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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6 / 01
임시적인 시공간을 떠도는 사람들
       

임시적인 시공간을 떠도는 사람들


<“초월적 접근의 압도적인 기억들”> 

페리지 갤러리 | Perigee Gallery

Mar. 9 – May 12, 2018

인터뷰 구동희 × 김금영 객원기자 l 진행 이지윤 기자 l 자료제공 작가, 페리지 갤러리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구동희 작가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불편한 걸음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노란색의 커다란 구조물을 설치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이곳 저곳 다양한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작가는 무한한 듯 느껴지는 시공간 속 어느 지점에 서 있으며,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던 걸까? 


김금영(김): ‘구동희 작가’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가장 많이 발견되는 말이 ‘예측할 수 없다’,‘모호하다’, ‘어렵다’이다. 이런 반응을 인식하고 있는가?


구동희(구):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데, ‘내 작업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토를 달거나,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작업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는 개인의 자유니까. 다만 작업에 대해 질문이 들어오면 가능한 성실하게 답하려 한다.


: ‘생활 밀착형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작업 내용이 모호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을 걷거나,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포착한 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상을 현실적인 여건에 맞춰 촬영하다 보면, 사람의 의식주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촬영의 결과물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건 기승전결의 서사가 없고, ‘이런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고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영상 속 등장인물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행동 위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방식을 취한 건 ‘예술 작업’과 ‘정보’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보는 육하원칙에 따라 명확한 내용을 다루지만, 시지각 등의 감각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라보는 작업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뚜렷하게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작업이기에 사람들이 친근하게도, 어렵게도 느낀다. 이런 모호함은 내 관심 분야이기도 하다.


: 그 모호함과 어려움을 이번 전시 제목에서 동시에 느꼈다. <“초월적 접근의 압도적인 기억들”>이라는 제목이 심상치 않다. 


: 이 장황한 제목은 작품 제목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사이트에서 임의로 설정했다. 전시를 준비할 때 일반적으로 겪는 과정이 있다. 전시 제목이 나와야 하고, 광고 이미지가 나와야 하고, 간담회도 해야 한다. 이 반복되는 과정이 마치 문화 패키지처럼 짜여 버겁거나 답답할 때도 있었다. 정작 중요한 건 작업인데 이런 과정에 치우치는 게 겉치레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 제목은 피곤함에 져서 전시 타이틀 생성기에 맡기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풍자의 의미도 담았다. 오늘날 예술은 ‘있어 보여야 한다’는 관념에 치우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설명될 때가 있다. 그래서 ‘예술 병신체’라고 비웃음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 제목은 일부러 제일 장황하고, 외우기도 힘들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배열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단어들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들을 랜덤으로 모은 것이기도 하다.


: 전시 제목에 예술의 과잉된 역할에 대한 풍자를 담았지만, 반면 정보와 예술의 역할이 엄연히 다름을 명확히 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육하원칙에 맞춰 세세하게 설명하는 걸 꺼린다고도 했다. 예술이 너무 어려워 보이는 것도, 너무 쉬워 보이는 것도 싫은 건가?


: 예술을 어렵게, 또는 쉽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에 대한 판단은 작품을 보는 관람객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작가로서 작업을 보여주는 데 집중할 뿐이다.

: 장황한 전시 제목과 달리 영상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전철역, 카페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소들이 있다. 이 장소들은 어떻게 선택됐는가?


: 이번 작업은 공간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특히 영속적인 공간이 아니라 임시적인 특성을 지닌 공간에 주목했다. 게스트하우스는 물리적인 장소는 그대로이지만, 사람들이 임시로 머물렀다가 떠나가는 곳이다. 갤러리 또한 전시 하나가 끝나면 다음 전시를 위해 비워지고 채워지기를 반복한다. 전철역과 카페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시 제목이 작업과 아예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작품이 완성되기 전 임의로 만든 전시 제목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작업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 임시적인 건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 존재가 스러지는 때가 오기 마련이니까. 임시성에 왜 그리 관심이 많은가?


: 지금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가. 삶의 방식 자체가 한 템포를 길게 이어갈 수 없도록 돼 있다. 인간의 정착 생활은 농경사회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한 장소에 오래 정착하는 게 드물다. 여행 등 유동 인구도 많고, 삶의 터전도 계속 바뀌어 ‘영구적인 나의 집’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시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우리의 삶이 하나의 긴 선 같겠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임시로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점이 수없이 찍혔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 보자면 나는 전시를 위해 계속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한시적인 프로젝트성으로 활동할 때도 있고, 작업실이 따로 없어서 촬영을 위해 항상 돌아다닌다. 임시로 짧게 머물렀다가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삶이다.


: 편집 양식 또한 점이 여러 개 찍혀 있는 느낌이다. 30여 분의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에피소드 하나가 길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약 1분 단위의 짧은 영상 여러 개가 이어 붙여져 계속해서 상영된다. 명확하게 영상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 영화와 같은 기승전결 구조가 내 작업엔 등장하지 않는다. 메시지나 교훈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눈앞의 화면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점을 찾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영상을 편집할 때 공간별, 또는 사람들의 행위별로 묶는 등 전체의 리듬은 고려했다. 30여 분의 긴 시간 동안 상영되는 영상을 수동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보기보다는, 셔틀버스가 순환하듯 어느 때에 들어가서 보더라도 상관없는 구성을 취했다. 전시를 보러 갤러리에 들른 사람들은 30분 전체를 머물러도 되고, 1분, 5분 등 임시로 짧게 머물렀다가 가도 좋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생활 밀착형 모습들 여럿이 다 모여서 하나의 작업으로 재구성됐을 때 사람들은 어렴풋이 기시감을 느낀다.


: 편집된 영상을 보면 촬영 시간이 상당히 길었을 것 같다.


: 공간도 중요하지만 어떤 시간에 촬영을 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임시적인 특성을 지닌 공간이 실질적인 기능을 갖추는 공간으로 전위되기까지의 시간에 주목했다. 지인이 주택을 개조해서 숙박업소로 용도 변경하기 직전 미리 허락을 구하고 현장에 가서 장소가 바뀌는 과정을 촬영했다. 갤러리의 경우 내 전시가 시작되기 전 철거 과정과, 새로운 설치물이 들어서는 과정을 모두 촬영했다. 공간의 변화 전후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의 시간 또한 임시적 특성을 지녔다. 그리고 이 임시적인 시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변화 이전과 이후의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 다양한 사람들이 갤러리, 카페, 게스트하우스를 오가는데 가장 많이 발견되는 행동이 잠을 자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 과도한 의미 부여의 목적은 없다. 영상 매체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중요하다. 공간이 변화하는 시간 자체를 담은 영상에서는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속도에 소비돼 피로감을 느끼는 지점들이 생긴다. 그래서 숨 가쁜 시간을 쉬어갈 수 있는 요소를 영상 중간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가 잠으로 나왔다. 편안하게 쉬어가는 느낌이다.

: 숨을 돌리기 위한 방법으로 유머 코드도 활용한 것 같다. 거창한 전시 제목을 보고, 사람들의 행위에 분명히 어떤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혼자 과잉 의미 부여를 하면서 영상을 봤다. 그러다 ‘초월적 어쩌구’라는 존재에게서 전화가 오는 장면을 맞닥뜨렸을 때 ‘너 지금까지 헛생각 했어’라고 핀잔을 주는 것 같아 지레 찔려 웃음이 터졌다.


: 사람들이 영상을 보면서 웃음이 터지는 부분이 제각기 다르다.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을 환기해줄 수 있는 코드가 중간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학적 양식에 기반을 둔 시나리오 형태가 아니라 시각적, 상황적인 부분을 고려해 유머 코드를 끼워 넣었다. 완벽하게 연출된 서사 구조로 만들고 싶지 않아 현장에서 벌어지는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해프닝도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연관성만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로 오해하게 되는 지점도 생기더라. 이게 기획이냐 아니냐, 우연이냐 아니냐, 예측 불가능해지는 지점을 좋아한다. 내가 짓궂은 측면도 있는 것 같다.


: 참 모호하다. 어렵게도, 어렵지 않게도 느껴지는 이번 전시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매번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어떻게 보고, 느끼라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수동적인 감상을 원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작업에는 작가들의 변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100% 믿지는 말라”고 한다. 각자의 경험과 욕망에 의해 작업을 감상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사지선다형 시험 문제도 아닌데 ‘이 작가는 예술사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형태의 작업을 한다’, ‘이 작업에는 이런 교훈적인 메시지가 담겼다’고 달달 외우는 건 이상하다. 예술을 정보만으로 취득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유익하지 않다. 그냥 즐겁게 보면서 새로운 시각 경험을 하길 바란다.


구동희는 일상에서 발견하는 사건들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우연적 상황을 작품 제작 과정에 유연하게 개입시키면서 작품이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갤러리 로얄, 2016), (PKM 갤러리, 2013), <합성적 체험>(아뜰리에 에르메스, 2008) 등이 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제13회 샤르자 비엔날레(2017), 올해의 작가상(국립현대미술관, 2014), 제7회 미디어시티비엔날레(서울시립미술관, 2012), 에르메스 미술상(아뜰리에 에르메스, 2012) 등이 있다.

 
tag.  미술 , 아트 , 미디어 , 구동희
       
월간 SPACE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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