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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 10 / 10
 
베니스 비엔날레 단상: 건축, 미디어, 전시

김태만(해안건축 대표)
 
 
「SPACE(공간)」는 2014년 7월호와 8월호에 걸쳐 제14회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 대한 특집을 다루었다. 전시를 살펴보며, 또 게재된 글들을 보노라면 건축을 다루는 미디어와 전시의 위상에 대한 생각 들이 꼬리를 문다. 먼저 그 취재와 전시의 대상인 건축은 어떤 과정 일까? 건축하는 행위는 필요를 발견하는 과정이고, 문제와 장소에 대한 해법 또는 생각이 제시되는 과정이고, 구축—혹은 보다 현대적 의미로 제작—하는 과정이다. 건축을 다루는 전시는 어떨까? 전통적으로는 물리적 아카이브일 것이고, 때로는 큐레이터의 의도에 따른 재구성과 대상의 재현일 것이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는 건축과 사 회에 대한 독해와 비평의 과정일 것이다.
건축에 대한 미디어, 특히 잡지의 역할은 뭘까? 최신의 경향을 알려 주고, 당대의 매니페스토를 전하던 영웅적인 역할은 선대 잡지의 역할이었을 법하다. 실시간 소통하는 이 시대에는 건축 웹진들이 다양한 경향들을 나르는 미디어의 선봉에 서 있다. 그리고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들을 통해 시차를 느끼지 못하게 공유된다. 오스카 니마이어가 놀랍게도 104세까지 살다가 2012년에 타계한 것도 알게 되고, 르 코르뷔제 생일인 10월 26일에 온라인상에서 생일축하 멘트도 이어진다. 교황 방한과 맞아 떨어지는 서소문공원 현상설계의 심사결과도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 일본 건축가들이 반발하는 것도 생생하게 듣는다. 이제 잡지 에 부여된 위상이라면 정확하고 조직화된 아카이브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아마도 동시에, 선명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것일 수 있다.
전시와 쇼룸을 구분할 수 있을까? 밀라노 디자인 페어가 가구를 파는 곳인지 디자인의 경연장인지 정의하기 쉽지 않다. 바젤 아트 페어가 예술에 대한 트렌드를 읽는 독자들의 축제인지, 아니면 노골적으로 뮤지엄과 갤러리와 개인 같은 엔드유저들을 대상으로 시장을 넓히는 곳인지 선 긋기 쉽지 않다. 뮤지엄과 미술비엔날레들은 전시 큐레이팅을 통해 작가들의 시장성을 넓혀주고, 한편으로는 큐레이터, 뮤지엄 그리고 전시 브랜드 자체의 상품성을 높여간다.
그럼 건축비엔날레는? 디자인 페어나 아트 페어와는 달리 1차적 대상인 건축물을 전시하지 않는 건축전시와 건축비엔날레는 노골적으로 클라이언트를 찾지는 않지만, 공공이든 민간이든, 집단이든 개인이든 잠재적인 클라이언트들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1980년 시작되어 이제 14회에 이르는 베니스 건축비엔날레는 건축이 가지는 미학적, 사회적 이슈를 다양한 수준으로 드러내 왔다. 또 한편으로는, 자유세계 혹은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서구세계 건축가들 중심의 사고와 작업을 동시대 이슈의 선봉이라고 전달했던 통로 중 하나였다. 건축 미디어가 비엔날레를 다루는 방식은 어떤가? 국제적 경연장이자 페어로서의 비엔날레를 조망할 수 있고, 유달리 아카데믹한 문제제기와 토론의 장으로서의 비엔날레를 다룰 수도 있다. 혹은 1851년 런던박람회로부터 이제껏 개발 패러다임의 경연장으로 빛을 잃지않고 계속되는 형식인 엑스포들과, 만인의 소비자와 만인의 아티스트들이 격돌하는 아트 페어들, 그리고 건축비엔날레들이 가지는 교집합과 여집합을 주목할 수도 있다.
 
이제 「SPACE」의 베니스 비엔날레 취재를 따라가 본다. 지난 7월호에서는 한국관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먼저 한국관을 살피고, 타 국가관의 시선으로 한국관을 보고, 마지막으로 타인의 시선으로 한국관을 보는 순의 구성이다.
한국관을 취재하는 글들은 한국 건축계 최초의 건축 관련 ‘골드’ 수상에 대한 기쁨과 기대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SPACE」가 대한민국 국가대표 잡지라는 애국의식을 숨기지 않는다. 수상의 의의가 벅차게 느껴지지만, 전시의 실체에 대한 전달은 도리어 모호한 인상이다.
대다수 독자들은 이번 한국관 전시를 방문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시 컨텐츠와 구성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상태에서는 글의 독해에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웹진을 통해서 전시 내용을 더 잘 재현해볼 수 있기는 하다. 한국관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풀어냈다. 수상이 모든 것을 덮지는 않는다. 전시 자체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의견들을 수렴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관은 전시의 시간적 범위로 50여 년을 다루는데, 그 기간 동안의 연대기적 혹은 현대적 양상을 충분히 보여주는지에 대한 것 같은. 타 국가관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관을 보자는 섹션은, 실제로는 타 국가관 소개하기 1부로 보인다. 전체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2부를 기다려야겠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섹션은 효과가 분명하다. 폴란드, 이탈리아관 큐레이터들이 말하는 한국관 전시에 대한 평가는 인상적이고, 전시를 균형감을 가지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8월호에서는 한국관을 제외한 전시 전체를 다루었다. 먼저 총감독인 렘 콜하스와 그가 제시한 주제 중심으로 이번 비엔날레의 성격을 살핀다. 다음으로는 중앙전시관, 주제관, 국가관의 순서로 전시 자체의 구성을 살핀다. 체계적이다. 마지막으로는 해석 순서. 한국관 커미셔너의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해석과, 현지 토론회 중계를 통해 다양한 해석을 곁들인다. ‘렘 콜하스’의 비엔날레라 불릴 만큼 여타 비엔날레와 차별성이 있고, 그만큼 화제성이 있는 이번 전시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전의 비엔날레들과 비교해 주지않는 것이 아쉬울 정도. 국가관을 다루는 부분은 역시 국가관 2부라고 불러야겠다. ‘건축의 재현과 미래에 대한 대화’라는 주제의 대담 중계에서는, 비엔날레와 건축전시 자체의 성격에 대한 의견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역시 관광이 아닌 이런 전시관람에는 해설자가 필요하다. 분명히, 우리 건축계의 토론을 다루는 것도 필요하다.
이 시대의 건축잡지는 즉시성을 갖지 못한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것이 매체의 중요한 필요일 테지만, 결국은 분석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을 한 발 뒤에서 제공하는 것이 더 깊은 파장을 남길 수 있다. 주제관-국가관-한국관 사이의 입체적 비교가 가능한 지면 구성이라면, 전시의 의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전시의 내용에 실체적으로 접근하게 할 것이다. 먼저 비엔날레를 조망하고, 다음으로 한국관 조망, 마지막으로 비엔날레의 전시 의의, 그리고 드러난 과제에 대한 주제별 기고와 대담 등등으로 이어진다면, 단순하고 진부하기보다는, 직설적인 그리고 독해 가능한 구성일 수 있다.
렘 콜하스는 비엔날레 전체에 대해서는 ‘펀더멘탈’이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국가관에 대해서는 ‘근대성의 흡수: 1914-2014’를 내걸었다. 대단한 배포다. 건축의 모든 요소와 모던 건축의 모든 역사를, 그것도 전 지구적인 역사를 전시의 대상으로 삼은 것에 다름 아니다. 주제관에서는 건축의 요소들을 해부적으로 또 통시적으로 보여주면서, 건축의 물리적 기본 요소들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구성적이며 환원적이다. 모더니스트의 접근법이다. 아르세날레 전시관의 한 쪽에서는 음악, 미술, 무용 등의 공연 장소를 전시와 버무려, 건축전시 전체와 타 예술 분야와의 교류를 의도한다. 예술의 집합체로서의 건축, 조절자로서의 건축가라는 역사와 위상을 상기시킨다.
각 국가관에 대해서는, 영웅적인 성취로서가 아니라 처절한 대응 양상으로서의 모더니즘을 주문했다. 선동적으로 다가오는 전시들, 한국관을 포함해서 여러 비서구권 국가관들이 보여주는 모더니즘의 행보는 큰 파괴력으로 그려진다. 처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적이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격동의 과정에서의 주인공은 산업화이고, 모더니즘이다.
굳이 의도적이었다고 음모론을 펼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읽힐 뿐이다. 렘이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이번 전시에 모더니즘의 해체 등을 원했다고 하지만, 읽혀지는 양상은 다르다.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모더니즘 전통을 건축의 요소 전시를 통해 재확인시키는 양상, 건축을 타 예술의 상위로 놓는 듯한 자세가 그러하다. 각 국가관에서 보여지는 서사들이 서구적인 틀로 읽혀져, 결국은 모더니즘이 불가피하게 갖는 패권적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것도 그렇다.
한국관의 주제는 무엇보다 분단이다.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선정적인 주제이다. 사회적인 이슈이든 예술적인 이슈이든, 세계는 한국을 북한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가장 쉽게 주목한다. 렘의 제시만큼이나 야심찬 선택이다. 모던건축의 이념적 갈래가 극렬하게 살아 있는 두 체제.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상황 자체를 선택한 효과는 선명하다. 사회주의 건축이라는 한 축과, 자본주의 배경하에서 권위주의와 개방주의를 겪어온 건축이라는 또 다른 한 축이 머릿속에 극렬하게 대립한다.
 
 
전시 자체에서는, 한편으로는 기교가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아카이브와 환상풍 드로잉, 메가 스트럭처 모형, 사회주의적 드로잉의 생경함이 주는 시각적 충격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결말을 알 수 없는 얼기설기한 서사라는 커미셔너 조민석의 발언에 공감한다. 다양한 타자적 시선, 컬렉션이 보여주는 관찰자의 시선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효과적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는, 남한과 북한의 혼용과 유사성이 주는 미덕이, 오히려 두 갈래 경향을 독해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기대 이상의 동질적 인상이, 현실적으로는 큰 편차를 보이는 양 체제의 현대적 양상들을 가린다. 공통점과 차이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아카이브형 전시에는 효과적으로 보인다. 결국은 자유세계 사람들이 주 관객인 비엔날레에서 ‘이들이 남한과 북한을 제대로 독해하고 비교했을까?’라고 묻는 폴란드관 큐레이터 미카엘 뷔시니에브스키의 시각이 이를 보여준다.
50여 년을 통시적으로 다루었지만, 개발 초기에 집중해 공시적으로 분석하고 전시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아쉬움이다. 렘이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서, 건축가들의 전시를 주제에 대한 전시로 명실상부하게 전환시킨 차별성과 그 효과는 마치 드라마와 같다. 주제관 앞에 세워놓은 돔이노(Dom-ino) 모형이 주는 효과 때문인지, 당대의 르 코르뷔지에처럼 느껴지는 렘 콜하스의 독무대에서 비엔날레의 토론회를 통해 건축역사학자인 미셀 프로보스트와 건축가 피포 초라가, ‘전시가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는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의 전시와 건축계가, 그의 리서치 위주, 요소적 접근법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전시는 모더니티의 종말을 보여주기 위해 모더니즘을 돌아보자고 하지만, 도리어 서구적 패권주의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보인다. 이 전시에서 세계를 보는 눈은 모더니즘이다. 아시아를, 남미를, 아프리카를 읽는 눈은 여전히 전체적인 관점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키워드는 모더니즘과 아카이브이고, 한국관의 키워드는 북한과 아카이브이다. 이제까지 많은 경우에서처럼, 분단과 북한이라는 카드는 건축전에서도 세계적인 관심과 찬사를 이끌어 내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물론 대단히 성공적인 큐레이팅을 통해. 이제까지의 건축전이 건축가와 작품을 보여주는 진부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타 예술 분야와의 크로스오버와 상호 탐색의 시도도 게을리했었다면, 건축의 요소전과 한국관과 같은 아카이브 전시는 과연 제안적이고 진보적인가? 도리어 근원적이어서 진보적인가? 지난 2012년 한국관 전시는, 전시가 갖는 함의보다는 건축계의 분열 양상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보여진 전시 방식은 도리어 크로스 오버적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 낳은 건축집단들의 다양한 양상이 더 현대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전시되어, 개방사회의 용광로와 같은 상황을 보여준다.
세계를 바꾸려는 모더니스트의 의지가 이제 시장의 의지로 바뀌었을지 몰라도, 건축가들은 여전히 유사 창조자로서의 꿈을 놓지 않는다. 이제 건축가들의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의지의 실현이기도 하고, 건축가의 의지의 실현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이기도 하다.
웹진 아크데일리(ArchDaily)의 베니스 비엔날레 기사들 중 전시의 의미를 다루는 한 글은, 그동안 물어왔던 ‘건축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수백 명의 건축가들이 어떻게 답했는가를 다루면서 시작한다. 당연히 결론짓기 어려운 다양한 풀이들 중에 공통적인 것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영향을 미치는 자로서의 건축가의 역할을 의식하는 우리는, 결국 모더니티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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