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3년 4월호 (통권 665호)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전시 전경 / Images courtesy of Seoul Museum of Art
시대와 장소를 경유하는 인간의 몸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여성의 신체를 다룬 작품들로 주목받아온 미국의 페미니스트 미술가 키키 스미스(1954~)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지난 3월 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렸다. 작가의 지난 40여 년간의 방대한 작품 활동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연대기적 나열이나 ‘여성’, ‘신체’와 같이 그의 작업 세계를 규정하는 기존 어휘 대신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구조적 특성에 착안해 구성됐다. 그중 첫 번째, 내러티브를 조명한 섹션에서는 초기 여성 서사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이 종교, 신화, 문학 등 다양한 모티프와 만나 새로운 서사 구조를 이루는 방식을 살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웅크린 자세로 누운 여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판화 ‘꿈’(1992)은 서구의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보이는 정제된 포즈를 거부한 채 근육이 온전히 드러나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처럼 여성 신체를 주제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새의 형상을 구현한 조각 ‘새와 있는 두상 II’(1995)은 인간 신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자연 세계로 확장됐음을 알리는 듯했다.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반복성을 기반으로 한 판화와 사진 작업이 중점적으로 전시됐다. 작가의 얼굴과 몸이 직접 등장한 ‘밴시 펄스'(1991)는 뉴욕의 판화 스튜디오 유니버설 리미티드 에디션(ULAE)과 협업한 작품으로, 판화의 다양한 기법과 표현을 익히고자 한 스미스의 시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아우르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인 에너지에 주목한 섹션에서는 서사적으로나 표현 방식에 있어 생동하는 힘을 지닌 작품을 들여다본다. 여성이 늑대의 배에서 당당히 걸어 나오는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일말의 충격을 안기는 ‘황홀’(2001)은 사뭇 직관적으로 보이나 형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늑대에게 잡아먹힌 소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동화 ‘빨간 망토’,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1485), 성모 마리아의 도상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스미스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다채로운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마치 정원을 거니는 것과도 같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전시의 제목과도 의미를 같이한다. 달이 지구를 맴도는 자유낙하 운동처럼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사유와 개념을 탐구하는 배회의 움직임은 스미스가 걸어온 지난 궤적을 설명한다. 경계선의 언저리에서 이분법적 해답보다 유연한 서사를 택해온 작가의 관점은 오늘날 저마다의 견고한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김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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