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7월호 (통권 680호)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 계획안 조감도(2021) Images courtesy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백사마을 현황(2021) Images courtesy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에 자리한 백사마을(「SPACE(공간)」 527호, 533호 참고)은 1967년 정부가 서울 일대의 판자촌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판자촌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며 만들어졌다. 당시 주민들은 손수 집을 짓고 생활해야 했다. 지금도 백사마을에는 북사면 지형에서 서로의 일조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의 크기를 줄이고, 집 서너 채가 하나의 골목을 공유하는 등 당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은 이러한 백사마을의 지형, 집터, 골목길에서 드러나는 생활상을 보전하면서도 기존 거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식의 재개발 사업이다. 백사마을은 2009년 ‘중계본동 주택재개발 정비구역’(18만 7,979m2)에 포함됐다. 이에 각계 전문가들은 ‘사라져가는 서울 주거 생활사를 보존해야 한다’며 입을 모았고, 결국 2012년 서울시는 이러한 의견을 수용해 주택재개발구역 중 임대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던 백사마을 전면부를 보존구역으로 설정해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4만 2,773m2)을 추진하기로 했다.
백사마을 택지 중 70%(10만 2,730m2)에는 아파트 1,953가구를, 30%(4만 832m2)에는 484가구 규모의 임대주택단지를 짓는 두 갈래 방식의 정비안을 채택했다. 보존구역의 임대주택단지는 이례적으로 건축가 10명이 부지를 나누어 각자의 구역을 디자인하면서도 1960~1970년대 백사마을 주민들이 집을 지어나간 것처럼 서로 관여하며 설계를 진행했다. 백사마을의 골목, 집의 배치에 묻어난 공동체 의식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분양 아파트는 2018년 서울시의 중계본동 주택재개발정비구역 공동주택 국제지명설계공모(이하 중계본동 공동주택 설계공모)를 통해 설계자를 선정했다.
10여 년간 LH가 사업을 포기하고 사업 시행자가 SH로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2019년 5월에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이하 도계위) 심의를 통과했고, 2024년 3월에는 재개발 사업에 대한 관리처분 계획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인가를 받은 지 겨우 한 달 뒤, 「중앙일보」의 단독 보도를 통해 서울시가 기존 계획을 철회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임대주택 단지의 평당 1,500만 원이라는 건축비가 부담된다며, 두 갈래의 개발 방식을 통합해 최고 35층, 3,043가구 규모의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013년 스스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 백사마을마저 보전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아직 서울시는 기존 사업의 철회를 공식화하지 않았으며 변경안은 도계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중계본동 공동주택 설계공모에 당선된 조남호(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당시 당선안을 도계위에서 심사받을 때, 20층도 높다며 낮추라는 것을 겨우 지켜낸 것인데 도계위가 무려 35층 높이의 설계안을 받아들일지조차 미지수”라 전했다. 또한 서울시의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 철회 의사에 대해 “서울시가 주거지보전사업의 공사비가 많이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겠느냐”며,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보전하는 데에는 돈이 들 수밖에 없고, 주택정책은 성과를 거두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는 이전 정부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새로운 정책을 내세운다. 그렇게 공공이 아파트가 아닌 다른 형식의 공동주택을 고민한 첫 번째 대안적 재개발 사례이자 질 좋은 임대주택을 지으려는 시도는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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