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 Dokyun
사무실의 생활 말고도 다른 것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흙과 나무, 불어오는 바람, 들이치는 비, 늘어진 오후 햇빛과 그림자, 어렴풋하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 가구같이 매끈한 목재, 동그란 철 난간, 철 계단의 울림소리, 구름과 석양. 주거지역이지만 북쪽 도로에 면한 대지로 일조 사선제한을 피해 충분히 높고 반듯한 매스를 계획할 수 있었다. 수직의 사각 매스 속에는 최대한의 용적을 채우고도 비워진 공간들이 넉넉히 남았다. 1, 2층에 걸쳐 벽돌로 마감된 높은 진입구와 3, 4, 5층에 동서를 관통해 적삼목으로 마감된 외부 공용 공간, 5층 대표실과 마주한 옥상정원이 그것이다. 그리고 나머지가 출판사의 업무 공간이다.
벽돌 진입구
두툼한 벽돌 벽에 높고 좁게 뚫린 대문 없는 진입구에 들어서면 건물 전체의 계단이 시작된다. 안쪽 깊은 곳에는 엘리베이터 승강장이 있고, 1, 2층 실내 공간을 둘러싼 2개 층의 유리 커튼월이 세워져 있다. 바깥 대지에서부터 시작된 바닥 벽돌 마감재는 안쪽 깊은 곳까지 깔려 있으며, 벽체의 내부 면에도 외장용 벽돌이 그대로 사용됐다. 이곳은 바깥 거리의 기온에 그대로 노출된 외부 공간이면서 벽돌 벽에 난 틈과 개구부를 통해 어렴풋하게 빛이 굴절돼 들어오는, 어둠이 머무는 공간이다. 건물의 현관 로비로 칭하기엔 도시의 거리 느낌이 여전한 영역이다.
공중 관통
2층에서 3층으로 이동하는 계단은 벽돌 매스 바깥쪽으로 돌출돼 있다. 안쪽으로 다시 돌아 들어오면 적삼목으로 매끈하게 마감된 좁은 통로에 나머지 계단이 놓여 있다. 3층에 다다르면 5층까지 동서를 관통하는 공중 옥외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 관통 공간의 북측에는 사무실과 회의실이 있고, 남측으로는 엘리베이터 홀, 화장실, 창고가 놓였다. 거주자는 생활하며 늘 외부 공간을 거치게 된다. 햇빛과 바람이 이 공간 안으로 충분히 들어오도록 직통계단은 별도로 벽에 단단히 고정해 설치했다. 마치 공중 거리처럼 양쪽 입면에는 출입구와 창문이 여기저기 뚫려 있고, 바깥 거리의 소리도 그 틈으로 자연스레 번져 든다.
ⓒLim Dokyun
옥상정원
공중 관통 공간의 5층에는 대표실에 해당하는 실내 공간과 벽돌 담으로 둘러싸인 옥상정원이 병렬되어 있다. 양쪽의 경계는 커다란 유리창으로 구획됐으며, 똑같은 크기로 대칭된 정원과 대표실은 하나의 영역 안에 놓인 쌍둥이 공간 같다. 정원에는 라일락과 모과나무, 그리고 아주 가느다란 난간을 가진 철계단이 띄엄띄엄 배치됐다. 마치 준비된 무대 배경처럼 곧 사람들이 들어설 듯한 모습이다. 석양 시각이 되면 서측 영롱쌓기 무늬의 벽돌 담을 투과한 햇빛 조각이 대표실의 동측 콘크리트 벽면에까지 깊이 들어와 맺힌다. 대표실은 이러한 이중적인 분위기로 보다 여유로운 공간감을 가진다.
벽돌 구조체
건축주와 사옥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기 전 대지를 먼저 방문했다. 앞서 전해 들은 요구 사항은 벽돌 외장을 원한다는 것뿐이었다. 오후 늦은 시간, 대지 앞에 서서 허공에 세워진 벽돌 구조체를 상상했다. 벽체는 길 폭보다는 한참 높고, 여기저기 뚫린 개구부를 통해 안으로 빛과 그림자가 풍부하게 들어온 모습이 그려졌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탤지어’에 나오는 지붕이 사라진 성당이 곧 연상됐다. 빛과 바람이 사람보다 먼저 그곳을 차지했다. 이미 세워진 허공 구조체 안에 사옥이 함께 들어서길 의도했다. 벽돌 구조체 벽에는 실내와 실외 간 뚫린 창호를 위한 개구부 외에도, 외부와 외부 사이를 연결하는 개구부들이 여기저기 관통되었다. 외부 간의 개구부는 공간 전개상 통과의례의 역할을 한다. 속에 들어선 사옥의 외피는 이 벽돌 구조체에 닿지 않고 이격된 것처럼 처리되었다. 사옥의 기능적 요인으로 명백하게 설명되는 방식의 외관은 거부되었다. 벽돌은 사옥 건축물의 외장재로 취급되기보다, 선언적으로 상상된 구조체가 지닌 고유한 구축 요소로 인식됐다.
무늬 퇴적선
대지 바닥 전체에 깔린 영롱쌓기 무늬의 벽돌은 사람의 허리 높이 정도까지 세워졌고, 사람의 키 높이보다는 높고 건축물 2층 바닥 높이에 못 미치는 모호한 높이까지 융단쌓기 무늬로 변화됐다. 그리고 건축물의 나머지 높이에는 일반적인 쌓기 방식이 적용됐다. 벽돌은 네모진 흙이다. 땅을 수직으로 세우고자 한 의지에, 흙은 손에 쥐어질 수 있는 사각의 조각 단위로 변모되었다. 마치 땅의 퇴적 현상처럼, 이 구조체의 벽돌 무늬는 수평적으로 퇴적된 양상으로, 내부의 요건과는 무관하게 모든 면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벽돌 자체는 속의 흙 입자가 드러나도록 반절로 절단되었으며, 줄눈 모르타르는 벽돌 절단면에 맞춰 느슨하게 채워졌다. 그리고 벽면 전체를 완성한 후 철 브러시로 다시 갈아내었다.
설계와 시공은 최초에 허공에 세워진 상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이었다. 이 사옥의 거주자들은 언제나 신선한 외부 기운을 만날 수 있으며, 깊이 들어온 석양 빛을 바라보고, 들이치는 비와 눈 앞에서 서성이며, 계절 따라 변하는 식물들을 인지하고, 다양한 빛깔이 닿은 재료들을 쓰다듬기를 바란다. 햇빛, 바람, 비, 눈, 더위와 추위, 도시의 거리 분위기가 함께 내재된 사옥으로 여겨졌으면 한다. (글 임도균 / 진행 김지아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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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
96.19㎡
3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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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17.85m
55.96%
199.59%
철근콘크리트조
점토벽돌
점토벽돌, 적삼목
창민우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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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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