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8월호 (통권 681호)

‘열대 조각: 불가능성의 가능성’(2024) 설치 전경
‘탑 퍼포머스’(2024)
7월 9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 <피곤한 야자수>가 개최됐다. <피곤한 야자수>는 오스트리아 파벨하우스에서 열린 <야자수와 다년생식물(Palm trees and perennials)>(2019)과 모로코의 르큐브-독립예술공간에서 열린 <피곤한 야자수(LES PALMIERS FATIGUÉS)>(2022)에 이은 세 번째 에디션이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두 전시에 참여한 작가 여섯 명에 국내 작가 신미정, 장종완을 더해 야자수에 내포된 여러 상징적 이미지를 확장해 선보인다.
야자수는 기독교에서는 평화와 정의를,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는 식민주의의 잔혹성과 남반구 저개발국에 대한 착취를,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열대림의 과도한 착취를 상징한다. 반면 광고와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야자수는 집이나 도시를 열대지방의 이국적인 분위기로 꾸미기 위해, 혹은 브랜드에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즐겨 이용된다. 일례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야자수도 본래 제주에 서식하던 것이 아닌 1980년대 초 제주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며 심은 것이다.
전시는 이렇듯 자연을 돌보지는 않고 자연이 지닌 심미적인 가치만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조명한다.
레굴라 데트빌러의 ‘탑 퍼포머스’(2024)는 가정용 식물의 가장자리에 고무로 레이스를 붙인 살아 있는 식물 조각이다.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된 자연물에 인공적인 장식을 붙여 자연의 상품화를 비판하며, 관람객이 자연스레 자연의 인공성과 상업화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식물 조각은 점차 자라나며 레이스 장식을 떨구는데, 이는 식물의 해방을 의미하며, 인간의 강요에 의한 미학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엘살바도르 출신 작가 빅토르 크루스&후고 포르티요의 ‘열대 조각: 불가능성의 가능성’(2024)은 나무, 바나나 잎 등 야자수를 해체한 재료로 다시 나무 야자수 형태를 만든 설치 작업이다. 재조합된 야자수 모형은 아트선재센터 1층 더그라운드 중앙에 설치되어 열대지방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 세계 관광지의 야자수는 살아 있지만, 이 야자수 모형과 마찬가지로 기존 서식지에서 분리되어 운송되고, 옮겨 심긴다.
‘피곤한 야자수’는 아랍어로 오아시스라는 뜻을 가진 사이프 쿠스마트의 사진 연구 프로젝트 ‘와하(Waha ةحاو)’ 시리즈(2020~2024)와 카트린 스트뢰벨의 ‘고레 섬(Ile de Gorée)’(2011)에서 각각 인간이 파괴하는 오아시스 생태계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간 노예들로 의미가 확장된다.
신미정은 한국의 밤섬을 피곤한 야자수에 비유한다. ‘밤섬: 표류하는 이미지들의 기록 vol.1’(2022)은 20세기 서울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밤섬에 대한 아카이브 영상이다. 밤섬은 과거 여의도와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었고, 40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1968년 2월 여의도 개발 계획(「SPACE(공간)」 29호 참고)과 한강 흐름 개선을 이유로 폭파됐다. 1980년대에 들어 밤섬은 다시 섬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고, 1999년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남아 있다. 작가는 영상 작업과 ‘밤섬: 구술기록’(2024)에 밤섬의 폭파로 고향을 상실한 개인들의 삶을 기록해 인간의 욕망에서 기반한 착취가 단순히 식물과 자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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