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2월호 (통권 685호)
‘즐거운 건축’ 강연 현장, 왼쪽부터 이원재, 피터 쿡, 존홍, 이경훈 ©Kim Bokyoung
11월 15일, 서울시청에서 아키그램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피터 쿡(CRAB 스튜디오 대표)의 강연이 열렸다. ‘즐거운 건축’ 을 주제로 한 강연은 쿡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시작됐다. 런던의 AA 스쿨을 졸업한 지 2~3년 후, 대형 건설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몬트리올 세계 박람회 타워 설계를 위한 사내 공모에 참여했다고 한다. 쿡은 당시 자신의 관심사를 총망라한 설계안을 제시했고, 이 아이디어가 아키그램의 가장 상징적인 개념 중 하나인 플러그인 시티(1963~1966)의 모태가 됐다. 그는 AA 스쿨에서 강의하는 동안 일어났던 학생들과의 소통 또한 이 개념을 다듬어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플러그인 시티에서 도시의 구성 요소들은 모듈화되고, 모듈화된 유닛들은 거주자들의 필요에 맞춰 메가스트럭처에 결합, 제거되며 역동적인 생명체와 같은 도시를 이룬다. 도시를 하나의 원동력으로, 하나의 유기체로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인스턴트 시티(1968~1970)에서 이어진다. 박물관, 콘서트장 등의 도시 구성 요소가 트럭을 타고 들어오면 작은 마을도 잠시 동안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스턴트 시티를 그린 콜라주 드로잉은 마치 서커스단이 시골 마을에 찾아오는 풍경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는 시골을 순회하는 서커스단에서 인스턴트 시티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피터 쿡은 20세기 중반부터 아키그램의 일원으로서 기존 건축 질서를 거부하는 실험적 건축운동을 펼쳐왔지만, 작품을 실현하기 어려워 ‘페이퍼 아키텍트’일 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쿡은 이러한 꼬리표를 벗어나게 해준 그라츠의 쿤스트 하우스(2003)부터 현재 작업 중인 알바니아 티라나의 타워까지 이어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를 통해 그가 드로잉만이 아닌 실제 작업에서도 전통적인 건축의 관념을 거부하고, 건축 어휘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이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강연의 막바지에 쿡은 자신이 ‘하이디 홀’이라 정의한 건축물 안팎에서 느낄 수 있는 예기치 못한 공간의 매력을 강조했다. 하이디 홀은 일종의 도심 속 탈출구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숨겨진 공간을 마주하며 유쾌한 건축적 발견을 경험할 수 있다. 건물의 틈새, 작은 구멍, 작고 이상한 모서리들은 본래의 설계 목적, 기능성을 넘어 탐구의 즐거움을 자극하는 기제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드로잉 곳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건물, 도시의 작은 조각과 같은 하이디 홀을 발견할 수 있다. 강연 후 피터 쿡, 존홍(서울대학교 교수), 이경훈(국민대학교 교수), 이원재(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설계 총괄대표)가 함께 하는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쿡은 패널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미국에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미국 건축, 크게는 미국 문화에 내재된 합리성과 정당성 확보에 몰두하는 성향을 짚었다. 그런데 한국 건축은 미국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엄격한 학문적 태도가 강하다며, 유럽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머러스함을 수용해 학생들이 보다 자유롭게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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