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계절은 계절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 더운 열대지방이나 추운 한대지방처럼 뚜렷한 계절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재료와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한국에서는 건축물 본연의 모습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주변의 자연과 도시 환경이 함께 변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이러한 요소는 한국의 건축물 경험을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서울은 건축』은 서울에서 계절마다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각 공간에 대한 설명, 건축가의 의도, 계절에 따른 경험을 한 장 분량으로 간결하게 담아내고 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서울의 건축물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었다. 책의 구성은 설명이 먼저 나오고 공간에 대한 사진이 이어지는 방식인데, 이러한 구성은 글쓴이의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글을 통해 공간을 상상하고, 다음 페이지에서 사진을 보면 그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펼쳐지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상의 확산과 수렴의 반복이다. 글로 상상한 것이 사진으로 확인되지 않을 때는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기도 하며, 한 건축물에 대해 깊이 각인하게 된다.
대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지어진 건축물은 주변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쉽다. 이 책은 건축물이 대지의 상황과 배경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금단의 땅이었던 송현동 부지, 강남과 강북의 역사, 1급 보안 시설이었던 문화비축기지의 변화, 공장지대였던 성수동의 변천 등의 이야기를 통해 대지의 역사성을 살리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각 건물에 담긴 깊은 속내를 전해준다. 특히, 빽빽한 건물로 뒤덮인 서울 속에서 대지에 얽힌 이해관계에 의해 마침내 비워지는 공간들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일례로 마곡동의 ‘스페이스 K’는 마곡 도시개발사업지구라는 대규모 건물이 많은 도시 맥락 속에서, 땅에 낮게 깔린 형태로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을 내어주고 걷다가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때론 형태보다 경험이 그 공간의 기억으로 남는다”는 문장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담고 있다. 건축물의 외형보다 그 안에서의 경험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실제로 그 공간들을 방문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최근 책에서 소개한 콤포트서울을 직접 방문했다. 콤포트서울은 용산구 후암동의 경사진 대지 특성을 살려 1층과 옥상층에 출입구를 각각 마련하고 있다. 1층 출입구에서 수직 계단을 오르고, 옥상층에 다다라 새로운 출입구를 직접 마주하며 땅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또 외부에서부터 내부로 들어서며 건축물이 대지에 놓인 방식, 재료의 사용, 방문자의 동선 등을 하나하나 이해하며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공간 안에 천천히 머무르며 책을 펼쳐 콤포트서울의 설명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글쓴이가 글과 사진으로 이야기했던 공간감이 평면에서 입체가 되어 온전히 나의 경험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테마별 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원하는 코스를 골라 책과 함께 방문해 되짚어 보는 경험은 서울의 건축에 대한 흥미와 애정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신효근 지음
효형출판 펴냄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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