되는 9가지의 사탕 중에는 옷 염색에 쓰이는 석유 찌꺼기로 만든 색소를 사용한 사탕 등이 포함된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만 유통되는 제품이다. 이처럼 과거에서 출발한 작품들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쟁점을 건드리는데 강홍구의 <종촌리, 사라진 마을 여행하기>는 세종시 건설이 시작되기 전의 풍경을 기록한다. 재개발이 한창이던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주운 장난감 버스를 들고 종촌리를 누비는 작가의 눈은 사람이 아닌 내팽개쳐진 장소를 쫓는다. 천 졔련은 타이베이 신좡구에 있는 한센병 환자 요양원의 역사를 추적하는 ‘잔향의 영역’을 선보였다. 요양원의 이름은 낙생원이다. 1930년대 환자들을 격리하고자 강제 이주시킨 폭력적인 정책은 타이베이 고속철도부의 차고지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재연된다. 1995년부터 시작된 거주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터전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작가는 서로 다른 입장에 선 거주민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특정한 개인에 집중해 일반화된 역사를 재인식하는 작업도 눈에 띈다. 나현은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사라진 거지와 미국 세인트 헬렌스 화산 폭발 후 흔적을 감춘 미스터리한 존재의 연결점을 찾는 아카이브 작업을 선보였고(‘빅풋을 찾아서’), 구민자는 대만에서 찾은 동성의(대만에서는 쵸우라고 불린다) 인물 5명을 찾아 선조가 먹었을 당나라 음식을 만들며 유교사상의 가족성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 질문하게 한다(‘Hill, Hill and Hills’). 저우 위정 또한 전혀 알지 못하는 개인의 삶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세세하게 기록한다. 철저하게 사적인 기록은 책의 형태로 공적 담론의 장으로 넘어오며 대만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탈바꿈한다(‘직업의 이력’). 각각의 작품이 앞서 언급한 키워드를 대표하거나 한국과 대만의 비슷한 지점을 찾아주는 행위자라고 착각하지 말자. 작품 사이의 접점은 일대 다수에 가깝고 관객에 의해서도 새롭게 재설정된다. 잎사귀가 어긋나게 겹쳐질 때, 다른 잎으로 건너갈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이라는 국가 프레임 안에서 작품이 정확한 자리에 정박해 있으리라는 두 번째 예상도 틀렸다. 국가의 정체성 또한 얼마나 깨지기/변하기 쉬운 존재였던가 회상해 보자. 동백꽃의 또 다른 명칭이 이를 증명한다. 밀푀유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일본의 장미라 부른다고. <동백꽃 밀푀유>의 제목에 걸친 두 단어의 절묘한 매치가 빛을 발한다.


또 다른 밀푀유를 만들기 위한 실습
전시는 담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작품들끼리 어긋나게 포개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두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둘러싸고 발생한 이슈를 다른 나라나 시간으로 이어지게끔 한다. 하지만 이를 오롯이 작품에 기대지는 않는다. 거리를 둘수록 오히려 가까워지는 원격접사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난다. 네 번의 렉처가 있었다. 작가와 이론가의 만남에서 이론가는 작가의 작품을 해석하거나 비평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자 전진성(부산교육대학교 교수)은 나현의 작품을 역사의 외부에 있는 존재를 상상력과 우연성으로 연결하는 것이라 말했다. 더하여 사실 전달보다 중요한 것은 재현의 방식이며 무릇 예술가란 망각과 애도의 상태에서 거리를 두고 늘 불편한 감정을 야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분야의 두 전문가가 만나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언어의 차이, 공통된 시각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기도 한다.
영리하게 조직된 전시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기획자들은 교류전이 지닌 약점을 전시의 주춧돌로 삼는 과감함을 선택했다. 좁은 주제로 해석의 의미를 제한하기보다 예측불허의 반향을 기대한다. 작품을 보고, 그와 연관된 다른 작품을 찾아 나선다. 혹은 전시장 밖의 현실에 대입한다. 작품이 제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즉 우리가 밀푀유의 잎사귀 하나를 뗄 때 더 많은 잎이 생겨날 여지가 발생한다. 작품과 작품, 작가와 관객이 교차하며 드러나는 새로운 역사의 편린, 이는 한국과 대만을 넘어 다른 지역과 시대로 침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껏 간과했던 역사의 한 자락을 붙잡는 것만으로 새로운 서사의 단초가 쌓이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밀푀유가 만들어지는 걸까. 전시보다 아름다운 전시명이다.

Courtesy of the Artist
Gu Minja, Hill, Hill and Hills, Mixed media, Variable size, 2016

Kang Hong-Goo, Jongchon-ri: Journey in Disappearing Village, Digital print on canvas, Variable size, 2016

 
tag.  설치미술 , 전시 , 미술관 , 한국-대만 협력기획전 , 신제현 , 강홍구 , 나현 , 구민자
       
월간 SPACE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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