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12월호 (통권 673호)
[PROJECT] 새로운 유형의 건축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건축 유형이 있다. 종교 중심 사회였던 중세시대 유럽의 대성당, 산업혁명기 대량생산을 위해 등장한 공장과 노동자를 위한 공동주택이 그렇다. 이러한 관점을 그대로 옮겨 기술과 정보가 중심이 된 현대를 보여주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을 꼽으라면 데이터센터가 아닐까. 정부, 기업, 연구 조직에서 운영되던 전산 공간은 인터넷 상용화와 모바일 기술의 발전을 배경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오늘날 ‘데이터센터’라는 이름의 필수 기반시설이 됐다. 급속한 기술 진보에 맞춰 사람들은 미래 데이터센터의 모습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집중화된 초대형의 단일 또는 클러스터 형태로 귀결되거나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정보가 분산되며 극단적으로 축소돼 물리적 형태를 띠지 않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 데이터센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관련 법규와 조례가 시행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2018년 데이터센터는 「건축법」에서 규정하는 건축물 용도 중 ‘방송통신시설’로 추가됐으나 여전히 에너지 관련 법규 및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병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데이터센터 산업의 중요성이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데이터센터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그중 건축설계 분야에서 보면 자사형(enterprised) 데이터센터와 상업용 또는 임대형(internet) 데이터센터로 나눌 수 있다.▼1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2023, 이하 각 세종)은 자사형 데이터센터로 사람, 환경, 기술에 기반한 독자적인 개념과 철학 아래 만들어졌다. 각 세종에 앞서 네이버의 첫 자사형 데이터센터였던 각 춘천(2013)이 무형의 가치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수장고 기능에 충실했다면 각 세종은 보다 일상과 밀접해진 데이터센터로 그 의미와 기능이 확장됐다. 각 세종의 설계 착수 시점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는 물리적인 활동의 제약을 IT기술로 극복하는 가능성을 경험했다.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이 태동하는 지금, 각 세종을 통해 이에 대한 건축적 논의가 보다 활발해지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게 되길 희망한다.
초기 배치 스터디 스케치
마스터플랜
각 세종은 약 9만 평의 대상지에 서버동, 운영동, 숙소동, 두 개의 안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스터플랜 계획 초기에는 콘텍스트를 배제하고 서버동과 운영시설 같은 주요 프로그램들 간의 관계에서 출발해 네트워크 토폴로지▼2를 활용한 여러 시나리오를 스터디했다. 그중 발주처의 운영 방식에 맞는 토폴로지들을 1차로 선정한 다음 안을 발전시키면서, 분산되어 있던 매스들은 두 개의 큰 클러스터가 호(弧) 형태로 맞물린 모습으로 정리됐다. 최종 선정된 대상지는 부용산에서 금강으로 물길이 흘러가는 비탈진 경사면에 위치한다. 물길에서 부는 계곡풍을 자연 환기에 활용하기 위해 계곡을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서버동과 운영동을 배치하고 이 둘을 기능적으로 잘 연결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다. 자연 속에 도시적 스케일로 개발되는 대규모 시설이다 보니 프로젝트 시작부터 환경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단계별 확장을 고려해 보존 영역을 최대한 확보하고 주요 시설을 한데 모아 집중 배치했다.
설계 단계에서 시설들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토목 및 조경 계획이 기존 환경의 흐름을 단절하거나 고립시키지 않도록 생태 및 식생조사 등 철저한 사전조사를 병행했다. 환경 이슈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다학제적 복잡성과 특수한 기능에 따른 사전조사 및 컨설팅이 단계마다 요구됐다. 특히 소음영향 분석, 일조영향 분석, CFD 시뮬레이션, 외기영향CFD, 지진위험도, 위험요소 평가, 방재계획 및 보안, 안전 등 특수 분야별로 전문가와 긴밀하게 협업했다. 각 세종의 설계 과정은 조율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버동, 서버를 위한 공간
데이터센터를 규모로 설명할 때 면적이 아닌 전력 용량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단계별 확장이 완료된 최종 형태의 각 세종은 수전량 270MW로 현재 아시아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데이터가 많이 모일수록 물리적 공간과 에너지 소요가 정비례로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현재까지 데이터센터 운영 측면의 기술력은 대공간에 서버를 최대한 설치해 운영의 가변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고, 에너지(전력)를 소비하는 서버에서 발산하는 열부하를 처리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데이터센터의 층고부터 구조 경간, 로딩 도크(loading dock), 승강기 크기, 출입문의 너비와 높이, 하드웨어까지 일반 건축물보다 큰 보이드 볼륨을 요구하며, 대단위 에너지 수요에 따른 MEPF(Mechanical, Electrical, Plumbing and Firefighting) 장비 규모와 수량은 도심 인프라 수준에 육박한다.
그중 핵심 시설인 서버동은 기계, 전기실로 구성된 지하 3개 층과 서버실로 구성된 지상 2개 층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다. 건축적으로 보면 서버동은 600×1,200mm 바닥면적을 지닌 랙에서 출발한다. 이 랙들이 모여 1열을 만들고, 열들이 모여 세트를 이루며 하나의 영역(zone)을 형성한다. 이 영역이 7~8개가 되면 하나의 서버실이 되는 식이다. 랙이 정해지면 랙당 전기 용량 또한 결정되는데, 발주처에서 요구한 용량에 맞춰 랙의 개수와 서버실을 구획하며 전체 볼륨을 조정했다. 최하층의 대부분은 서버실 쿨링을 위한 저수조로, 지하 2층은 기계실로, 지하 1층은 전기실로 계획됐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설비일수록 저층부로, 전기를 사용하는 장비는 상층부에 설치해 데이터센터 운영 중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서버동의 지상층은 대부분 서버실로 구성된다. 서버실의 열부하를 낮추기 위한 네이버의 독자적인 기술인 나무(NAMU, Naver Air Membrane Unit)를 활용하고, 외기를 흐르는 물에 투과시켜 기화 작용을 통해 적정 항온항습을 유지한다. 결국 외기를 원할히 유입할 수 있는 입면 디자인과 대상지의 미시기후를 고려한 배치계획에 많은 논의가 필요했다. 그에 따라 서버동의 정면과 배면의 대부분은 흡기(breath-in)를 하고, 지붕의 공조타워는 배기(breath-out)하여
열기를 배출하도록 설계했다.
우리는 마스터플랜에 맞춰 주요 시설이 돋보이지 않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배경으로서의 건축’을 목표로 삼았다. 서버동의 저층부 외벽 마감은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해 구조적 안정성과 지역적 생태 요소와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고민했으며, 서버동 저층부는 데이터센터를 떠받치는 기단인 동시에 경사 대지의 횡력을 견디는 옹벽으로 콘크리트 외벽의 텍스처와 물성이 검박하게 읽히도록 했다. 반면, 서버동의 상부는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알루미늄 패널을 적용하되 본연의 물성을 고려해 도색이 아닌 표면에 산화 처리한 아노다이징으로 마감했다. 주요 시설의 모든 외벽 마감은 화려함보다는 기능에 충실했다. 특히 거대한 서버동 매스가 부각되지 않고 최대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입면을 디자인했다.
운영동, 일하는 인간을 위한 공간
서버동은 서버가 기준(machine scale)이 되는 공간이지만 운영동은 교대로 24시간 근무하는 인간의 공간이다. 서버동은 이성적으로 데이터 기반의 정량적 가치에 집중했다면, 운영동은 사람의 감성, 인문학적 기반의 정성적 가치를 좀 더 고려했다. 특히 운영동의 경우 근무자의 업무 공간이 대상지 주변의 자연환경과 연계되도록 공간의 크기와 성격을 결정했다. 기계적인 서버동 공간에서 느꼈던 피로와 고단함을 자연에 노출된 업무 공간(workstation)에서 해소하기를 바랐다. 운영동 지하는 서버동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MEPF 설비 공간과 주차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하 1층부터 지상부는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업무 및 공용부 공간이다. 지상층 역시 서버동과 브리지로 연결되어 데이터센터 관리자가 외부 공간을 거치지 않고도 신속하게 다양한 운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지하 1층의 로비 공간은 대지의 경사와 저층부의 중정을 활용해 풍부한 채광과 환기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154kV 수전 설비는 이중 슬래브로 보호된 운영동 지하 공간에 위치한다. 해당 전기실의 154kV 고전력을 22.9kV로 강하시켜 서버동의 스파인(Spine, MEP corridor)을 통해 서버동 전기실을 거쳐 각 서버실로 380V를 송전한다. 이는 마치 도시 인프라 규모의 변전소를 운영동 지하 공간에 설치하고, 송전탑 기능의 지하 공동구를 통해 서버동과 연결하는 형태와 유사하다. 기계, 전기, 소방 설비의 거대한 규모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MEPF 배관 및 설비 트레이, 덕트의 배치는 BIM 시뮬레이션을 통해 건축 및 구조와의 간섭을 피하고 숨은 설비 공간을 찾고자 했다.
초기 배치 스터디 모형 / Image courtesy of Junglim Architecture
기술, 로봇과의 공존
각 세종에는 데이터센터 서버실 환경을 제어하는 기술과 함께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로봇과 자율주행기술이 적용됐다. 로봇은 실외와 실내에서 각각 활동하며, 실외에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도입했고, 실내용 로봇은 서버실과 보관실 사이를 오가는 운반 로봇, 데이터센터 보관실을 운용하는 로봇, 서버실 장비를 스캔해 감시하는 로봇 크게 세 가지가 개발됐다. 건축은 이러한 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로봇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먼저 로봇의 원활한 이동을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설계 초기, 로봇을 위한 설계 기준이 부족하다 보니 네이버 랩스 연구진도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해 건축에 어떤 기술이 담겨야 하는지 협의하는 과정도 거쳤다. 바퀴로 구동되는 로봇 특성상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무장애 설계에서 출발했다. 설계 후반에는 수평적으로는 바퀴 구동에 장애가 없는 바닥 마감 재료를 선정하고 문턱, 계단 등의 단 차이를 최소화하는 한편, 수직적으로는 승객 및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로봇과의 통신 인프라를 제공하여 장비 운송, 사용자 안내, 실내외 이동 등 다양한 로봇 기술을 결합했다. 로봇이 공간과 방위를 인식할 수 있도록 QR코드화된 사이니지도 협력사와 함께 개발했다.
각 세종은 로봇과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건축이 사람의 관점에 맞춰 설계를 했다면 각 세종은 로봇의 관점에서도 같이 고민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다. 미래지향적 기술을 건축에 접목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미래 기술에 대한 사유는 설계 및 기획 초기 단계에는 열린 구조로 가능성을 최대한 수용해야 하지만, 실제 설계에 적용해 구현하는 시점에는 현실의 제약과 프로젝트 운영 시점을 고려한 적정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 건축은 기술 자체의 발전보다는 그 기술을 어떻게 어디까지 담아낼 것인가에 생각의 추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건축과 기술을 함께 고민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각 세종을 통해 이러한 사유가 보다 확장되길 희망한다.
(왼쪽부터) 2차 설계공모 당선안 조감도, 최종 조감도, 최종 모형 / Image courtesy of Junglim Architecture
1. 국내에서는 임대형 데이터센터를 IDC보다는 Collocation Data Center라는 용어로 통칭해 사용하기도 한다.
2. IT용어로 네트워크 요소들의 물리적, 논리적 연결 구조를 뜻한다. 물리적 토폴로지는 다양한 네트워크 노드(또는 기기)와 노드 사이의 링크(또는 통신회선)를 물리적으로 배치하고 연결한 구조를 의미한다.
출처: 『IT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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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원, 김민성, 김민수, 김영완, 김용만, 김태균, 김현기, 김효중, 박민호, 박지완,
세종시 집현동 4-2생활권 산업4-12 블럭
방송통신시설(데이터센터)
293,697m²
32,703.27m²
143,847.4m²
지상 4층, 지하 3층
207대
35.75m
11.14%
18.59%
철골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노출콘크리트, 아노다이징 알루미늄패널
석고보드, 노출콘크리트
(주)네오크로스구조엔지니어링
(주)한일엠이씨
(주)정우디씨
현대건설(주)
2020. 3. ~ 2021. 8.
2021. 6. ~ 2023. 8.
네이버
조경설계 서안(주), (주)조경설계 비욘드
한미글로벌(주)
프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