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1월호 (통권 696호)

정지현 작업 설치 전경. Image courtesy of piknic

서지우, ‘숨쉬는 파사드’(2025), 〈힐튼서울 자서전> 2층 전시 전경, 그래픽캐뷰러리의 작업 설치 전경. ©Kim Hyerin
지난 9월 25일 힐튼서울(1983)이라는 이제는 철거된 장소에 축적된 4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는 〈힐튼서울 자서전>이 피크닉에서 문을 열었다.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종성(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명예회장)이 설계한 힐튼서울은 철거 당시 건축계에 근현대역사적 건물을 철거한다는 비판과 논란이 있었다.(「SPACE(공간)」 654호 참고) 이 건물은 1985년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 행사의 주요 회의 및 연회가 이루어진 곳이자, 수많은 시민들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건축이 잘 소멸하기 위한 방법이자, 역설적으로 소멸에 대응하는 보존의 방법으로서 존재한다. 이를 위해 전시를 공동 기획한 건축 큐레이팅 콜렉티브 CAC는 총 6회의 사전포럼을 개최하며, 현대건축물의 보존과 재생 방식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확장하고, 건축물의 소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단순히 공간을 이식하거나, 건축의 과거 기록을 아카이브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장소의 복기와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물리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실존하는 ‘대안적 장소’로서의 힐튼서울을 구축한다. 이를 위해 기존 힐튼서울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던 작가군뿐만 아니라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을 선정했다.
건물이 사라지는 과정에 천착한 작업으로는 정지현, 서지우, 테크캡슐의 작업이 있다. 정지현은 건물의 입면이 붕괴되는 과정을 사진으로 포착했다. 화려했던 과거의 파편들이 흩어지는 순간은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영원히 남는다. 그렇게 해체의 찰나는 사진 속에 박제되어, 기이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서지우의 작업 ‘때 빼고 깜박이.1’, ‘때 빼고 깜박이.2’, ‘숨쉬는 파사드’는 힐튼서울의 주요 자재였던 녹색 대리석, 트래버틴, 브론즈, 오크 등 ‘세월을 초월하는 자재’를 철거 현장에서 수거해와 해체된 건축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한때는 건물이었던 존재는 다른 조형성으로 치환되었으나 여전히 건축의 감각을 복기한다. 그런가 하면 테크캡슐은 철거 현장을 밀착해 기록한 작업 ‘상실의 기준’과 힐튼서울 전체를 3D 스캐닝해 디지털 차원으로 건물을 이행시킨 작업 ‘잠재 생동’을 선보인다. 건축의 해체와 재구성에 주목하고, 현실과 가상을 매개하는 이들의 작업은 건축 생애의 다음 장에 대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이 힐튼의 사라짐에 집중한 작업들을 했다면, 기억과 기록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업으로는 건축 사진작가인 임정의와 최용준의 작업이 있다. 1980년대 힐튼서울의 준공 과정과 완공 직후를 촬영한 임정의 작품과 2022년 힐튼서울 영업 종료를 앞두고 건축의 디테일과 세부의 장면을 기록한 최용준의 작품은 나란히 배치되어, 건축의 시작과 끝에 대한 시선을 교차시키며, 시작과 끝이라는 찰나를 통해 힐튼서울의 긴 시간을 제유한다. 뿐만 아니라 전시에는 힐튼서울이 있기까지 김종성의 회고와 시공 과정에서 오간 대화들, 설계도면, 스케치, 서류 등이 상세히 아카이빙되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물의 생성 과정과 소멸 이후 채집된 건축자재 및 시계, 수전, 식기, 안내판 등에 축적된 시간을 함께 마주하며 우리는 건물을 이정표로 삼아, 한 시대의 감각과 기억을 다층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아카이빙 자료를 통한 영상 작업 또한 눈에 띈다. 실재하는 건물의 외부에서부터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시선은 건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노송희의 ‘되짓기’는 도면과 공문서, 사진 등의 종이기록물들을 통해 건축의 빈자리를 상상하며 응시하고, 백윤석의 ‘시대의 얼굴’은 건물 자체가 아닌 건물의 시대적 맥락과 변화를 추적한다. 그런가 하면 그래픽과 회화 작업을 통해 호텔이 지닌 정서와 개인적 경험을 녹여낸 작업도 있다. 그래픽캐뷰러리(곽민구, 이슬아)는 철거 전 힐튼서울 1430호 객실에 3개월간 머무르며 객실과 로비, 사우나 등의 호텔의 일상적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또 전시의 말미에서는 힐튼서울의 상징이었던 크리스마스 자선열차도 복원되어 전시된다. 1995년부터 매년 연말 그랜드 아트리움에 설치되었던 이 열차는 수많은 서울 시민과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볼거리였다. 사라진 건물 그 안에서 삶의 일부와 일상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열차는 다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기록과 기억을 통해 사라진 건물을 재소환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대안적 서사로서, 힐튼서울을 비물리적인 층위에서 새로이 탄생시키고, 보존한다. 이는 김범상(피크닉 대표)의 말처럼 서울의 한 조각이었던 힐튼서울을 “애도”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전시는 2026년 1월 4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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