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영혼의 궤적(The Trajectory of the Soul)』, 도서출판 크로포스, 2025 / Image courtesy of Bae Byung-kil Architecture&Urban Design Associates
배병길(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대표)의 건축 작품집 『영혼의 궤적(The Trajectory of the Soul)』이 제7회 바쿠 국제건축상 G부문(건축 분야 우수 출판물)에서 3위를 수상했다. 바쿠 국제건축상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문화부와 건축가협회, 그리고 국제건축가연맹(UIA)이 협력해 개최하는 국제 건축상으로, 공공건축·주거·실내·조경에서부터 도시 재생·미착공 프로젝트·건축 출판물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도시환경 전반을 다각도로 조망하는 상이다. 올해는 전 세계 38개국에서 270개 작품이 7개 부문에 출품되었으며, 수상 결과는 2025년 10월 3일 발표되었다. 이번 G부문 1위는 아제르바이잔 건축가 이만자데 제르나즈(Imanzadeh Zernaz)의 『DiRIiYYE Open-Air Museum(디리예 야외 박물관)』, 2위는 우크라이나 건축가 올레나 올리이닉(Olena Oliynyk)의 『Democratic Reconstruction of Ukraine(우크라이나의 민주적 재건』이 각각 선정되었다. 각각 공공 프로젝트이거나 국가적 맥락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번에 3위를 차지한 『영혼의 궤적』은 배병길의 건축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집이다. 책은 자연·인간·건축의 상호 관련성을 탐구하는 그만의 건축 철학, ‘염치의 미학’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염치’는 조선시대 성리학에 기초한 정서로, “말하고 싶으나 차마 말하지 않는 마음”이며, 절제와 비움, 인(仁)의 감각을 내포한다. 배병길의 건축 행위에 있어 ‘염치’는 항상 타자(사물을 포함한 세계 전반)에 대한 배려를 근본으로 하는 도덕적 성찰로 나아가며, 연기(모든 현상은 인연에 따라 생겨난다는 개념)를 바탕으로 실천된다. 이러한 염치의 언어 속에서 배병길의 건축은 절제와 비움을 통한 여운을 얻게 된다. 이때 비움은 또한 채움을 기다리는 공간으로, 채움은 또 비움을 기다리는 공간으로 표현되며 이런 상호관계성은 자연, 인간, 건축의 ‘경계 없음’으로 나아간다. 그에게 건축은 ‘영역을 점유하는 행위’가 아닌, 세계와 관계 맺는 태도다. 이 철학은 “존재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윤리로”라는 방향으로 확장하며, 공간이 남기는 여운과 경계 없는 연속성을 통해 구현된다.

국제갤러리 전경 ©Park Wansoon
해체, 반추, 염치, 허정, 즉자와 대자, 간여와 간섭이라는 일련의 키워드를 따라, 책은 ‘염치의 미학’이 어떻게 형성되고 심화되어왔는지 그 내적 과정을 보여준다. 배병길의 건축 여정은 해체주의적 탐색에서 출발한다. 유학 후 귀국한 그는 한국 최초의 해체주의 건축으로 일컬어지는 국제갤러리(1991), 기존 골조 위에 새로운 재료를 덧입히는 ‘Old & New’ 개념을 제시한 갤러리 현대(1994) 등을 통해 다양한 전시 공간을 설계하며 건축 실험을 이어왔다.
이후 종가댁 학의재(2002)를 기점으로 그는 한국 전통건축의 정신을 현대 건축으로 이식하는 전환점을 맞는다. 이어 은둔의 집(2002), 수도원 묵당(2002) 등에서 대지의 장소성과 자연에 대한 절제의 태도를 뚜렷하게 드러내며, 이 과정에서 ‘염치의 미학’은 그의 건축 전반의 핵심 언어로 자리 잡는다. 또한 그의 자연관은 재료 인식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는 건축 재료 또한 땅, 물, 공기와 같이 경계 없음(no boundarise)을 드러내는 불이(不二)의 대상으로 본다. 노출 콘크리트 또한 석회암, 자갈, 모래, 물, 공기 등이 혼합, 변형, 화석화된 모습으로 “건축 재료를 보이지 않는 상호관계성(망)에 의해 나타난 ‘제 2의 자연, 화석화된 자연’”으로 보며 “건축 또한 ‘임시 자연’”이라고 개념화한다. 이는 “건축가와 건축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임차인”이라는 태도로 귀결된다. 또한 그의 철학은 김천고등학교 예지관(2010), 송설역사관(2006), 김천시립박물관(2019) 등 교육·문화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 속에서 실천적 형태로 구현되며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책은 시대적 사유를 건축으로 엮는 실천을 다루며, 완공된 작업뿐만 아니라 그의 미완 프로젝트, 이론적 탐구, 사유의 전개까지 함께 담는다. UCLA 재학 시절 국제공모에 출품한 요코하마 빌딩부터, 예술가 중광의 삶을 담은 중광예술촌, 사유적 삶을 제안하는 은둔의 집, 홍천 골프빌리지,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시어를 공간화 하려한 서촌 근린생활시설 등은 그의 건축 세계를 정교하게 확장시킨 작업들이다. 『영혼의 궤적』은 건축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서에 가깝다. 배병길은 건축을 통해 서구 근대가 강조해 온 물질 중심의 가치관을 성찰하고, 자연·인간·건축 간의 새로운 윤리적 관계를 사유하는 여정을 제시한다.
한편 『영혼의 궤적』은 베니스 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의 일환으로 현재 진행 중인 전시 <베니스 지성의 구축(Libraries, Building Venetian Intelligence)>에 저자의 다른 건축작품집 『천년의 침묵(The Weight of Thousands Blackness)』과 함께 11월 23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본 기사에서 작품명 뒤의 년도는 준공년도가 아닌 설계완료 년도를 적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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