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3월호 (통권 688호)

안성석의 ‘꺼지지 않는 알람 소리’(2023) 스틸 컷 ©An Seongseok

레지나 호세 갈린도의 ‘그림자’(2017) 스틸 컷 ©Michael Nast
무기를 통해 현시대를 성찰하는 전시 〈무기세(武器世)〉가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개최 중이다. 전시의 제목인 ‘무기세’는 기후 위기와 관련된 ‘인류세(人類世)’ 개념에 관한 비판적 논의 속에서 비롯됐다. 네덜란드 기후학자 파울 크뤼천이 처음 제시한 인류세 개념은 인간이 본성적인 탐욕으로 지구의 환경을 파괴했다고 지적하며, 종(種)의 차원에서 그 책임을 묻는 접근을 요구한다. 인류세 담론이 산업자본주의라는 특정 시스템과 그 주체의 책임을 인류 전체의 몫으로 돌린다는 비판 의식에서 등장한 ‘자본세’는 환경적, 사회적 위기의 주요 원인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구조적 특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제시된 개념인 ‘무기세’는 인류세- 자본세의 구도 속에서 산업자본주의 체제와 결부된 군사주의적 문명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무기 생산과 기술, 방위산업, 전쟁 등 군사 활동과 이를 둘러싼 군사-산업 복합체의 전지구적 활동이 지구환경과 인류의 미래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는 세 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무기를 단순히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포착한다. 첫 번째 섹션 ‘무기화된 일상’은 일상적 사물과 무기의 형식을 결합한 작품들을 통해 무기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드러냈다. 안성석은 1인칭 슈팅 게임의 배경과 시계 알람 소리를 결합해 무고하게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는 동시에 전쟁의 긴장감을 일상 속에서 체감하게 했고, 폴 샴브룸은 미국 전역의 공공장소에서 전시되고 있는 퇴역 무기를 포착한 사진 작품을 통해 죽음을 상징하는 무기가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공간에 박제된 아이러니를 드러냈다.
두 번째 섹션 ‘스펙터클로서의 무기’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무기의 이미지와 그 이면을 탐구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군사 훈련 풍경과 실전 무기의 비현실적인 모습을 담은 방병상, 미키마우스와 같은 친근한 모양을 통해 무기의 위협성을 경고하는 노영훈 등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무기의 형식과 기능에 집중한 작품들을 통해 무기의 파괴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생각하게 했다. 세 번째 섹션 ‘무기, 낯익은 미래’는 무기로 인해 파괴된 환경과 고통받는 생명에 집중했다. 레지나 호세 갈린도는 독일의 레오파르트 탱크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을 담은 퍼포먼스 영상을 통해 선진국의 무기 수출이 제3세계 내전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화했다. 오제성은 전쟁과 군사독재, 민주화를 겪은 한국의 세대를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일렬로 걷는 인물들로 표현해 역사적 아픔과 세대 간의 연결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그 밖에 하태범은 전쟁, 재난, 폭력의 장면을 표백된 흰색으로 담아내 평화를 파괴하는 무기와 기술의 목적성을 질문했고, 박진영과 방정아는 핵발전 기술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진과 회화 작업들을 선보였다.
무기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만 작동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다. 전시는 이를 예술의 언어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무기가 만들어내는 질서와 그로 인한 폭력, 그리고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에 대해 질문한다. 전시는 5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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