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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3 / 09
형광등으로 세운 현대의 기념비
       

형광등으로 세운 현대의 기념비

<댄 플래빈, 위대한 빛>

롯데뮤지엄 

Jan. 26, 2017 – Apr. 8, 2018


이주은(미술사학자, 건국대학교 교수) | 진행 이지윤 기자 | 자료제공 롯데뮤지엄


Dan Flavin, The Nominal Three (to William of Ockham), Fluorescent light and metal fixtures, (from the left) 243.8 × 10.2 × 12.7cm, 243.8 × 20.3 × 12.7cm, 243.8 × 30.5 × 12.7cm, 1963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교차

댄 플래빈(1933 ~1996)의 작품 전시는 전시장에 불을 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불을 켜기 전 그의 작품은 규격화된 레디메이드 공산품으로서의 형광 튜브였을 뿐이다. 하지만 불을 켜는 순간, 형광등은 빛을 발산하면서, 엄청난 집중력을 끌어 사람들의 시선을 장악한다. 불빛은 전시 공간을 형이상학적인 분위기로 연출하기도 하고, 별것 아닌 공산품을 물질을 벗어난 존재로 거듭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플래빈이 예술의 종교적인 측면에 심취한 것은 아니다. 비현실적이거나 고압적인 것, 숭배를 요구하는 것을 그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추구하는 것은 실제 공간과 현재라는 실제 시간, 그리고 물질성을 지닌 예술이다. 그에게 예술은 공간에 남기는 하나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지, 정리되지 않은 모호한 정념들은 아니다.

뉴욕 태생의 플래빈은 미술 작업과 미술사 공부를 병행한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사람이다. 스물일곱 살이 되던 1960년에는 마침내 맨해튼 허드슨 강 근처에 온전한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 무렵 그의 수첩에는 전기조명을 활용한 미술에 대한 구상이 가득했고, 3년 동안 탐색한 결과물은 ‘아이콘’ 연작이었다. 아이콘이라는 제목은 비잔틴 성상과 성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전기조명 빛이 자아내는 효과를 중세 성상이 뿜어내는 광휘에 비유한 것이다. 형광등이 플래빈의 작품에 처음 등장한 때도 바로 이 아이콘 연작인데, 캔버스처럼 생긴 네모 상자에 형광등을 비치한 이 작업은 마치 네오-다다의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이질적인 사물을 병치 혼합해 만든 아상블라주(assemblage) 작품을 보는 듯하다.

1960년대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이 지배적이었고, 플래빈 역시 두 유행 사조의 영향을 피해 가지는 않았다. 형광등에서 뿜어 나오는 형광색은 자연의 색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고 매우 인공적이다. 가령 핑크색이나 오렌지색 형광등은 이른바 ‘캔디 컬러’라고 할 수 있는데, 선술집이나 대중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다분히 팝아트적인 색채다. 플래빈도 스스로 인정했듯, 핑크와 노랑 형광등의 야비하고 저속한 빛은 절제된 모더니즘 미학을 추구하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라면 결코 공간에 사용하지 않았을 색이다.

팝아트가 대량생산 및 대중소비시대 도시의 분위기를 대변하듯, 같은 시기의 미니멀리즘도 세련되고 차가운 도시의 감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작품의 재료나 구조가 단순하다고 해서 미니멀리즘의 성향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건의 속성을 그 어떤 상징이나 실존의 흔적 없이 있는 그대로 제시한다는 점에 방점이 있었다. 미니멀리스트는 예술가의 손과 정성을 거쳐야 진정한 걸작이 된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수공 작업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차라리 공산품의 미학에 심취했다. 그러니 플래빈이 형광등이라고 하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규격화된 공산품을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은 당시 미니멀리즘의 방향성에 매우 적합했다.


형광등의 물질성과 초월성

1963년 5월 25일, 황금빛 형광등 하나가 벽을 사선으로 구획했는데, 이 작업은 플래빈의 이전 오브제 작업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엇이었다. 그날의 발견을 기념이라도 하듯 작가는 작품의 제목에 날짜를 기입해놓았다. 형광등을 상자 같은 틀에서 완전히 독립시켜 따로 벽에 붙인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콘스탄틴 브랑쿠지에게)’은 빛의 비물질적인 속성을 작업에 적극 활용한 것이었다. 이 작품 이후부터 작가는 형광등을 부착할 다른 부가적인 바탕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오직 빈 공간의 벽만 있어도 충분했다. 흰 벽 전체가 그의 작품이 됐고, 형광빛으로 사선은 벽을 넘어 공간 속으로 확산됐다.

플래빈이 이 작품의 제목으로 조각가 브랑쿠지를 언급한 것은 루마니아 트르구지우에 있는 작품 ‘끝없는 기둥’(1938)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브랑쿠지의 ‘끝없는 기둥’은 쐐기형으로 깎아낸 마름모 모양의 조각들이 층층이 이어져서 수직 방향으로 확장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기둥은 동일한 구성 요소로 이뤄져 반복과 연결을 통해 무한함에 도달하고자 하며, 수직으로 우뚝 서 있어서 마치 불멸의 토템인양 느껴지기도 한다. 플래빈은 철저히 도시 사람이었고, 언제나 도시 지향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모든 작업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토템은 자연물이 아니라 인공물인 것은 너무도 당연했을 것이다. 플래빈은 자신의 사선 역시 어떤 벽이든 반복적으로 설치될 수 있으며, 눈부시게 발광한다는 점에서 현대 기술사회의 토템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형광등은 이중성을 지닌 재료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것은 유일하지도 영구적이지도 않은 레디메이드였다. 규격화된 대체품이 얼마든지 있으며, 언젠가는 그 모델이 더 이상 제조되지 않을지도 모르며, 수명이 다하면 못쓰게 되는 저렴한 공산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빛을 발산해 관람자가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하는가 하면, 가끔은 예기치 못하게 일종의 현현(顯現, epiphany)까지 경험하게 한다. 착시와 현현은 사물의 물질성을 넘어선 환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비물질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다.

플래빈은 형광등 빛이 지닌 물질성과 비물질성을 작품을 통해 명확히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중세의 철학을 참고해 ‘유명론의 셋(윌리엄 오캄에게)’을 제작한다. 이 작품에서는 각각 한 개, 두 개, 세 개의 형광 튜브가 수직 방향으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총 여섯 개의 형광등은 제각각 창백한 흰빛을 발하며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윌리엄 오캄은 14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로, 유명론을 주창한 바 있다.

어떤 개념을 설명하려 할 때 개체에 바탕을 두는 것이 유명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캄은 이론체계는 간결할수록 좋으며 이를 위해서 개체의 속성을 좌우하는 변수가 최소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빨간빛을 알기 위해서는 빨간빛을 띤 개별 물건을 통해 깨달아야 하며, 그 물건의 빨간빛이 다른 변수로 인해 감춰져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변수를 ‘최소화’한다는 생각은 플래빈이 형광등을 단위로 삼아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빛은 무한해 사물처럼 숫자로 셀 수 없으며, 물질성으로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캄의 유명론을 끌어들이면, 빛은 형광 튜브라는 물질 속에 깃들어 있는 상태대로 인식되는 것이고, 1개, 2개, 3개 등으로 개체화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한시적으로 빛나는 기념비

형광등을 가지고 빛에 대해 탐색하던 플래빈은 방의 실제 공간이 형광등의 배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2.4m 길이의 형광등을 모서리에 비스듬히 세워두면 눈부신 한 줄기의 빛과 양쪽 벽에 비치는 그림자로 벽 일부분이 시각적으로 모호해지고 모서리의 접합점이 사라지면서, 별개의 삼각형 형태가 탄생하게 된다. 1964년 12월부터 플래빈은 공간에 미치는 빛의 작용에 대해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벽에서 바닥을 향해 비스듬하게 형광등을 세우고, 뒷면에는 보색을 띠는 형광등을 붙이는 작품들이었다.

벽이 그저 작품을 지지하는 판이 아니라 작품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플래빈의 발상에 도움을 준 것은 1920년대 러시아 구축주의자의 작품이었다. 이를테면 엘 리시츠키가 하나의 방 전체를 캔버스 삼아 추상적인 구성을 시도했던 ‘프룬 룸(Proun Rooms)’이라든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이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벽과 벽을 줄로 가로지르며 허공을 연결했던 ‘복합적인 코너 부조’가 그 예다. 공간을 캔버스처럼 자유롭게 활용한 러시아 구축주의자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플래빈은 형광등으로 공간을 구성하거나 모서리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설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작가는 ‘기념비’라는 단어를 작품의 제목으로 붙이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타틀린의 작품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를 직접 인용하고 싶어서다.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 연작은 0.6~2.4m의 네 가지 규격의 백색 형광등을 수직 방향으로 좌우 대칭구조로 조합한 것이다. 1919년에 타틀린은 레닌의 의뢰로 나선형 탑 모양의 건축 모형을 만들었다. 러시아혁명 이후 새롭게 변모할 역동적인 러시아의 비전을 담은 탑이었지만, 실제로 지어지지는 못했다. 탑 안쪽의 건물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힘을 입어 360도 회전하도록 설계됐고, 탑 바깥쪽은 철골구조인 입체 조형물이었다. 비록 미완의 프로젝트에 그쳤지만, 예술이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건축으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야심차게 제시한 셈이었다.

전통 재료가 주는 양감보다는 신재료와 혁신적인 설계를 통해 공간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작품은 플래빈에게 실질적인 영감을 줬다. 실현되지 못한 타틀린의 작품을 제목에 인용하면서 플래빈은 ‘기념비’라는 단어에 항상 인용부호를 붙였다. 그 이유는 자신이 만든 기념비가 좀 다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형광등은 돌처럼 영구불변하는 재료가 아니라 한시적이다. 수명이 다하면 소멸할 운명의 형광등으로 영원불멸의 상징성을 띤 기념비를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현대미술의 아이러니이면서 동시에 기존 예술의 틀을 깨려는 플래빈만의 선언이 아니었을까.


텅 빈 공간에 빛의 장벽을 세우다

이번 롯데뮤지엄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 설치 작품은 플래빈이 1973년에 제작했던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다. 이 작품은 사다리 같은 형광등 구조물을 이용해 공간을 가로막는 일종의 빛 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벽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설치하는 장소의 조건과 맥락에 맞춰서 치밀한 계획을 짜야 한다. 1.2m 형광등을 0.6m 간격으로 348개 겹쳐 배열한 이 작품은 사각형의 모듈을 이루면서 롯데뮤지엄의 둥글게 휘어진 벽을 따라 반대쪽 끝까지 총 40m 길이로 연결된다. 이 작품의 공간감을 더하기 위해 건축가 조병수는 기존의 천장 마감을 변경해 4.8m의 시원한 높이를 확보했고, 전체 조형물과 어울리는 디테일로 천장을 마무리했다.

이 공간은 녹색으로 가득하다. 피에트 몬드리안이 세상을 이루는 보편적 본질이라고 언급했던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에서 녹색이 제외됐던 것을 플래빈은 다른 작품에서 상기시킨 적이 있다. 플래빈에게 녹색은 빨강, 노랑, 파랑 못지않게 기초 색이며 인간 세상에 근원적인 색이다. 관람자는 녹색의 장벽이 길게 늘어선 이 공간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강렬하게 짙은 녹색의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점차 눈이 녹색 빛에 익숙해지면서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흰색에 가까운 조명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 순간 입구 쪽을 쳐다보면 보색대비처럼 입구의 네모에 드리워진 짙은 핑크색의 잔상을 경험할 수 있다.

플래빈은 자신을 오래도록 지지하고 후원해준 디아예술재단의 설립자, 하이너 프리드리히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브랑쿠지가 끝없는 기둥을 벌판에 수직으로 세웠다면, 플래빈은 끝없는 장벽을 실내에 수평으로 나열한 것이다. 물론 플래빈의 ‘끝없는’에는 인용부호를 붙여야 할 것이다. 설치하는 공간의 맥락에 따라 작품은 끝없이 새로운 분위기로 재창조되며, 작품 앞을 거니는 관람자의 걸음마다 끝없이 다채로운 변화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주은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미술사 석사 과정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일보에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를 연재하며, 십만 독자를 사로잡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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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PACE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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