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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2 / 27
얄팍한 이미지 뒤에 서린 욕망: 2016 서울 포커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얄팍한 이미지 뒤에 서린 욕망

 

2016 서울 포커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Dec. 20, 2016 – Mar. 19, 2017


우현정 기자 | 사진 조재무 | 자료제공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Installation view of ‘No Longer Objects’ at SeMA, Buk-Seoul Museum of Art

 

공산품이 화제가 되기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20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전시가 열렸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성격의 전시인지 단박에 알아채긴 어렵다. 전시장 입구에 몇 개의 알파벳을 반복적으로 나열한 모습에선 짧은 현기증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가 전시의 영문명 ‘No Longer Objects’를 이용해 만든 이 추상의 아이덴티티(아이콘)는 관객의 성급한 판단을 더욱더 유보시킨다. ‘더는 사물이(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란 무엇을 혹은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것일까? “이번 전시는 산업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공산규격품에 대한 사유부터 시작하여 볼트, 너트 등 기계 산업화를 상징하는 최소한의 부품들의 통속성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별 작가의 조형예술 언어를 통해 참신한 가치의 현대미술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장 리플릿에 쓰인 이 문구가 전시 기획의 핵심으로 보이기에 이 문장을 부분으로 조각 내어 전시의 면면을 살피고자 한다. 크게 보면 ① 산업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공산규격품 ② 통속성 ③ 참신한 가치로 나눌 수 있겠다. 이 세 가지가 전시에 참여한 13명의 작가를 관통하는 교집합일 테니 각 작가가 지닌 사유, 통속성, 가치를 찾아낸다면 전시장 입구에 흩어진 알파벳을 다시 짜맞춰 전시의 제목을 글자 그대로 읽어낼 수도 있으리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을 분석하기 전에 이번 전시 제목 앞에 달린 서울 포커스의 정체부터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개관기념전에 해당하는 <서울미술대전>(1985)이 서울 포커스의 전신이었다.▼1 명맥만 유지하던 서울 포커스는 2013년 소외된 장르에 초점을 맞추는 주제전으로 탈바꿈하였고 2016년에는 장르를 벗어나 ‘장소’에 집중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소란 작가들의 작업 배경이 되는 특정한 시공간을 포괄한다. 예를 들면 세운상가, 낙원상가(백승우), 종로 3가의 귀금속 전문상가(최윤), 창신동의 오르막길(변상환)이 되겠다. 한창 산업화가 이뤄지던 1970~80년대에 급속도로 외피를 바꿔 입던 서울의 면면이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작품은 분명 오늘의 초상인데, 늙은이의 탈을 쓴 아이의 얼굴이다. 어떻게 공산품은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있었던가? 디자인 이론가 빅터 마골린은 『인공물의 정치학』(2002)에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1984)를 예로 들며 인공물의 제한이 없는 시대에 달라진 리얼리티에 대해 논한다. 현실은 더 이상 참조의 모체가 아니며, 복제물은 현실 그 자체를 대체하는 기호로서 하이퍼 리얼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사라지고 인공물은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고 인간을 에워싼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없어지고 부속품을 공유하는 상호 교환의 시대, 공산품은 자기 존재감을 이미지의 과잉으로, 지나간 시대의 상징으로 과시하며 예술가들의 눈길을 끈다.

Entrance view of ‘No Longer Objects’, the exhibition title designed by Na Kim

Installation view of ‘No Longer Objects’ at SeMA, Buk-Seoul Museum of Art

 

산업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공산규격품의 정체
그렇다면 작가들이 예술로 잡아 끌어올린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비단 사물만이 아니다. 산업 근대화 시기 등장한 신제품을 포함해, 신시가지, 주상복합상가, 공공미술이 야기한 문제의식까지 두루 포섭한다. 리플릿에는 이를 “저작권 인식의 부재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복제된 디자인 창작물의 결과물을 재제작한 작품과 함께, 도시의 경관을 이루는 공공 조각설치 작품의 조형과 재료의 역학관계를 표본화하는 작품을 통해 건축법과 제도에 의해 무분별하게 증식하고 있는 공공미술과 오늘날까지 을지로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화복제 디자인 제품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현실의 규격화된 한계”로 명시했다. 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작품은 잭슨 홍의 ‘육영의 길’과 이은우의 ‘4색 상자’일 터이다. 전자는 1981년 5월 4일 광진구 어린이회관에 선보였던 ‘무쇠돌이 X’를 실제 크기로 복원한 것이다. 이곳에는 아폴로 11호의 모형과 여타의 로봇도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신 시설이었던 ‘까마득하게 높고, 거대한’ 조형물은 미래의 산업역군을 길러내기 위한 학습장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무차별적으로 공산품을 복제하던 시기의 잔여물이기도 하다. 한편 이은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공공미술포털(publicart.or.kr)에 등록된 서울의 공공미술품 2400여 점의 정보를 100개 단위로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재료나 색 등으로 추출한 다음 표본을 만들어냈다. 전시장 한가운데 10개의 군집을 이루는 조각상은 어디서 본 듯한, 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와 현상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통속성이 특별함이 되는 마법
이 전시에서 말하는 통속성이란 익숙함을 너머 평범함에 이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더는 주목하지 않는 대상이나 풍경 같은 존재들. 누가 종로 3가의 귀금속 상가와 을지로나 청계천에 널린 볼트, 너트, 못 그리고 마네킹을 미적 대상으로 여기는가. 닳고 닳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것들을 작품의 화제로 끌어오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이 모든 현상이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라 중복된 시간 사이의 균열이며 해결하지 못한 채 밀려드는 시간 앞에 함몰된 화석이다. 최윤의 ‘샤이닝’을 보자. “희망 20개 주세요. 우정 하나 주세요. 희망 3개 주세요”라고 주문을 하는 손님의 목소리는 상가의 유리 진열장이 아닌 스마트폰의 액정 속에 있는 가상의 보석과 마주한다. 보석과 시간을 소유하는 새로운 방식은 진짜와 가짜, 실물과 복제의 위상을 뒤바꾸고 그사이에 선 손님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든다. 실물을 의심하게 되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EH의 ‘Brass Hex Nut’ 시리즈는 을지로에서 구입한 3개의 너트를 찍은 사진이다. 작가는 카메라 초점을 달리해서 각 대상을 500회 이상 찍은 뒤 포토샵으로 합성하여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려 한다. 포커스 스테킹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모든 입자를 고르게 만들면 원근감과 입체감이 사라지고 화면은 깊이를 잃은 채 평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평범을 비범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엑스트라를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라면 정윤석의 ‘눈썹’ 또한 앞선 두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와 미술의 형식을 섞어 쓰는 그는 인간의 형태를 본떴으나 비현실적인 비율로 스스로 전형을 구축해버린 존재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마네킹의 삶, 이는 인간의 삶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제 영역을 확장하고 생의 주기를 이어나가는 독립된 개체이다. 듀얼 채널로 이뤄진 화면에서는 마네킹을 만들고, 폐기하고, 재활용하는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신체의 파편이 군집을 이루며 인공의 무덤을 재현한다. 소멸하지 않고 계속해서 현재로 소환되는 역사의 한 장면처럼 이들의 삶은 끝나지 않고 죽음을 반복할 뿐이다. ‘눈썹’에서 마네킹을 만드는 사람들은 조연이며, 고된 노동의 수행자로서 무표정한 마네킹의 서늘함을 능가할 만큼 피곤해 보인다. 때로는 인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마네킹에게 봉사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아이러니의 세상에서 인간다움이란 어떤 대상에게 어울리는 말일까.

 

참신한 가치의 확장
통속성을 특별함으로 만드는 작가의 능력은 한발 나아가 회화와 조각의 정의를 흔들기도 한다. 이천표의 ‘Self-Assembly’는 대량생산물에서 기호학적 요소를 지닌 물품을 회화의 일부로 삽입시킨다. 이 파편은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한 번의 붓질 또는 수천 번의 붓질로 그린 오브제와 동등한 위치를 점한다. 복사하여 붙여넣기의 기법으로 완제품 시대의 회화를 추구하는 그의 방식은 작품의 주제를 넘어 장르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이다. 이를 3차원으로 대입하면 윤지영의 ‘모난 절충’이 된다. 그는 아쿠아 레진, 발포 우레탄 폼, 라텍스 실리콘 등의 산업재료를 조각으로 만든다. 작가가 선보이는 수공예에 가까운 제작기법은 낯선 재료와 만나 조각의 어법을 확장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더는 사물이(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란 무엇을 혹은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것일까? 오브제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지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문제를 촉발하는 신호탄이다. 욕망의 가속화는 평면에 가깝게 압축된 이미지의 향연으로 이어지며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대상에는 허무함이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날카로운 눈을 뜨고 있는 작가들은 이 허무함과 그마저 넘어서버린 익숙함에서 새로운 화제를 찾는다. 그곳은 충분히 매력적이면서도 비어 있는 영역이다. 자, 이제 이곳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욕망의 오브제는 얄팍한 이미지 뒤에 새로운 욕망을 수놓았다.

 

 Jung Yoonsuk, Eyelashes, HD color 2 channels, sound, 23min 53sec, 2016

Cheon pyo Lee, Self-Assembly,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2016

Jiyoung Yoon, Alas, Aqua resin, urethane foam, liquid latex, pigment, spandex fabric, glass funnels, metal, epoxy, cotton, silicone, vinyl, Dimensions variable, 2016

 

1. 1985년 당시 서울시장인 염보현이 경희궁지에 시립박물관과 미술관 건립을 지시하고 원로 및 중진 작가들의 초대전 <서울미술대전>을 열었다. 그리고 3년 뒤 올림픽에 맞춰 경희궁 안에 있는 구 서울고등학교 본관 건물을 개조하여 서울시립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서울 포커스에 대한 역사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3층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2016. 12. 13.~2017. 3. 26.) 리플릿 참고.

 
tag.  디자인 , 미술 , 아트 , 작가 , 북서울미술관 , 서울 포커스 , 산업화 , 공공미술
       
월간 SPACE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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