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를 전공한 김혜숙은 장지 위에 샤프펜슬로 드로잉을 그리고 여기에 한 겹 한 겹 색을 올려 도시 공간을 탐구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고수해온 작가다. <공실>(2017), <주변시야>(2017), <문고리 하나, 악수 한 번>(2018)으로 이어지는 개인전에서 그는 주로 근대건축의 재료, 구조, 디테일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눈에 포착된 도시와 건축은 면과 선으로 분해되었다가 상상을 통해 재조합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간의 서사와 시간은 오롯이 기하학과 물성으로 치환된다. 샤프심으로 섬세하게 묘사한 나뭇결, 특정 구조를 반복하는 기둥과 계단의 배열, 이미지를 중첩해 만든 깊이감은 이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4월 7일부터 28일까지 통의동 보안여관 1관에서 열린 개인전 <외곽>은 보다 치열해진 회화적 탐구가 돋보이는 전시다. 좁은 통로를 따라 연결된 방, 덧대고 부서지는 시간의 층위가 그대로 노출된 전시 공간을 구석구석 활용해 작품을 배치하여, 회화와 공간의 서사가 협화음을 이루는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발코니, 외벽, 지붕, 계단, 창문, 보도블록, 타일 등은 벗겨진 벽지, 골재를 드러낸 바닥과 벽, 창문과 이어지면서 전시장의 건축적 요소들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주의를 환기한다. 그의 회화가 실재하는 도시와 공간의 서사를 발견하도록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이 그림 바깥의 ‘외곽’으로 안내하는 것은 어떤 힘 때문일까? 재료들이 중첩되어 쌓이는 한국화 특유의 깊이감을 계속 탐구하고 싶다는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전시 전경 ⓒ 방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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