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도큐멘테이션, 설치 작품 등 박이소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아카이브 전
유머러스한 박이소의 작품 세계 드러나
박이소의 지난 발자취를 꼼꼼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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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찾기 힘든 바로 그것. 정직성, 정말 외로운 그 말.” 박이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빌리 조엘의 ‘어니스티’를 박이소가 직접 번역 및 개사해 부른 ‘정직성’을 기억할 것이다. 늘 정직한 태도로 작업하기를 꿈꾸었던 작가, 박이소의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다. 이미 2006년과 2011년, 2014년에 국내 타 미술기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린 바 있지만, 이번 전시는 보다 방대한 자료를 통해 그의 관심사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는 박이소가 본격적으로 뉴욕 활동을 시작한 1984년부터 생애 마지막까지 계속했던 드로잉, 작가노트, 사회활동가로서의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 등을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이동에 따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싱거운 듯하면서 재치 있고,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박이소의 작품을 전방위로 이해하도록 한다.
전시장 벽을 따라 설치된 드로잉과 설치 작품은 그의 작업 전반에 깃든 유머를 보여준다. ‘아라라쿠아라’, ‘세짐브라’, ‘께잘테낭고’와 같이 생소한 도시 이름으로 세계지도를 만들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좁고 작은지를 비유하기도 하고(‘드넓은 세상’), 풀을 그린 드로잉 위에 ‘잡초도자란다’라는 표제를 적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갱이와 쭉정이로 구분할 수 없이 다 가치 있음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기도 한다. ‘당신의 밝은 미래’에서는 강하고 밝은 스포트라이트 설치물 여러 개가 아무것도 없는 흰 벽을 비추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낙관적인 미래가 사실은 허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음에 대한 은유다. 그의 작품은 이렇듯 허를 찌르는 농담과 같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작가노트와 도큐먼트에서는 드로잉 작품의 씨앗이 되는 아이디어 스케치, 메모 등을 전시하고, 박이소의 집필 활동과 기획했던 전시, 워크숍 등에 대한 자료도 있다. 특히 박이소가 운영했던 대안 공간인 ‘마이너 인저리’에서 기획했던 전시 자료도 있어 이민, 소수자 등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기존의 노래 가사를 번역해 원본과 번역본의 차이를 보여준 ‘정직성’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집단의 중심, 현실에서 조금은 빗겨 떨어져 있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오랜 해외 생활에서 느꼈던 외로움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에 압도당하지 않고 오히려 농담으로 삶을 풀어낸 작가의 발자취를 보기에 충분한 전시다. <이지윤 기자>
Images courtesy of M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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