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5월호 (통권 678호)
‘인하 렉처 시리즈: 시게루 반’ 강연 모습 ©Oh Doyoun
퐁피두 메츠 센터(2010) Image courtesy of Shigeru Ban Architects / ©Didier Boy de la Tour
2024년 3월 18일, ‘인하 렉처 시리즈’의 일환으로 반 시게루 강연회가 인하대학교 본관에서 진행됐다. 건축 재료와 구조에 대한 창의적 접근과 재난 현장에서의 사회 공헌 활동으로 2014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반 시게루는 이번 강연에서 ‘건축 작업과 사회 공헌 사이의 균형’을 주제로 발표했다. 연단에 오른 그는 먼저 재난 현장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지진에 의한 직접적인 인명 피해보다 건축물 붕괴로 인해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다수의 건축가들은 재해 이후 복구나 신축 프로젝트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비판하며, 도시가 재건되기 전까지 공간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일이 건축가의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강연은 재료와 구조 실험에 천착한 주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먼저 종이 건축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알바 알토 전시장 설계(1986)를 언급한 반 시게루는 한정된 예산에 맞춰 알토 건축의 주재료인 나무의 대체재를 찾다 종이를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종이를 재활용해 만든 지관은 나무의 따뜻함을 간직하면서도 값이 저렴하고 전시 후 폐기물의 양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재료였다. 당시 전시장 파티션과 지붕 구조물에 지관을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지름과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하며 구조적 강성을 지닌 지관을 연구하게 되었고, 이후 재난 현장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노마딕 미술관(2005~2006)에서는 국제 규격의 운송용 컨테이너를 활용해, 해체와 조립이 용이해 장소를 옮기며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을 구현하는가 하면, 하노버 엑스포 일본관(2000)에서는 프라이 오토와 협업하여 지관과 목재를 테이프로 묶어 셸 형태를 만들고 멤브레인 구조를 적용해 종이 건축의 한계를 실험했다. 특히 재활용을 고려해 건물의 기초를 콘크리트 대신 모래를 채운 나무 상자로 대체한 점은 환경문제에 대한 그의 태도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전통 대나무 모자에서 영감을 받아 철제 접합부 없이 결구된 목구조 건물인 퐁피두 메츠 센터(2010)를 비롯해 해슬리 나인브릿지 클럽하우스(2010), 후지산 세계유산센터(2017)로 이어지는 발표에서는 구조적 해법을 찾아가는 건축가로서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강연 후반은 재난 프로젝트로 채워졌다. 고베 대지진 당시 모래를 채운 맥주 상자로 기초를 만든 뒤 지관으로 벽체를 만든 페이퍼 하우스(1995)를 시작으로, 파벽돌이나 대나무 등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변주한 다양한 재난 건축 사례가 소개됐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을 대신해 지관과 컨테이너로 구축한 카드보드 성당(2011)을 지었고,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역에서는 대형 목조건축의 경험을 살려 르비우 시립병원을 진행 중이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재난 현장 활동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는 “건축가의 재난 구호 활동은 의사의 활동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측면에서 건축가와 의사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하며 현장에 참석한 건축학도와 교육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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