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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6 / 01
여성과 손노동으로 엮어낸 좋은 삶
       

여성과 손노동으로 엮어낸 좋은 삶


<씨실과 날실로>

서울시립미술관

Apr. 17 – June 3, 2018

이지윤 기자 l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4월 17일 <씨실과 날실로>전이 열렸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 짧은 선들을 반복적으로 교차한 전시의 영문명 ‘with weft, with warp’디자인은 실이라는 소재를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준다. 씨실과 날실은 이미 완성된 직물의 기본 단위를 지칭하는 말이기에 제목 뒤에 생략된 행위는 직조임이 분명하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전시는 ‘여성’과 ‘손노동’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신성란(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은 “인간의 삶에서 노동은 정체성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여러 면모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여성과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결합해 다루고 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이 두 개념을 따라 전시에 참여한 14명의 작가 및 그룹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전시가 직조해내는 ‘좋은 삶’도 읽어낼 수 있으리라.


여성의 분해

전시의 첫 작품은 신유라의 ‘하얀 장막’이다. 입구에 커튼처럼 드리워진 천은 언뜻 보면 전시에 부합하는 당연한 장식물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산뜻한 느낌의 하얀 벨벳 천에 가까이 다가서자 그때에서야 음각, 양각 무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번아웃 기법을 이용해 꼼꼼히 새겨 넣은 이 문양들은 홀로코스트, 난징대학살, 제주 4·3사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에서 있었던 대량 학살의 참혹한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발생한 사건들이지만 이데올로기라는 틀에 가려 당시 외부로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이었다는 같은 맥락에 닿아 있다. 전시는 섬유를 통해 집단적,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서혜영의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태피스트리 협업의 도구’로 이어진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원형 태피스트리 틀이, 한쪽 벽에는 태피스트리 제작을 위한 콤브가 놓여 있다. 원형이라는 대안적 형태의 틀은 작가 개인을 강조하는 예술 작품과 달리 여러 명이 동시에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협업의 과정이 드러나도록 하는 도구다. 그러나 결과물로 완결되는 ‘공동성’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원형 틀을 제작하는 데 사용된 콤브는 참여자 개별 특성을 고려해 개개인의 손에 맞게끔 만들어진 맞춤형 도구다. 도구, 연장과 같이 남성들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매체를 여성의 손에 쥐어주고, 이를 ‘여성’이 아닌 개별성으로 전환했다. 태피스트리 안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개인들이 관계 맺기, 소통, 호칭 등 협업의 과정에서 화합 및 불협화음을 느꼈음을 고백하는 개별적 인터뷰 영상이 설치되어 있어 작가가 ‘여성’이라는 덩어리가 아닌 개개인의 ‘차이’에 방점을 두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이르렀을 때 전시가 엮어나가고자 하는 방향은 더욱 분명해진다. 가까이 다가서야만 보인다. 전시가 집어든‘여성’이라는 씨실은 생물학적 개념인 동시에 사회적 개념이다.

신유라의 ‘하얀 장막’에서는 진실을 보기 위해선 아름답게 짜인 천이 아닌 그 안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무늬를 볼 것을 경고한다. 진실은 ‘이데올로기’라는 거대 담론과 틀을 통해서가 아닌 가까이 다가서기, 들여다보기를 통해서 볼 수 있음을 의미하는 은유적 장치이기도 하다. 서혜영은 사회적 틀로 바라본 여성이라는 덩어리가 아닌 개개의 차이를 지닌 개인을 들여다봄으로써 협업으로서 손노동의 가치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창작하는 개인

여성이라는 덩어리가 분해된 자리에는 창작하는 개인이 남는다. 오화진의 ‘‘조물조물조물주’-개인의 문화#세상을 디자인하다’는 작가가 쓰던 미싱과 작가의 신체를 결합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드는 신화적 존재를 탄생시킨다.

오화진의 작업에서 미싱 작업은 기존 순수예술과의 구분에서 열등한 자리였던 공예의 위치에 머무르거나 단순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에게 섬유 작업과 여기서 파생되는 노동은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며 작가는 이를 통해 조물주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본인이 잉태될 때부터 이러한 권위를 부여받았음에 대한 내적 확신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제 섬유 미술이라는 수공예는 더 이상 노동이나 소일거리가 아닌 창작이라는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권혁과 차승언은 ‘실’이라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각각 장르의 넘나듦을 통해 구현한다. 권혁은 넘치듯 쏟아부은 아크릴 안료와 촘촘히 박아 넣은 미싱 자수 드로잉을 결합해, 기운과 정신을 표현한 일종의 대관 산수를 나타낸다.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손노동에 머물렀던 자수에 정신성을 입혔다. 차승언은 캔버스 틀 위에 ‘직조 회화’를 구현한다.

직조라는 매체와 기법을 사용하나 작업은 헬렌 프랑켄탈러의 스테인 페인팅, 이성자의 패턴 회화 등 미술사의 굵직한 회화적 요소들에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실이 가진 물질감과 얼룩이라는 조형적 요소가 하나의 안료처럼 어우러졌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작업의 요소로 끌고 와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다. 영화 포스터 형식을 취하고 있는 홍영인의 ‘행복의 하늘과 땅’은 행복의 하늘 아래(Under the sky of happiness)라는 글자를 중앙에 두고 그 위에는 근현대사 속에서 기억되는 여성들의 얼굴을, 아래에는 무명의 여성 노동자들을 자수로 놓아 2단 구조를 취했다. 얼핏 영웅 서사의 형식을 취하는 듯 보이는 포스터는 여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여성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위태롭게 갈라진 ‘행복’이라는 글자는 이들이 존재하는 사회의 기형적 메커니즘을 유추하게끔 한다. 반면 고산금의 작업 ‘이름 있는 무명’은 작가를 포함한 총 8명의 참여자가 임신했을 때 늘어나는 배의 크기만큼 실타래를 감고 이에 대해 글을 남기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모성이라는 무명의 일반성은 각자의 이름을 입고 보다 개인적이고 생명력 있는 서사를 갖는다.


손노동으로 완성되는 연경

창작이라는 행위로 가까이 다가서고, 덩어리를 부수고, 경계를 넘나들고, 개별화해 생명력을 갖게 하는 작가의 능력은 한 발 더 나아가 ‘노동’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를 꿰뚫기도 한다. 권용주의 ‘연경’은 태국의 방직공장 톰슨 사의 노동자와

대구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작가 어머니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직조한다. “아이의 장래를 지켜주고 싶었다”는 톰슨 사 직공의 독백은 아이를 데리고 공장에 나오는 작가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지며 억척스러운 의지가 담긴 삶을 전한다. 그리고 이런 의지를 구현하는 존재의 행위에 노동이 있다. 연경은 씨실과 날실을 연결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삶에 대한 끈끈한 유대로서 노동은 날실이 되어 여성 개개의 고단한 삶이라는 씨실과 엮여 사회 구성원 앞에 동등하게 놓인 삶을 바라보게 한다.

여성, 손노동 그리고 공동체

작가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손노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짜내는가. 작가들은 프로젝트 기반의 작업을 통해 공동체 내에서의 가치를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웃상회와 직조생활은 예술을 통한 관계의 회복과 유대감 형성을 제안한다. 이웃상회의 ‘노동의 찬미’에서는 할머니 뜨개방 커뮤니티와 함께 노동의 상징인 붉은 목장갑을 곱게 떠 숭고함을 드러냈다. ‘이웃상회 in 안정리’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 기획 상품을 제작해 마을 브랜드를 개발하는 마을 예술상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군기지 주변에 위치해 전적으로 미군 의존적인 서비스업에 종사해오던 안정리 주민들에게 기지 이전 이후 새로운 마을 가치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지역의 기술 장인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지역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직조생활의 ‘그리움을 만지다’는 세월호 사건으로 떠나보낸 아이를 위해 털실 옷을 짜고 이를 다시 푸는 작업을 통해 유족들의 고통을 잊고 치유하는작업을 진행한다. ‘모두의 직조기’를 통해 관람객들도 예술의 협업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협업의 공동체는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전소정의 ‘어느 미싱사의 일일’에서처럼 시간이 흐른 어느 지점에서는 개인의 독백만이 남을 수도, 장민승의 ‘사계’처럼 노동이라는 반복된 행위가 또 다른 감각으로 확대되어 보일 수도 있겠다. 이는

무명의 노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또 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들은 이를 새로운 대안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공동체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000간은 많은 섬유 공장들이 떠나버린 빈자리에 소규모 공장들의 협력과 연대를 가시화하고(‘관계지도 2018’) 생산의 과정 속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버려지는 짜투리 천으로 ‘자투리 쿠션’, ‘제로 웨이스트 셔츠’ 등 생활에 맞닿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다.

전시가 제안했던 여성과 손노동은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과 이들이 ‘존재하는 행위’로 확대된다. 위계를 무너뜨리고 경계를 허문 자리를 작가들은 연대와 협력으로 포근히 덮는다. 충분히 매력적이면서도 끈끈한 방식으로. 작가들이 새로 짜낸, 좋은 삶이다.

 
tag.  미술 , 설치미술 , 아트 , 미디어 , 전시 , 미술관 , 작가 , 서울시립미술관 , 씨실과 날실
       
월간 SPACE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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