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과 김종성』은 설계부터 연구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힐튼 호텔(이하 힐튼)에 관여된 사람들의 소회를 담은 구술집이자 사진집, 그리고 에세이집이다. “장면들"이라는 제목을 단 1장이 힐튼의 내부 풍경을 기록해 독자에게 간접 경험의 기회를 준다면, 3장은 힐튼을 직접 경험한 “현장 사람들”의 기억을 전한다. 2장은 힐튼의 설계자 김종성과의 긴 대화이며, 4장은 힐튼에서 한 발치 물러나, 힐튼이 놓인 양동지구의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하는 김종성의 대안적 도시 계획을 담았다.
힐튼은 1983년 대우센터빌딩(현 서울스퀘어) “경사진 뒤쪽 부지”에 세워진 고층 건물이다. ㄴ자를 닮은 힐튼의 측면구조에서 수직선 부분이 지불능력을 가진 투숙객을 위한 공간이라면, 수평선에 해당하는 ‘로비 아트리움’은 공공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힐튼과 김종성』은 이 아트리움이 뜻하지 않게 공공적 성격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공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공간임을 알려준다. “아득하고 탁 트인 높이”를 공적 공간의 주요 조건으로 꼽는 김종성은 서울에서 ‘풍요로운 공간감’을 체험할 곳이 마땅치 않다 봤고, 힐튼의 아트리움을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했다. 최대 높이를 18m로 설정한 이유도 보통 사람들이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휴먼 스케일”을 고려한 것이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연말 트리나 자선 기차 이전에, 힐튼의 공공성은 아트리움의 구조에 이미 깃들어 있던 셈이다.
『힐튼과 김종성』에 첨부된 40년 전 ‘대지 종단면도'가 언덕 아래 대우빌딩과 언덕 위 힐튼을 쌍둥이처럼 그려 보이는 점은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의미심장하다. “힐튼 호텔의 생명을 더 이상 연장시키지 못한다는 최종 결론”이 힐튼의 흥망성쇠를 표시한 타임라인의 맨끝 점이라면, 그 왼쪽으로 두 번의 매각이 있을 것이고, 조금 더 가면 건축주 대우그룹의 쇠락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힐튼을 인수한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 힐튼과 대우빌딩 사이에 위치한 고층 빌딩 두 채를 추가 매입하며 서울역 일대 개발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남산의 능선을 배경으로 “비례와 규격이 딱딱 맞는” 미시안(Miesian) 건축 미학을 구현했던 힐튼은 다시 평평한 ‘부지’로 되돌려질 것이고, 그 자리에 새 시대의 이상을 담은 건축물이 올라설 것이다. 그 때 『힐튼과 김종성』에 담긴 기억들은 지금의 생생함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김종성, 정성갑 지음
브.레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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