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4월호 (통권 689호)
‘작품’(1970, 2025 재제작)과 ‘대위(對位)’(1971, 2012년 재제작) 설치 전경 ©Kim Hyerin
‘도시계획백서’ 연작 전시 전경 ©Kim Hyerin
2월 14일부터 4월 20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하종현5975〉가 개최된다. 하종현은 배압법으로 잘 알려진 단색화의 거장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하종현의 1959년 초기 작품부터 1975년 작품까지 다루며 그의 작업이 당시 한국의 시대적 맥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발전했는지 탐구한다. 전시를 위해 아트선재센터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국내 유수의 기관에 있는 하종현의 1959~1975년 사이의 작품들을 모았다.
1959년부터 1965년까지를 다룬 1부 전시는 젊은 날 하종현의 초상화로 시작된다. 대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 작가의 표정은 서늘하고, 서정적이다. 그가 보는 세상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황폐화된 1950년대의 세상이다. 젊은 하종현은 앵포르멜에 영향을 받아 정형화된 회화의 틀을 깨고 물질성을 강조하는 작업들을 이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시대가 남긴 집단적 트라우마를 재료와 행위를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한국적 맥락에서 앵포르멜을 재구성한다. 그의 이런 실험은 캔버스에 실을 붙여 입체감을 준 뒤, 그 위로 두꺼운 물감을 덧바르고 불에 그슬린 작업들로 드러난다.
2부에서는 1967년부터 1970년의 시기를 다룬다. 도시화와 경제성장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의 바람 속에서 작가는 대표작 중 하나인 ‘도시계획백서’ 연작을 완성한다.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추상화한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인 패턴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 시기 한편으로는 역동적인 도시의 속도가 담긴 작업들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들을 그려낸다. ‘탄생’ 연작은 전통 미학과 현대 조형 언어를 융합한 작업으로, 단청 문양과 한국적인 색감을 사용하고 캔버스를 돗자리처럼 직조해 입체감을 주었다.
3부에서는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 시기의 작업들을 보여준다. 특히 1969년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를 결성했던 시기의 작품들과 사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협회지인 「AG」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다. 이 시기 하종현은 신문, 휴지, 시멘트 가루, 스프링, 못 등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다양한 일상적 재료들과 산업 재료들로 당대의 경직된 사회와 언론 검열, 사회적 억압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또 회화 작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설치 작업들을 한 것이 AG 시기의 특징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는 거울 설치 작업인 ‘작품’(1970)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다양한 설치 작품들을 전시장에 재현해놓았다.
4부에서는 작가가 배압법을 고안해낸 1974년에서 1975년 사이의 작품을 보여준다. 배압법으로 그려진 ‘접합’ 연작은 마대자루를 이용해 만든 캔버스의 뒷면에 물감을 짠 뒤,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밀어낸 작업이다. 뒷면에서 시작된 작업의 결과물은 앞면에서 드러난다. ‘접합’ 연작은 2010년부터는 ‘이후접합’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며 단색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시는 하종현이 캔버스 속 세계를 계속해서 밀어내며 평면의 한계를 넘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적으로 ‘모노크롬 회화’가 아닌 ‘단색화’라는 한국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하종현 등 당대의 작가들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 흔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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