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이다미 플로라앤파우나 대표 × 김예람 기자
꽤 적극적인 초년생이었어요
김예람(김): 작업하고 계신 프로젝트 현장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다미(이): 여기는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작은 빌라인데요. 지인이 집을 리모델링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이라 공간의 수평과 수직이 맞지 않는 곳이 많은데 그게 재밌어서 필요한 부분만 반듯하게 했어요. 오래된 목창호에 맞춘 가구도 만들고 있어요.
김: 이 작업은 아직 홈페이지에 안 올라와 있더라고요. 홈페이지를 보니 이전에 어떤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하셨는지 알 수 있었어요. 사회 초년생일 때 어떠한 기준으로 일할 사무소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이: 대학교 학부 시절부터 경험 삼아 다양한 사무실에서 인턴이나 아르바이트생으로 있었어요. 구가도시건축,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건축사사무소 협동원,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등에서요. 대학원 재학 중이나 졸업 후에도 이시가미 준야 어소시에이츠와 파라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아주 짧게 여러 곳을 다녔어요. 작은 사무소에서 일하다 보니 일을 조직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에 지원했어요. 저는 뉴욕 지사에서 근무했는데 그때 회사가 비아 57 웨스트(2016)를 지으면서 미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던 시기였어요. 2014년에는 북미 경제가 괜찮았었고 미국이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가 빨랐거든요. 제가 퇴사할 시점에는 직원 수가 입사했을 때보다 두 배 많은 140명 정도였어요.
김: 일년 만에 굉장히 빨리 성장했네요.
이: 비즈니스 개발부서가 별도로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BIG에 근무하면서 건축사사무소가 갖춰야 하는 여러 요소를 배울 수 있었는데, 지금 플로라앤파우나는 조직이라고 하기엔 너무 왜소하네요. 조직을 책임지는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아서 아직까지 사무소를 섣불리 키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웃음)
김: 사무실 이름이 참 예뻐요. 플로라앤파우나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왔나요?
이: 미국에서 회사 소속으로 묶이는 게 싫어서 아티스트 타입 비자를 신청했는데요. “건축은 엄청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인데 제출한 경력을 네 경력으로 볼 수 있냐”며 승인을 반려 당했어요. 틀린 얘기는 아닌데 그 일로 독립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졌죠. 비자 만료로 한국에 돌아와서는 최춘웅 교수님 사무실에서 일했어요. 햇수로 2년 정도 근무하다가 2016년 후반에 서울공예박물관 설계공모에 참가하면서 사무실을 나왔어요. 참가서에 반드시 사무실 이름을 적어야 한다고 해서 며칠을 고민한 끝에 플로라앤파우나라고 지었어요. 라틴어로 ‘식물과 동물’이라는 뜻인데요. 돌이켜보면 공모전의 설계 대상지 앞에 있는 종로구 송현동 부지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도심 속의 허허벌판 같은 이미지가 인상에 많이 남았나봐요.
김: 프로필에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에서 2017년도까지 근무하셨다고 적혀있어요. 최춘웅 교수님의 사무실을 퇴사하고 바로 사무소를 차리신 게 아니네요?
이: 플로라앤파우나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한 건 2018년 무렵이에요. 퇴사와 동시에 독립을 하기에는 제가 기술적인 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섬세한 디테일의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에서 한 번 배워보고 싶었어요. 입사할 때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역시나 제가 그 회사에 적합한 인재는 아니었더라고요. (웃음)
디지털 홍수에서 유영하고 있어요
김: 최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축가가 늘어나고 있어요. 온라인을 통해 건축 정보가 적극적으로 공유되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해요.
이: 지난해부터,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과 디지털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가르쳤어요.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건축 정보가 어떻게 생산되고 온라인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소비되는지를 흥미롭게 관찰했는데요. 오랫동안 건축은 도면과 완공 사진을 중심으로 정보가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그래픽 프로그램과 SNS가 보편화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건축 정보가 공유되더라고요. 그중 제일 재밌는 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요. 24시간이 지나면 영상이나 이미지가 사라지는데, 공간에 방문한 사람들이 그렇게 짧고 한시적인 방식으로 건축 정보를 전달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라이브 방송도 있네요. 이미지뿐 아니라 시간의 측면에서 이전과 다른 경험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 소장님도 종종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올리시던데, ‘좋아요’ 숫자를 많이 신경 쓰시나요?
이: 다른 사람들이 제가 올린 건축 이미지를 좋아하는 건 저 역시 기뻐요. 하지만 그들에게 제 작업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저는 소통이 잘 안 되는 부분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사람이라서요.
김: 개인 미디어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개인이 너무 쉽게 노출되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이: 많은 게 즉각적으로 노출되는 세상인 것 같아요. 약간 무섭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편한 부분도 있어요. 예전에는 외부에 공개되는 이미지를 만들 때 신경이 참 많이 쓰였는데 요즘은 그런 부담이 덜해요. 자료는 남겠지만 다른 정보에 휩쓸려 저 멀리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더라고요.
김: 건축 정보를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군요.
이: 건축가 존 메이가 『시그널. 이미지. 건축(Signal. Image. Architecture)』(2019)에서 ‘기록물은 없고 캐시만 남았다’, ‘의미는 없고 발표만 남았다’는 말을 했는데요. 건축 자료가 하나하나 드라마틱하게 전시되던 시기와 실시간의 감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지금이 무척 다르다는 걸 잘 설명하는 구절 같아요. 만드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거대한 담론이나 현상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정보의 맥락을 짧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거죠. 일상과 업무를 구분하기 어려워요
사진_이다미
일상과 업무를 구분하기 어려워요
김: 다시 가벼운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요즘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이라는 신조어가 참 많이 쓰이는데, 소장님의 일상과 업무는 얼마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 건강만 하면 됐죠. (웃음) 사실 저는 워커홀릭이라 삶과 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요. 아마 인간 가족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대신 동물 가족은 있어요.
김: 함께 지내는 동물 가족 좀 소개해주세요.
이: 저희 고양이 이름은 이이응이에요. 얼굴에 동그라미가 있어서 그렇게 불러요.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됐을 때 데려왔으니까, 지금은 만 다섯 살 정도가 되었네요.
김: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으면 고양이가 키보드 앞에 앉지는 않나요? (웃음)
이: 어릴 때는 많이 그랬는데 요새는 제가 별로 반응을 안 하니까 삐쳐서 멀리 가버리더라고요. 질투가 심한 편인데, 제가 화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으면 가까이에 와서 울어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걸 못 보는 건데 그럴 때마다 모니터에 있는 학생들을 소개해주죠.
김: 집에서 작업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봐요.
이: 밤에는 주로 집에서 작업을 많이 해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밤에 건축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더라고요. 일상에서도 건축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끊지 못하다 보니 생긴 습관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제 작업 스타일을 권하지는 않아요. 다만 스스로가 밤에 일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죠.
김: 저도 밤에 종종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원고를 다듬어요. 왠지 모르게 밤에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혹시 집에서 업무를 볼 때 반복하는 소장님만의 루틴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 저는 일하다가 중간에 잠을 잠깐 자고 다시 일해요. 짧으면 10분, 길면 한 시간 정도요. 저도 인센스 스틱 같은 걸 말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웃음)
사진_이다미
함께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김: 2019년 2월, 스틸북스의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여집합의 공식 활동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혹시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 빌딩롤모델즈를 선보일 수 있었던 건 여섯 멤버의 스케줄에 약간의 틈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행사를 개최하고 단행본을 낸 이후 몇 번의 협업 기회가 있었는데 빌딩롤모델즈와는 다른 결이 필요할 것 같아서 보류했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흘렀고 각자의 일을 하기에도 바쁜 상황이 됐어요. 만약 다른 여성 건축인 그룹이 등장했다면 여집합의 활동이 없더라도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근래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건축가 모임 ‘소파’의 멤버들을 며칠 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런 분들이 조금 일찍 나타나셨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소파의 활동을 기대하고 있어요.
김: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디자이너 우유니가 소파의 로고를 만들었다고 해요. 다른 예술계의 여성 전문인 모임과 접점이 만들어지는 걸 보니, 건축계에서 다시 한 번 빌딩롤모델즈 같은 활동이 일어날 거란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이: 이런 활동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건축하는 분들이 워낙 바빠서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직접 활동을 못해도 관심을 열어놓으면 평소의 실천으로 확장되어요. 저도 좋은 여성 작업자들과 함께 일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인데 이런 측면에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 활동에 많은 자극을 받아요. FDSC 같은 경우에는 여성 작업자를 공개적으로 소개하고 일감을 전달하면서 커뮤니티를 지켜나가려고 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미술 전시 설치 디자인도 FDSC 멤버의 소개로 시작된 일이네요.
김: FDSC의 멤버들이 유튜브 영상으로 다른 멤버의 작업을 소개해주는 게 참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건축계에도 그런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건축가는 작가 개인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사무소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크레딧을 합리적으로 나누어도 조직의 대표가 아니면 선뜻 자기 작업으로 발표하기가 쉽지 않죠. 조직에 있으면 독립활동을 겸하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건축인의 활동이 일찍, 그리고 다양하게 빛을 보기 어려운 건가 싶기도 해요. 소설가나 그래픽 디자이너는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러 활동을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잖아요. 저도 독립했기 때문에 맘껏 편하게 활동한 측면이 있어요.
장르를 넘나들 순 없을까요
김: 요즘 챙겨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있나요?
이: 얼마 전부터 ‘팬텀싱어’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어요. 그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장르에서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건축가는 이름이 별다르게 없지만 가수는 소리꾼, 성악가, 뮤지컬 배우, 대중가수 등 장르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장르를 벗어나서 다양한 음악을 하는 게 멋있더라고요. 그렇게 크로스오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정을 이입하기도 하고요.
김: 어떤 부분에서 마음이 동했나요?
이: 사실 2020년은 제가 약간의 강박을 느낀 해였어요. 사무실을 연 지 3년 차인데, 제가 어떤 건축을 하고 있는지 조금은 분명히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성급한 욕심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팬텀싱어에 나오는 분들을 보니 그 마음이 많이 누그러들었어요. 제 안에 하나의 굳건한 무언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공존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김: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혹시 팬텀싱어의 출연자처럼 넘어가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이: 너무 단순한 대답인데, 더 큰 거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장르를 고민하게 된 것도 프로젝트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룰 수 있는 공간의 크기와 용도가 다양해지면 제 안에 있는 것들이 싸우지 않고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 큰 프로젝트라고 하는 게 타인의 관심이나 주목도가 큰 걸 의미할까요?
이: 일만 있으면 주목도는 크게 상관없죠. 주목을 받는 것보다는 프로젝트에 접근할 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맡겨만 주세요. (웃음)
이다미는 2월호에서 김사라(다이아거날 써츠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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