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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예술이 그리는 미래의 지형도: 〈최재은: 약속〉

exhibition 김혜린 기자 2026.02.25


「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루시’(2007) 설치 전경 ©Kim Hyerin 

 

‘소우주’ 섹션 전시 전경, 앞의 작품은 ‘숨을 배우는 돌’(2025) ©Kim Hyerin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생태적, 행성적 사고로의 전환을 제안하는 전시 〈최재은: 약속〉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2월 23일 막을 열었다. 최재은(1953~)은 현대미술의 전방에서 조각, 영상, 설치, 건축 등 다양한 매체와 영역을 아우르며 생명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해온 작가다. 전시의 제목인 ‘약속’은 언어적 의미를 넘어 문명 이전부터 시공을 관통해온 자연의 상호 연대성을 되새기게 하는 개념으로 제시된다. 

전시는 ‘루시’, ‘경종(警鐘)’, ‘소우주’, ‘미명(微名)’, ‘자연국가’라는 소주제를 따라 진행된다. 전시장 입구에는 조형물 ‘루시’(2007)가 놓였다. 1974년 발굴 당시, ‘최초의 인류’ 화석으로 추정되었던 루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세포의 완전한 형태로 여겨지는 육각형으로 절단한 히말라야산 한백옥돌 조각을 결합해 여성의 골반 형태를 닮게 만든 이 작품은 인류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경종’에서는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와 함께 ‘대답 없는 지평’ 연작(2025)을 선보인다. 검은 바다 위로 지구 각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영상과 오키나와 해역의 이상 고온으로 백화된 산호 이미지와 백화 산호 설치가 함께 어우러진다. 인류의 무관심과 방치로 인해 도래한 현실을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해 제시하며 경종을 울리는 작품들이다.

‘소우주’에서는 대지의 안팎에 존재하는 미시세계를 탐구하는 작품군이 이어진다.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가루이자와)’(1991~1992)는 1986년 경주를 시작으로 일본,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의 토양에 와시(washi) 종이를 묻어 뒀다가, 이를 꺼내 그 위에 형성된 문양을 아크릴 레진으로 고착시킨 작업이다. 어두운 빛깔로 빛나는 이 작품은 흙 속에서 탄생했음에도 마치 우주의 한 자락을 포착한 것처럼 보인다. ‘순환’(2007)은 앞의 작업을 현미경으로 촬영해 세포 단위의 유기체 간 생장의 흔적을 통해 순환의 질서가 미시세계에도 존재함을 드러낸 작품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숨을 배우는 돌’(2025)이 있다. 암석과 주변에 내려앉은 지의류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되고 확산되며, 시간의 지형도를 형성한다.

그런가 하면 ‘미명’에서 작가는 작고 미미한 생명들을 조명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2025)는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한 들꽃과 들풀을 수집해 압화하고, 그 이름과 기원 등을 찾아 기록한 작업이다. 이와 함께 공간에는 음향 설치 작업인 ‘이름 부르기’(2025)가 흘러나온다. 산업혁명 이후 멸종된 대표적 종들의 이름이 불린다. 

전시는 ‘자연국가’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비무장지대(DMZ) 프로젝트로 유명한 작가의 장기 프로젝트들이 소개된다. 2014년에 시작한 ‘대지의 꿈’ 프로젝트는 철원 DMZ 안에 남과 북을 공중으로 연결하는 보행로를 만들고, 공중정원과 정자, 타워를 설치하고, 철원 제4터널 내부에 종자와 지식 저장소를 마련하는 안으로 발전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반 시게루, 승효상, 조민석 등 건축가를 비롯해 예술·생태·기술·인류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 18명의 제안을 아카이브 영상으로 소개한다. 또한 이를 확장한 장기 프로젝트 ‘자연국가’(2020~)의 일환으로, 현재 DMZ의 생태 현황을 분석한 ‘생태현황 분석도’를 비롯해 DMZ 숲 복원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과 종자볼에 사용되는 30여 종의 씨앗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4월 5일까지 진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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