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De Architectura)』는 그리스 고전 인식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건축 지식이 두 가지 능력의 결합으로 생겨난다고 제안했다. 하나는 공예적 제작을 뜻하는 ‘파브리카(fabrica)’이고, 다른 하나는 지적 사고를 의미하는 ‘라티오치나티오 ratiōcīnātiō)’다. 그는 공예적 기술과 지적 통찰을 위계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이 둘을 근본 원리인 아르케(archē)를 중심으로 결합한다. 이 결합 과정은 진리를 드러내는 행위, 즉 알레테이아(aletheia)로 향하는 하나의 존재론적 구조로 제시된다. 정리하자면, 건축 지식은 파브리카와 라티오치나티오의 결합을 통해 근원적 원리(archē)와 진리(aletheia)를 밝히는 통합적 탐구로 정의된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을 단지 실용적 기술이나 추상적 이론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 덕목인 테크네(technē), 에피스테메(epistēmē), 프로네시스(phronēsis), 소피아(sophia), 누스(nous)를 바탕으로 건축을 통합적 지식 영역으로 정의했다. 특히 메디타티오(meditatio), 그라피아(graphia), 데코룸(decorum) 같은 구체적인 실천 개념을 통해, 건축가는 지식과 행위를 하나의 일관된 설계 과정으로 통합할 수 있다. 그 결과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단계인 설계는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자리 잡으며,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는 시공은 진리를 추구하는 매개체가 된다. 현대건축에서는 비트루비우스가 제안한 파브리카와 라티오치나티오의 결합이 더욱 파편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 설계적 사고와 구축적 지식은 서로 단절된 영역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현대 건축문화는 비트루비우스 모델이 가진 통합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통합 논리가 없다면 현대건축은 기술적 실용주의와 이론적 사변 사이를 오가게 될 위험이 있다. 결국 어느 쪽도 비트루비우스의 고전 모델이 추구했던 완전한 통합과 진리 탐구를 실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비트루비우스 모델은 여전히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파브리카와 라티오치나티오의 존재론적 회로를 다시 활성화한다면 현대의 복잡한 건축 및 설계 환경 속에서도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메디타티오, 그라피아, 데코룸과 같은 통합을 위한 새로운 실천적 개념이 다시금 요구된다.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건축설계는 원인을 탐구하는 역할을 되찾고, 건축시공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회복되어,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지식과 행위의 통합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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