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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소담원재

리슈건축사사무소

글
김인성
사진
김재윤
자료제공
리슈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3년 6월호(통권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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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여기에 있다. 어떻게 근대적이 되면서 원천으로 돌아갈 것인가? 어떻게 오래되고 잠들어 있는 문명을 깨우면서 보편적 문명에 참여할 것인가?” - 폴 리쾨르

 

소담원재는 리쾨르의 질문에 대한 하나의 건축적 답변이다. 이 집의 건축가가 근대 초기 도시한옥을 연구하며 발견한 것은 그 전통적 구법이나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소박한 자유로움이다. 근대기 건축가들에게 전통이란 탐구나 적용의 대상이 아닌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 따라서 그들 자신을 이루고 있는 DNA와도 같은 것이었다. 삶이자 기술이자 미학이었던 전통은 낯선 도시 상황에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것은 맞닥뜨린 현재로 전통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친숙한 전통의 ‘체계’로 낯선 시대와 환경을 해석한 것이다. 소담원재의 건축가는 스스로 오래전 낯선 도시를 만난 도시한옥의 건축가가 된다. 그는 그가 물려받았고, 추구했고, 받아들인 어떤 전통의 씨앗을 선험적 잠재성의 체계로서 이미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러한 체계란 철학에서 말하는 형태나 형식, 기호, 지평, 다이어그램이거나 혹은 건축에서의 유형, 구조, 패턴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경우, 체계는 지어진 건축, 그 건축가와 사용자 이전에 존재한다. 그것은 자신의 눈으로 물질과 기술, 대지와 환경을 탐색하고 이 시대, 이 사람들의 삶을 해석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변형과 변신에 주저함이 없고, 그러한 대로 또 하나의 자신을 이 땅에 펼친다.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태어날 무수한 건축의 DNA, 씨앗, 혹은 오래된 미래들이다.

 

조형 vs. 조영

체계로서의 전통이란 대상으로서의 한옥 대신 방법으로서의 한옥으로 작동한다. 소담원재의 평면에서 발견되는 고집스런 직교 그리드에서는 근대적 합리성과 전통적 칸(間)의 개념이 접점을 찾는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은 신도시의 반듯한 토지분할과 만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그리드는 수학적 좌표의 추상성이나 돔이노 프레임의 구축적 합리성과는 다른 길을 향한다. 그리고 땅과 현실에 착 달라붙어 삶을 직조하는 방법론으로 작동한다. 이곳의 건축가에게 중요한 것은 공간과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땅을 ‘경영’하는 일이다. 먼저 할 일은 경영할 땅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도시한옥을 둘러싼 외벽, 문간, 담장들의 자유롭고 연속적인 조합이 어렵지 않게 대지의 테두리를 따라 자리 잡는다. 건물은 일정한 형태를 부여받는 대신 이 네모의 땅, 하나의 닫힌 세계를 분할함에 의해 생겨난다. 분할의 방식은 대지 안쪽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강한 밀착을 만든다. 두 개 층을 갖는 네모의 땅 전체는 내부와 외부 공간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효율적이고 밀도 높은 도시주거를 생산한다. 1층의 서측과 북측은 건물이, 남측과 동측은 마당들이 차지한다. 건물은 ㄱ자 홑집의 구성이지만, 서측은 반 칸 정도 확장된 퇴칸 영역에 다용도실, 계단실, 포켓정원, 화장실이 줄지어 섰다. 2층은 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한 ㄱ자 형식으로 얹힌다. 어긋난 ㄱ자 볼륨이 입체적 외부 공간을 만들어내지만, 내부는 적극적인 오픈에 의한 공간적 풍부함보다는 땅바닥의 논리를 강조하며 층별로 두 개의 바닥으로 분리된다. 2층이 시작되는 서측 계단과 1층의 끝에서 연결된 동측 계단은 공간적 장치라기보다, 두 개 층이 꼬리를 물며 하나의 커다란 바닥판으로 작동하게 하는 연결고리에 가깝다. 남측 문간채에서 시작된 ㄷ자의 입체 경로는 다시 남측 끝의 2층 욕실에서 끝나는데, 그 시작과 끝은 정면 파사드 두 곳의 영롱쌓기 외피로 암시되고 있다. 이러저러한 외피의 모양새는 그것이 디자인된 형태이기보다 조영(造營)의 결과로 생겨난 결과물로서의 우연적 새로움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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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vs. 세속

전통의 형태와 물질에 경도된 앞 세대를 비판하며 형식과 정신을 이야기하던 4.3그룹의 선배 건축가들과 달리, 소담원재의 건축가는 건축과 전통이라는 도구에 의지해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이것을 이상과 현실, 초월과 ​세속의 이분법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이분법이라면 전 세대들이 각기 주장한 물질과 정신의 구분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실에 뛰어든다는 것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 아래, 그러한 구분이 생기기 이전의 깊이에 도달하려는 몸부림이다. 그것은 건축이라는 안전지대를 떠나 세속적 에너지의 심연으로 뛰어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형식과 내용과 표현이 구분되기 이전, 삶과 건축,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지점에서라야 진정한 의미의 시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소담원재의 그리드는 아직 유연하다. 그 속살의 부드러움을 담보하기 위해 체계의 테두리는 그렇게 단호하게 세워지지 않았던가. 이 안에서 형식은 끝내 내용을 저버리지 않는다. 혼돈을 구제할 그물망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거친 땅과 삶을 규정하는 대신 그들과 함께 뒹굴며 서로를 길들인다. 그들 사이에는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내부의 그리드는 삶의 요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밀리고 어긋난다. 그것은 르네상스적 기하학보다는 루이스 칸이 말하는 ‘방들의 사회’에 가깝다. 여기서는 9분할 정사각형의 질서보다 이 집을 살아낼 가족의 생활과 관계와 욕망이 더욱 긍정된다. 그것은 서원의 엄숙함보다는 도시한옥의 자유에 가까운 기술이다. 하지만 이 모든 뒤엉킴이 혼돈에 이르지 않도록 버티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다. 무채색의 외피와 지붕이 견고하게 감싸 안고, 마당과 정자가 팽팽히 맞서며 중심의 구심성을 생산한다. 흔들림 속에서도 그리드는 자신의 체계를 힘겹게 지켜낸다. 마당을 ‘비움’ 대신 ‘비건폐지’로 설명하고 고상한 설계를 넘어 시행도 마다 않는 세속적 건축가는 자본주의적 욕망마저도 또 다른 질서를 위한 규율로 길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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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의 융합

세속적 건축가는 이미 자유롭다. 하지만 그 자유가 손쉽고 무분별한 차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취하되 그것들이 진정한 시작의 깊이를 경유하여 어떤 목표를 향해 함께 떠오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담원재에는 수많은 건축적 유산과 우리 전통의 흔적들이 혼재한다. 한옥의 칸뿐만 아니라 대청마루와 누마루, 쪽마루, 정자가 문간채와 담장, 지붕선과 처마선의 변주와 함께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자칫 어수선할 그 어휘들은 한국식 미니멀과 재료의 단정함으로 정리되지만, 주차장 등 용도적 이중성과 가득 찬 땅들의 활용성은 정신과 관조의 미니멀을 실용적 미니멀로 뒤집는다. 모서리와 접합부의 날카로운 재료분리가 표면의 2차원성을 부각하며 비물질적 추상성을 보이는가 하면, 연속된 벽의 흐름과 볼륨의 꿈틀거림은 다이어그램적 역동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라움플란의 연쇄적 실내 공간은 또 다른 라움으로서의 외부 공간을 포괄하며 확장된다. 투명성의 원리는 라움-마당을 관통하며 다층화되고, 다채로운 개구부와 마당들의 중첩은 더 풍요로운 건축적 산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많은 개별적 흔적들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함께 떠올라 세우는 하나의 지평이다. 이곳의 건축가는 예술가나 역사학자이기보다는 해석학자에 가깝다. 해석학적 전제 속에서 역사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며 체계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학자가 드러난 객관적 사실과 그 변천을 찾을 때, 해석학자는 그 밑에서 면면히 작동하는 체계 속으로 뛰어든다. 그의 지평은 과거의 지평을 만나고, 이 시대 건축의 지평은 전통의 지평과 융합한다. 어떠한 지평도 완결적이지 않고, 그 어떤 역사적 지평도 우리가 그 속에 진입하여 더불어 움직이는 공간일 뿐이다. 그 안에서 현재와 과거는 서로의 특성을 자각하고 새로운 해석으로 피어난다. 근대기 도시한옥의 건축가들은 자신의 전존재로 낯선 도시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갱신했다. 소담원재의 건축가가 향하려는 목표는 이미 여기에 함께 있는 우리의 체계로 건축의 지평을 갱신하는 일이다. 그것은 건축과 전통의 이름으로 우리의 세속적 삶을 갱신하려는 시도이자 믿음이기도 하다. 이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은 혼융되어야 하고, 지평은 융합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래된 것들과 함께 미래를 짓는 길이다. (글 김인성 / 진행 방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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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PACE(공간)」 667호(2023년 6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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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주)리슈건축사사무소(홍만식) 설계담당

설계담당

임도영

위치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357.2㎡

건축면적

175.3㎡

연면적

199.87㎡

규모

지상 2층

주차

2대

높이

9.2m

건폐율

49.08%

용적률

55.95%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벽돌타일, 징크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원목마루, 타일

구조설계

라임이엔씨(주)

기계,전기설계

(주)코담기술단

시공

(주)위드라움

설계기간

2021. 3. ~ 10.

시공기간

2021. 11. ~ 2022. 10.


홍만식
홍만식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후, 원도시건축과 구간건축건축사사무소, 에이텍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았다. 2006년 설계와 시행(design & develop)이 합쳐진 리슈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현재까지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소비가치로서의 공동소(共同所) 찾기’에 질문을 던지며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공존을 위한 병치, 사이 존재로서의 건축으로 질문을 확장하며 활동 중이다.
김인성
김인성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원도시건축에서 실무를 익힌 뒤 영국 셰필드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디자인 리서치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축에서의 시간성과 건축적 재현의 문제’를 다룬 학위논문을 정리해 2010년 『Drawing Time with Temporal Drawing 』을 출간했다. 또한 시간성의 철학이론들을 접목한 건축비평 활동으로 2018년 「건축평단」의 평론상을 수상했다. 건축사 취득 후 설계사무소를 운영했고 현재 영남대학교 주거환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