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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3 / 09
<꿈>에서 <에픽 상하이>로 이어지는 서사
       

<꿈>에서 <에픽 상하이>로 이어지는 서사

<조덕현 : 에픽 상하이>

PKM 갤러리
Jan. 19, 2018 – Feb. 20, 2018

인터뷰 조덕현 × 김금영 객원기자 l 진행 이지윤 기자 l 자료제공 PKM 갤러리



Cho Duckhyun, gguum, Graphite & acrylic on oriental paper, 582 × 391cm, 2017


2018년 현재의 눈부신 상하이가 있기 이전에 20세기 전반 ‘동양의 파리’라 불렸던 올드 상하이(오늘날의 상하이와 구별하기 위해 중국인이 붙인 명칭)가 먼저 있었다. 동서양의 자본이 밀집되며 세계 5대 도시로 꼽힐 만큼 급성장했다가 사라진 올드 상하이. 아편 거래와 온갖 상업으로 번창한 올드 상하이는 ‘기회의 도시’라고도 불렸고, 모던하고 자유로운 이곳에 전 세계의 학자, 사상가, 예술가, 작가들의 발길이 거쳐갔다. 버나드 쇼, 아인슈타인, 채플린 등 서양의 유명 인사뿐 아니라 한류스타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는 김염(金焰, 1910~1983)도 올드 상하이의 ‘영화 황제’라 불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이 올드 상하이의 시공간에 지금 조덕현이 시간 이동하여 김염과 만났다. 작가이자 배우로서.


김금영(김): 이번 전시 <에픽 상하이>에 관한 이야기 전에 2015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꿈>전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다. <꿈>에도 작가 본인과 이름이 같은 조덕현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1995년 고단한 생을 마감한 조덕현의 쓸쓸한 말년’을 표현한 전시로 고독감이 가득했다. 그랬던 조덕현을 이번 <에픽 상하이>에선 화려함이 가득했던 1930년대 올드 상하이로 이동시켰다. 조덕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조덕현(조):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먼저 조덕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내 작업 속 조덕현은 가상의 인물이다. 1914년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이동했고, 올드 상하이까지 흘러들어갔으며, 1995년 81세의 나이에 한국에서 고독사 했다는 설정이다. 지난 전시와 이번 전시를 연결하는 서사다. 다양한 작업 가운데 서사를 특히 중요시한 프로젝트로, 약 7~8년 동안 이야기를 구상했다. 즉 전시 하나로 이야기가 끝이 아니다. 중심인물을 바탕으로 1편, 2편 서사가 전개되는 영화처럼, 조덕현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그 긴 이야기 중 먼저 서사를 풀기 시작한 첫 프로젝트가 지난 <꿈>이었다. 조덕현의 말년의 삶을 먼저 보여줬고, 이번엔 조덕현의 젊은 시절로 시간을 되돌렸다. 즉 <꿈>의 프리퀄 전시가 <에픽 상하이>다. <꿈>에서 말년의 조덕현이 과거 젊은 시절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때를 그리워하며 꿈을 꾸는 모습을 예고편처럼 보여주며, 다음 전시에서 이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슬쩍 암시했다.


: 굳이 가상의 인물 조덕현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림 속 조덕현의 얼굴은 영화배우 조덕현과 같은데, 어떤 사연이 있는 건가?


: ‘A는 A다’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비유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에서 매력을 느낀다. 작품 속 조덕현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만났다고 설정된 인물 중에는 실재했던 인물들도 있다.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방식은 사람들이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글자를 그냥 읽어주며 주입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상상하면서 재미있게 글을 읽듯 작품을 감상하길 바랐다. 또 단순 나열이 아니라 전시 자체가 프로젝트인 구성에서 토대를 이루는 서사를 전개할 인물이 꼭 필요했다. <꿈>을 준비할 당시 영화배우 조덕현과 인연이 닿았고, 작업 이야기를 들은 그가 가상인물 조덕현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사용하는 데 적극 동의해줬다. 결국 가상인물 조덕현은 작가 조덕현과 배우 조덕현이 만난 결과다.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느꼈다. 나의 아바타로서 화면에 등장하는 조덕현을 통해 이번엔 1930년대 올드 상하이로 여행을 떠났다.


: 1930년대 올드 상하이가 이번 전시의 주요 배경이다. 시대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곳을 조덕현 서사 프로젝트의 두 번째 행선지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배우 완령옥(阮玲玉)의 이야기가 관심의 시작이었다. 올드 상하이의 대표 배우였던 완령옥은 스캔들로 자살했는데, 요즘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연예인과 같았다. 자기과시적인 화려함 속에 자리 잡은 위선적인 속물근성, 범죄와 테러, 자기 파괴 본능까지 올드 상하이는 현재의 우리와 비슷했다. 그래서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Cho Duckhyun, Epic Shanghai, Site installation, monitors, mirrors in wooden structure, 2018


: <꿈>에서는 혼자 쓸쓸하게 있었던 조덕현이 <에픽 상하이>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김염, 홍(紅)과의 만남은 물론 현실에서 작가 조덕현이 올드 상하이에 관심을 갖게 해준 완령옥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한다.


: 전시 서사 속 김염은 조덕현에게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도와주며, 올드 상하이의 매력에 눈뜨게 해주는 인물이다. 가상의 인물인 홍도 이번 전시에서 중요하다. PKM 갤러리로부터 상하이 출신 소설가 미엔미엔을 소개받고 서로 메일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서사를 짰다. 내가 만든 가상의 인물 조덕현, 그리고 미엔미엔의 소설 속 홍이 만나 새로운 서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 두 작가의 대리인으로서 조덕현과 홍이 작품 안에서 만났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이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 도착한 올드 상하이에서 조덕현은 이방인이자 아웃사이더로 콤플렉스가 가득했다. 반면 홍은 상하이 토박이 소설가로 집안도 좋다. 극단적으로 상반된 환경 속 둘이었지만, 수차례 편지 교환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가능성을 연다. 이건 조덕현과 홍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야기다. 배척이 아닌 인정과 이해를 위한 대화 말이다.



: 조덕현과 홍의 서사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꿈꿈’과 ‘1935’다. 작품의 크기 자체도 압도적이지만, 여러 시공간이 뒤섞였다. ‘1935’는 분명 과거 같은데 스마트폰으로 거리를 촬영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꿈꿈’에서는 세계대전의 난민들도 발견된다.


: ‘1935’는 서사에 가장 충실한 작품으로 거대한 화면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 실제 올드 상하이의 모습과 영화 세트 등 가상의 요소들이 뒤섞였다. 가령 건물 테라스엔 전성기 시절의 김염이 서 있는데, 그 옆엔 김염의 아내이자 유명 배우였던 친이(秦怡)가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 조덕현이 도시를 바라보고, 건물 아래엔 홍이 걸어 다닌다. 배우 완령옥이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동시에 그녀의 장례식이 옆에서 치러지기도 한다. ‘꿈꿈’ 또한 시공간이 뒤섞였다. 세계대전 난민들부터 시리아 난민까지 근현대의 온갖 전쟁과 재난의 난민들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여기에 조덕현도 있다. 시공간을 뒤섞는 이유는 사실이 아닌 진실을 유발하기 위해서, 또 현재를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인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화면을 보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충분히 자신의 상황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지금 보고 겪는 것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꿈’ 속 힘들어하는 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2018년 한국의 모습을 느낄 수도 있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혼합해 그 사이에 숨은 진실을 들춰내는 것, 나의 작업은 그 지점에 집중한다.


: 전시 공간 자체에도 서사를 꾸리려 신경 썼다고 들었다.


: 처음엔 조덕현과 올드 상하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1935’와 ‘꿈꿈’을 보여준다. 그리고 따로 분리된 별관에서는 흑백 톤의 ‘1935’와 ‘꿈꿈’과는 달리 화려한 채색 페인팅 작업들이 전시된다. 올드 상하이에 다른 국면으로 접근하며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들추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진 작업과 더불어 마지막에는 영상 설치 작업 ‘에픽 상하이’가 기다린다. 전시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서프라이즈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대로’, ‘신여성’, ‘마로천사’ 등 1930년대 상하이의 유명 영화 장면들을 여러 개의 작은 모니터에 담아 5면 거울을 통해 투영한다. 수백, 수천 개의 영상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는데, 이 중 한가운데 관람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발견한다. 이를 통해 올드 상하이의 중심에 떨어져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자신과 동떨어지지 않은 올드 상하이 세계에 함께 존재하는 느낌으로 전시 감상을 마무리하게 하고 싶었다.


: <에픽 상하이> 이후의 서사가 궁금하다.


: 가상인물 조덕현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덕현의 말년과 전성기의 이야기를 다뤘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 전시에서도 여정을 이어가고 싶다. 사실 아래 더 깊숙하게 봐야 보이는 진실의 이야기를 조덕현을 통해 풀어내고 싶다. 나는 내 작업을 설명할 때 ‘내 작업은 어렵지 않은 언어로 쉽지 않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얼리티와 픽션이 섞인 우리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무엇이 진실인지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조덕현은 도쿄 소게츠 미술관(1994), 필라델피아 ICA 미술관(1995), 앙드레 에머리히 갤러리(1997), 버지니아 미술관(1998), 파리 주드폼 미술관(2000) 등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개인전 30여 회를 열었고, 상파울루비엔날레, 이스탄불비엔날레,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특별전 등 다수의 국제전에 초대됐다. 2001년 제2회 한불 문화상을 수상했다. 문학, 고고학, 영화 등 여타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예술 세계를 포괄하는 그의 작품은 미국 허쉬혼 미술관, 일본 히로시마 미술관과 후쿠오카 미술관, 네덜란드 호르컴 시청,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tag.  미술 , 아트 , 전시 , 작가
       
월간 SPACE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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