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4월호 (통권 689호)
비보르크 도서관 홀의 난간, 영화 ‘알토’(2020) 스틸 컷 ©Euphoria Film
알바 알토와 아이노 알토, 영화 ‘알토’(2020) 스틸 컷 ©Euphoria Film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의 첫 프로그램인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이 상영 중이다. 파블로 피카소, 안젤름 키퍼, 알바 알토, 백남준, 아니 에르노, 피나 바우쉬 등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을 다룬 8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구성되며 상영 후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3월 7일에는 건축가 알바 알토의 가구 디자인을 중심으로 그의 건축 세계를 탐구한 영화 ‘알토’(2020)가 상영됐고, 박희찬(스튜디오히치 대표)이 알토의 건축적 유산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영화 ‘알토’는 알바 알토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자신만의 디자인 문법을 만들어낸 순간들을 조명한다. 핀란드에서 측량사로 일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본래 주변의 환경과 지리를 관찰하는 감각이 탁월했다. 헬싱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전형적인 모더니스트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파이미오 요양원 프로젝트 도중 병원에 입원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자를 배려한 건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알바 알토 디자인을 대표하는 파이미오 의자는 환자들이 테라스에 누워서 사용하는 치료용 안락의자로 디자인됐다. 당시 강철 튜브로 만드는 방식이 유행했지만 그는 금속이 환자들에게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질 것을 우려해 나무로 곡선을 구현하기 위한 제조 방식을 찾는다. 그는 지역의 장인과 협업해 핀란드에서 흔히 자라는 자작나무를 층층이 접착해 휘어지도록 만드는 벤트프레스 구법을 개발했다. 이케아 스툴의 원형 격인 ‘스툴 60’의 곡선형 다리에 이 구법이 적용됐고, 이후 특유의 부드러운 난간 디테일로 이어지며 보다 큰 스케일에서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성령 교회에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부채꼴 형태의 지붕을 구현하는 데도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그의 가구 작업은 사용자에게 온기를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작은 스케일에서 건축적 실험을 수행하는 과정이었다.
한편, 영화는 그의 아내이자 동료였던 아이노 알토의 가구와 조명 작업들을 통해 그들이 교류했던 순간들을 비춘다. 아이노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서 알바 알토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그가 쾌활하고 외향적인 인물이었다면 그녀는 차분한 성정의 소유자로서 상대적으로 간결한 조형을 구사했다. 아이노가 디자인한 팬던트 조명 ‘AMA 500’에 적용된 타공 패턴은 이후 알바 알토의 ‘골든 벨’ 조명에도 반영됐고, 이는 두 사람이 서로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업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의 스케일과 생활을 고려해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가구 디자인을 다수 남겼는데, 이는 알바 알토의 건축에서 나타나는 휴먼 스케일 및 세심한 디테일과 연결되며 인간적인 건축을 향한 열정이 부부 사이에 공유됐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어진 토크 프로그램에서 박희찬은 핀란드를 여행하면서 알토의 건축을 스케치하고 분석한 경험을 공유하며, 알토가 직접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는 도구로서 가구와 조명을 만들었던 것처럼 현재 그의 사무소 스튜디오히치는 ‘메이킹 워크숍’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소재와 첨단 제작 기술을 건축설계에 적용하는 방법을 실험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체제작한 조명과 가구가 있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디자인이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관찰 중이다. 이번 필름앤비디오는 5월 24일까지 이어지며, 4월부터는 문학, 무용, 음악 분야의 다큐멘터리 상영 및 토크가 진행될 예정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