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1월호 (통권 696호)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2015~2016, 2020) 설치 전경 ©Jeon Byung-Cheol / Image courtesy of Leeum Museum of Art

〈이불: 1998년 이후〉 그라운드갤러리 전시 전경 ©Jeon Byung-Cheol / Image courtesy of Leeum Museum of Art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불의 대규모 서베이 전시 〈이불: 1998년 이후〉가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신체와 사회, 인간과 기술, 자연과 문명의 관계와 이를 둘러싼 권력의 문제를 탐구하는 급진적 작업들을 선보이며 동시대 미술의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해온 그는 초기 10년간 주로 퍼포먼스 작업에 천착했다. 이번 전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죽은 생선을 비즈로 장식하고 비닐백에 담아 전시한 작품 ‘화엄’(1997)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후 30여 년간의 여정을 보여주는 조각, 설치, 회화 작업들을 망라한다.
전시는 블랙박스와 그라운드갤러리 두 개 층으로 구성되는데 블랙박스로 진입하는 경사로 상부에는 길이 17m에 달하는 은색 비행선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2015~2016, 2020)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20세기 초 체펠린 비행선을 참조한 것으로, 1937년 힌덴부르크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비행선은 기술 진보가 가져올 유토피아와 그 좌절을 상징하며 끊임없이 높은 이상을 상정하고, 그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본능적 열망, 그리고 그 열망이 계속해서 되풀이되어 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함께 전시되는 인간과 유사한 형상의 ‘롱 테일 헤일로: CTCS #1’(2024)은 혼종성이라는 이불 특유의 시각 언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대와 양식을 아우르는 미술사적 참조물과 인체, 기계, 건축물의 파편들이 뒤섞이며 역사와 문화, 인간과 기술문명의 다층적 요소는 추상적인 형태로 승화된다.
전시에 포함된 150여 점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진보에 대한 인류의 열망(유토피아적 환상)과 그 좌절(오류)을 동시에 상징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된다. 블랙박스 내부에는 대규모 거울 설치 작업 ‘태양의 도시 II’(2014)가 벽과 바닥을 감싸며 작가의 초기 대표작인 ‘사이보그 W6’(2001), 1999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소개된 노래방 작업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I’(1999, 2000 재제작), 그리고 근대건축의 유토피아적 상징을 차용한 ‘오바드’(2007)가 함께 배치된다. 서로 다른 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 완전성을 향한 열망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드러내며 유토피아적 욕망의 복잡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지하 그라운드갤러리에서는 2005년 이후 전개된 ‘몽그랑레시(Mon grand récit)’ 연작이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에 따르면 근대성의 본질은 수많은 이질적인 역사를 하나의 보편적 이야기로 축소하려는 거대 서사의 부단한 창조와 그 실패에 있다. 이러한 불신을 출발점으로 작가는 단일한 서사 대신 개인과 집단의 기억, 역사의 파편들, 다양한 사회문화적 참조점들을 해체하고 혼용해 알레고리적 풍경을 구축한다. 이때 건축은 인간의 희망과 비전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불은 여러 작품에서 모더니즘 이데올로기가 품은 열망과 모순을 시각화하기 위한 틀로 건축을 참조해왔고 ‘몽그랑레시: 바위에 흐느끼다…’(2005)에서는 휴 페리스의 타워와 아야 소피아 모스크의 단면 모형을, ‘애프터 브루노 타우트(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2007)에서는 브루노 타우트의 실현되지 못한 공상적 건축 프로젝트들을 차용해 이상향과 폐허의 이미지를 겹쳐놓았다. 또한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평면 연작인 ‘퍼듀’와 ‘무제(취약할 의향–벨벳)’도 선보인다. 내용적으로는 작가의 조각 작품과 주제와 모티프를 반영하면서, 형식적으로는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화면을 구성하거나 자개, 벨벳 등 새로운 재료 실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전시는 2026년 1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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