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부동의 교실 풍경을 흔들다
1960~70년대 지어진 교실에, 그때와 비슷한 형태로 2017년에 입학한 1학년 아이들이 앉아 있는 것을 떠올려보자. 불행하게도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단지 조금 깨끗하고 최신 집기시설이 있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사실 학교 건축에서 표준설계도가 폐지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학교는 획일화된 단위교실 크기, 연령별 행태의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교실 형태, 편복도형의 평면을 가지고 있다. 좋은 건축, 좋은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상업 공간, 주거 공간, 하다못해 사무 공간에까지 미쳐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학교 건축이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건축 양식을 유지하며 고리타분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다. 교육을 위한 공간인 ‘학교’의 모습이 명령 관계와 안전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군대 막사나 병원의 병동 배치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으니,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이 뼈저린 현실이다.
꿈을 담은 교실(이하 꿈담교실) 사업은 이러한 연유로 시작됐다. 획일화・표준화되어 있는 기존의 학교 공간을 학생 중심의 창의적・감성적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여 미래지향적인 학교 공간의 신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으로, 그 뿌리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이하 서울시교육청)이 최초로 도입한 건축 자문관 제도가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학교건축이 필요하다는 진단하에, 2016년 7월 ‘서울 교육 공간 및 건축’ 분야에서 활동할 첫 번째 민간전문가 자문관으로 김승회(서울대학교 교수)를 위촉했다. 건축 자문관 제도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서울 교육 공간 마스터플랜, 마을결합형 신축학교 사업, 제2창의인성 교육센터 등의 여러 사업들 가운데 꿈담교실은 첫 성과이기도 하다. 서울시교육청은 1학년 교실을 주요 사업 대상으로 정했다. 혈연적 유대로 맺어진 가정이나, 보육 개념의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규격화된 학교 공간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2017년 3월 꿈담교실 사업의 마스터 아키텍트로 선임된 김정임(서로아키텍츠 대표)이 가장 먼저 한 일은 20명의 건축가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선정된 20명의 건축가들은 일관된 가이드라인을 상정하고 그에 따르기보다, 각각 흩어져 학교 측의 요구 사항을 듣고 교실 공간을 관찰하여 학교마다 지닌 문제와 상황에 맞게 설계를 진행하면서, 4월부터 6월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중간 과정을 공유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빠져나간 여름방학 기간에 대부분의 공사를 완료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같은 사양으로 갖추기
기존 학교 공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물리적 공간(하드웨어)과 교육 콘텐츠(소프트웨어)의 불일치였다. 콘텐츠가 없어 텅 빈 채 방치되고 있는 공간이 있는 반면, 다양화된 수업 방식을 공간과 시설물들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가 열린 교육을 위시하여 만들어진 교실 크기 만한 복도였다. 1990년대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낙후된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현대화 시범학교 건설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면동초등학교의 경우, 하교 지도를 하는 공간 정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경선(홍익대학교 교수)은 1학년 교실이 존재하는 세 개 층의 복도 공간에 각각 독서 공간, 미끄럼틀과 미로가 있는 놀이 공간, 무대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미끄럼틀과 미로가 있는 공간에서는 “놀이 시간과 쉬는 시간에 좀비 놀이를 하고, 1반, 2반, 7반이 와서 논다”(김찬희, 면동초)고 했다. 김숙희(면동초 1학년 부장교사)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들도 미로 공간에서 친구들과 부딪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하고 자기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쉬는 공간, 내밀한 공간으로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로 자체가 소통의 공간이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성수초등학교 역시 비슷한 경우로 하나의 큰 교실을 두 개 교실로 나눠 쓰고 있었는데 방음이 문제였다. 이에 조재원(공일스튜디오 대표)은 가벽을 거둬내고 두 반이 함께 쓰는 공유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양쪽에 문을 엇갈리게 두어, 무대와 독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후자는 7차 교육과정의 도입에 따라 다양화된 수업 방식을 단일화된 교실 공간과 유동성 없는 가구들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경우였다. 슈타이너가 세운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수업 활동에 따라 책상과 의자를 벽면으로 옮겨두었다가 다시 필요할 때 책걸상을 재배치하여 앉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학생의 배움에 따라 유동적으로 공간과 가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정초등학교와 최혜진(오즈앤엔즈건축 대표)은 아이들이 책상과 의자, 사물함 같은 가구와 소품에 정성을 들였다. 책상 상판은 기존 직사각형에서 벗어나 육각형으로 만들었고, 의자 또한 동그란 좌판을 사용했다. 육각형의 책상을 여러 방향으로 조합하면 다양한 대열이 가능하다. 이혜은(1학년 4반 담임선생)은 “책상을 육각형으로 만든다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도 모험이었다. 하지만 책상의 대형을 자유롭게 구성하고 필요에 맞게 변형이 가능해지면서, 기존 수업 방식의 답답함이 많이 해소됐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활용도가 높은 것은 이동식 수납함이다. 선생님들은 이 가구를 안쪽으로는 사물함처럼 사용하고 뚜껑을 덮어 테이블 용도로 사용하리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블록 놀이를 하기도 하고, 의자로도 사용하며, 볼트로 서로 연결하여 무대로도 사용한다.
상월초등학교를 맡은 박종혁(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은 다른 학교에 비해 한 반의 정원수가 적은 상황을 이용하여 교실 뒤편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ㄱ자 모양의 전이 공간을 만들었다.
송정초등학교와 최혜진(오즈앤엔즈건축 대표)은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 사물함 같은 가구와 소품에 정성을 들였다. 아이들은 이동식 수납함을 통해 블록 놀이를 하기도 하고, 의자로도 사용하며, 볼트로 서로 연결하여 무대로도 사용한다.
학교 공간 재인식하기
교실이 단순히 학습의 공간만으로 해석되던 시대와는 달리, 경제・사회・문화를 수반할 수 있는 공공시설물로서 학교 건축이 미래에 갖추어야 할 기능과 요구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고, 한부모 가정과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가족 구성이 생겨나는 시대에 가정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학교상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제 초등학생에게 학교와 교실은 단지 학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때로는 쉼의 장소이자 놀이의 장소로도 활용되면서 여러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공간의 경계 흐리기와 다양화가 수반되어야 할 터.
동답초등학교에서 김정임은 교실과 복도의 경계에 주목했다. 교실과 복도를 냉정하게 나누고 있던 얇은 벽 대신, 독서 공간과 다락방이 자리 잡으면서 따뜻한 깊이를 가지게 됐다. 아이들은 교실과 복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경계를 지운다. 또한 교실 뒤쪽에는 단차를 둔 무대 공간이 마련됐다. 김민정(1학년 4반 담임선생)은 “이전에는 역할 놀이가 있다고 해도 키가 작은 아이들의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일어서고 앞으로 나오는 일들이 생겨 통제가 잘 안 됐다.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꺼려졌는데, 무대가 생기니 모든 아이들이 잘 볼 수 있고 집중도 더 잘한다”고 말했다.
상월초등학교를 맡은 박종혁(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은 다른 학교에 비해 한 반의 정원수가 적은 상황을 이용하여 교실 뒤편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ㄱ자 모양의 전이 공간을 두었다. 전이 공간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작은 소그룹 공간, 온돌방이 있으며,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모둠별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네모난 책상을 맞대어 조별 활동을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떤 조는 빨간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어떤 조는 온돌방에 드러누워서, 어떤 조는 계단형 책꽂이에 걸터앉아서 학습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안나(1학년 1반 담임선생)는 “분리된 공간이 있어 활용도가 높다”며, “1학년 아이들 신체에 맞게 만들어졌다는 점에 감탄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된 작은 공간을 아이들은 ‘카페’라고 부르며, “급식에 디저트가 나오면 저기서 먹고, 종이접기도 한다”고 했다. “평소에 책을 안 좋아하던 친구들도 독서할 공간을 만들어주니 그 자리에 앉으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1학년 4반 이혜은 담임선생)는 말처럼, 비어 있는 박스였던 교실에 공간이 구획되면서 선생님의 수업 운영 방식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사고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면동초등학교의 경우, 이경선(홍익대학교 교수)은 1학년 교실이 존재하는 세 개 층의 복도 공간에 각각 독서 공간, 미끄럼틀과 미로가 있는 놀이 공간, 무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
꿈담교실이 진행된 여러 학교를 답사하면서, 선생님들의 인터뷰 중 공통적으로 나왔던 표현 중 하나가 “우리가 함께 어떤 것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학교와 교실이 건축된다는 것은 행정의 문제이지 교육 주체들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학생, 교사, 교육학자, 학부모 등 교육 현장에서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학교 건축의 문제에서 배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교 건축은 건축주가 대량생산하는 기성화 공간도 아니고 건축가가 자신의 작품 욕망을 성취하는 미학의 공간도 아니다. 설계부터 교구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교육 행정가와 건축가, 교사, 그리고 학부모와 지역주민 등이 함께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전개하고 협의하여 최선의 모델을 결정하는 투명하고 열린 시스템이 요구된다. 이러한 참여는 선진국에서 이미 일반화되어 있고, 이제 우리 학교 건축도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건축 행정에서 탈피해 기초 설계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주체와 사용자의 의견이 반영될 때가 왔다.
꿈담교실, 새로운 학교 형식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열다
그동안 학교 건축의 변화를 꾀한 시도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주도의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사업을 통해 학교 내의 유휴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시도가 있었고, 삼양초등학교처럼 선생님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있었지만, 일반 대상이 아닌 특별 교실, 도서관, 유휴 공간들이 대상이었고, 건축적 접근보다는 환경개선이나 환경미화 수준에 그치는 일이 많았다. 단순히 알록달록한 색으로 채워진 교실이 아닌 학생들의 활동량과 범위에 적합한 형태와 색채, 교구 및 가구 디자인이 필요했다. 이런 맥락에서 꿈담교실은 건축가가 직접 개입하여 학생들에게 좋은 교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앞서 건축가들이 참여한 동화고 삼각학교(설계 네임리스), 독수리기독학교(설계 디아건축) 등이 사립학교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번 꿈담교실이 국공립학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20개 학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교육청이 내세웠던 기준들도 눈에 띈다. 예산의 효율성, 규모의 적정성, 학교구성원의 참여 의지 등이 고려됐지만, 그중에서도 지역의 특수성에 가점을 주면서, 강남 3구에 있는 학교들은 제외됐다. 물론 강남 3구에도 학교 자체가 낙후된 곳도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생활여건이 나은 지역의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공간들이 일정 수준 이상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임은 “한 개인이 일생에서 경험하는 공간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주거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학교가 좋거나, 그 동네에 좋은 공공 도서관이나 공원이 있는 것. 그런 것이 결국 국가 혹은 공공기관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8년에도 이루어질 꿈담교실 사업 계획에 대해 “올해 각 교실당 평균 5천만 원이었던 예산을 내년에는 6천만 원으로 늘리고, 대상 학교도 33개로 늘릴 계획이다. 또한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학교도 고려 대상이다”라고 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교육 공간 디자인 혁신을 위한 설계용역 발주제도 개선방안’을 수립하여 가격입찰 대신 설계공모를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건축 자문관 제도의 첫 열매인 꿈담교실을 계기로 학교 건축의 전반적인 인식변화와 제도적 개선이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금호초등학교에서 장영철(와이즈 대표)은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교실 뒤편에 여러 반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을 만들었다.
성수초등학교의 경우 하나의 큰 교실실을 두 개 교실로 나눠 쓰고 있었는데, 방음이 문제였다. 이에 조재원(공일스튜디오 대표)은 가벽을 거둬내고 두 반이 함께 쓰는 공유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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