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2월호 (통권 675호)
운동성을 품은 타워형 주택
대지에서는 남한강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강쪽으로 전망이 열린 곳은 서쪽이었으나 마당을 남쪽에 둔 남향집을 지어야 했기 때문에 배치가 쉽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웃 건물이 남향 뷰를 성벽처럼 막고 있어 시선을 차단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그렇다고 ㅁ자형이나 ㄷ자형처럼 건물의 폭을 줄인 중정형 건물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중정형은 건물 자체가 레이어를 형성해 주변의 시선을 차단하는 스크린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했으나 대지는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했다. 건물을 쪼개서 저층으로 깐 중정형보다는 뭉쳐서 높이 올린 타워형이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ㅁ자형이나 ㄷ자형과 같은 저층 중정형은 개구부가 수평으로 퍼질 수 있기에 중심을 하나가 아니라 여러 지점에 다중으로 만들 수 있다. 평등한 공간의 산개 속에서 위치에 따라 수평으로 나열된 벽의 켜는 공간의 깊이감을 형성한다. 이 깊이감은 멈춰 있는 공간에 시간성을 부여하며 마치 공간이 움직이는 것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 반면 타워형의 태도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외피 면적을 줄이고 코어를 통한 동선, 설비 등의 순환을 구조적으로 체계화하면서 공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워형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상승을 향한 욕망이 아닐까?
타워형으로 배치하고 매싱하기 시작했지만 공간적 탐구는 ‘멈춰 있는 공간이 어떻게 무한히 확장하고 응축하는 운동성을 갖게 되는가?’에 있었다. 타워형이지만 운동성을 품은 집. 여기에 내 작업의 역설이 있다. 공간의 영역을 중첩시키고 동시에 벽체의 모서리를 창문으로 열면서 둘러싸인 벽체 밖 혹은 공간 넘어 항상 무엇이 더 있는 듯한, 다시 말해서 벽체가 내외부를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내외부를 연결하는 요소로 작동하기를 원했다. 현대건축에서는 상호관입(interpenetration) 혹은 투명성(transparency)이라 부르는 이러한 공간 설계 기법을 나는 한옥에서도, 서구 건축에서도 보았다. 이러한 공간감을 ‘게으른 송골매’(「SPACE(공간)」 663호 참고)를 포함해 여러 차례 주택에 시도하며 떠오른 질문은 ‘공간의 운동성이 집이라는 기능에 적합한가?’였다. 집이지만, 아늑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 같은 방이 형성되지 않고 도시 길거리의 어느 구석에 있는 듯한 느낌.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거친 파도의 파괴적 잠재성 위에 부유하는 듯한.
목구조의 민낯과 가면
타워형이 되면서 덩어리감을 만들었고 동시에 각 공간에 빛을 효과적으로 유입하기 위해 천창과 대청마루 등의 요소가 삽입됐다. 덩어리를 만들고 파냈다고 해야 할까? 빛을 유입시키면서도 깊이감을 만들어 외부의 직접적인 시선을 완화하고자 했다. 또한 직사광, 반사광, 그림자 등이 어우러져 공간에 빛의 질감이 입혀지기를 바랐다. 이것은 다소 풀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낳았다. 벽이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아 풍하중이나 지진에 견디는 횡력이 나오지 않았고, 서측과 남측이 동시에 열려야 하기에 횡력을 잡아줄 충분한 벽체 면적이 부족했다. 서쪽 뷰를 막아 벽체 면적을 늘리자고 제안했으나 그것은 의뢰인의 옵션에 없었다. 의뢰인은 서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강을 전망하기 위해 이 땅을 선택했다. 그래서 중간중간 ㄷ자로 벽을 접었다. 횡력을 잡아주는 구조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기둥이 개별 구조로 인식되기보다는 기둥 네 개가 하나의 기둥 다발로 보이기를 바랐다.
의뢰인은 처음부터 목구조의 미를 극대화하기 원했기에 구조, 외장재, 내장재 모두 나무를 사용하기로 했다. 구조와 재료의 순수성을 통한 어떤 절제미를 요구했다. 여러 번의 미팅을 거치니 의뢰인이 일반 하우징 업체들이 공급하는 주택 상품에서 보이는 덕지덕지 붙인 듯한, 굳이 비유하자면 몸에 어울리지 않은 듯한 옷을 입힌 건물에 염증을 느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균형 잡힌 몸을 만들어야 했고, 그곳에 적당히 순수한 체형이 드러나고 가려지고 숨겨지는 곳이 있어야 했고, 또 과장되고 축소되는 부분이 있어야 했다.
목구조의 특징은 노출 부재가 외부에서 내부까지 끊기지 않고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목구조 이외의 어떤 재료도 이렇게 사용될 수 없다. 철이나 콘크리트 역시 구조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열교현상으로 인해 열교차단재를 삽입하거나 내부는 단열재로 감싸야 하기 때문에 노출재로서 내외부를 하나의 부재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러한 목구조의 특징은 매우 긴 처마를 수평적으로 돌출시킨 것에서 나타난다. 조적조를 바탕으로 발전한 서구는 건물을 높게 올리는 것으로 건축 기술자의 능력을 보았다면, 동양은 처마를 얼마나 길게 옆으로 빼는가로 대목장의 기술을 보지 않았는가. 또 다른 특징으로 목구조는 강접합이 되지 않는다. 모든 조인트는 힌지 조인트로 봐야 한다. 그래서 처마를 길게 빼려면 자연스럽게 외팔보(캔틸레버) 형식이 되고 외팔보 형식이 되니 자연스레 위에서 아래로 눌러주는 하중도 중요해지면서 부재 간 결구가 발전하게 된 것은 아닐까? 곧은 마음 집의 목조들은 어떤 것은 진짜로 하중을 받고 어떤 것은 가짜로 하중을 받는다. 민낯과 가면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같은 모습으로, 모두가 똑같이 노출되어, 마치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기술이고 물질적이지만 동시에 시적이고 존재론적이다.
관건은 나무가 관리하기 쉽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외벽에 직접적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길고 넉넉한 처마는 필수적이었다. 여기서 처마는 기능적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날개로 비상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처마 사이사이 수평으로 삽입된 고측창은 지붕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에 더해 목재보호재로 나무의 표면을 조개껍질처럼 만들어주는 규화제를 도포했다. 외벽에 나무를 사용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면 1,000년이 넘어서도 살아남는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처럼 목재 사이딩 외장재의 수명을 무한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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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건축건축사사무소(박진택)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단독주택
1,235m²
214.54m²
403.31m²
본채 - 지상 2층, 황토방 - 지상 1층, 주차장 - 지하 2층
5대
본채 - 7.75m, 황토방 - 4.76m, 주차장 - 7.06m
17.37%
17.64%
본채, 황토방 – 목구조, 주차장 - 철근콘크리트조
규화목
히노끼합판
(주)채우림, 나나키건축설계실
건축주 직영
2018 ~ 2021
2022 ~ 2023
채완수
안상수
그는 AA 스쿨의 실험적 건축이론과 시공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2016년 한옥의 건축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했고 2017년부터 2년간 홀로 집을 지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설계와 시공이 일체화된 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