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9월호 (통권 682호)

©JB Menges / Image courtesy of Bordeaux Metropole

©JB Menges / Image courtesy of Bordeaux Metropole
OMA의 렘 콜하스, 크리스 반 두인이 총괄하고, 질 기요가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은 시몬 베유 브리지의 오프닝 행사가 지난 7월 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렸다. 렘과 질 등이 참여한 토론에 이어 시민, 건축가, 조경가, 시장 등이 모여 다리 위를 행진하는 이벤트도 진행됐다. 그 사이에 크리스와의 대화도 이뤄졌는데 이를 바탕으로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디자인의 시몬 베유 브리지가 품고 있는 잠재성을 들춰보려고 한다.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초승달 모양의 지형으로 인해 ‘달의 항구’라 불린다. 보르도의 동쪽에는 가론 강이 흐르고, 이 강을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보르도의 랜드마크인 부르스 광장, BIG가 설계한 복합문화공간 메카(2019), 그리고 최근 완공된 시몬 베유 브리지가 자리한다. 보르도는 보르도의 남쪽 구역인 유라틀랑티크를 활성화시키고자 공모전을 열었고, 이에 OMA는 보르도 유라틀랑티크 마스터플랜(2011)을 제안한 바 있다. 기차역, 창고 등이 있는 이 구역에는 현재 큰 단위의 주거용 건물들이 다수 지어지는 상황이다. 한편, 보르도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다리는 아래 도시인 베글르와 강의 맞은편 도시인 프루아라크를 잇고, 베글르 남쪽의 고속도로는 다른 도시와 연결된다.
공공 공간, 도시 속 거점과 맞물리는 이러한 위치에 건축가는 어떤 다리를 짓고자 했을까? OMA는 총 너비 44m, 길이 549m의 다리를 설계했다. 지자체의 기존 요구였던 20m 너비를 두 배가량 넓힌 규모로 다리의 양쪽 끝에는 각각 6.8ha, 5.2ha의 그린 스페이스가 계획됐다. 다리의 너비, 입구의 그린 스페이스는 이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아이코닉이 아닌 안티-아이코닉
OMA는 무엇보다 한정된 예산을 구조적 디자인에 사용하지 않고 다리의 너비를 넓히는 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다리 너비의 반가량(18m)을 보행자에게 내어줬다. 이러한 선택의 내막에는 OMA의 과거 작업과 리서치 작업이 자리한다.
OMA는 익히 알려진 보르도 주택(1998)뿐 아니라 보르도 내 여러 작업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가론 강을 두 번 가로지르는 곡선 형태의 선을 통해 다른 지역들을 잇는 ‘달의 보르도 항구 / 건축 89’ 아이디어 공모전(1989), 도시 속 공공을 위한 여백을 강조한 보르도 유라틀랑티크 마스터플랜 제안안이 이번 작업과 밀접하다. 토론에 참가한 비평가 장 아탈리는 두바이 르네상스 계획안(2006)과 〈2012 베니스비엔날레: 공공 건축〉(2012) 또한 이번 작업과 연관된다고 분석했다. 두바이 르네상스 계획안은 과시적인 외관을 가진 두바이의 기존 빌딩들과 대비되는 납작한 상자 형태로 디자인한 작업이며 〈2012 베니스비엔날레: 공공 건축〉에는 건축을 둘러싼 여러 맥락을 뒤로 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앞세우는 설계 경향에 대한 회의가 담겨 있다. 이러한 선례 위에 보르도에 새로운 축을 형성하는, 안티-아이코닉을 표방한 시몬 베유 브리지가 위치한다. 단선의 평평한 판, 군더더기 없는 사각기둥으로 계획된 다리는 멀리서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연한 분홍색으로 마감된 난간, 조명 및 레일의 역할을 하는 원통형 스틸 등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디테일이 드러난다. ‘평범해 보이도록 디자인된’ 시몬 베유 브리지 뒤에 건축가보다는 건축을, 형태보다는 프로그램을 앞세운 ‘건축가’가 있는 것이다.

시몬 베유 브리지 모형 ©Frans Parthesius
이처럼 다리가 별다른 장식없이 완성된 이유는 아이코닉한 건축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지만, 너비를 넓히고 보도와 차도 사이 단 차이가 하나도 없이 설계된 데에는 보행자와 자동차 간의 위계를 재설정하고 있는 유럽의 도시 경향과 연관한다. 유럽에서는 차도를 길 끝으로 내몰고, 보도를 길 한가운데로 끌어오는 등의 급진적인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OMA는 이러한 보행 친화적인 설계 흐름에 편승하면서도 구분되는 방법론으로 리서치를 활용한다. 우선, 렘은 이 작업의 영감을 베니스의 리알토 다리(1588)에서 얻었다고 전했다. 리알토 다리는 1800년대까지 베니스의 대운하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다리였으며, 상점들이 양측으로 배열된 구조에 힘입어 현재까지 그 구역 일대는 베니스의 대표적인 상권으로 꼽히고 있다. 다리의 상징성과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생성된 서사 덕분에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문학 작품은 물론, 존 러스킨이 베니스 건축을 분석한 연구서 『베네치아의 돌』에서도 호명됐다. OMA는 가론 강의 기존 다리들을 이용자 관점으로 분석하기도 했는데, 자동차가 상용화되기 전에 설계된 피에르 다리(1821)를 제외하고 이후에 세워진 여섯 개 다리를 주요하게 점유하는 건 자동차와 트램이었다. 리알토 다리와 비교하면 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잠재적 에너지와 행위가 제한된 것이다. 이에 OMA는 시몬 베유 브리지 너비의 반가량을 보행자에게, 나머지를 자전거, 트램, 버스, 차에 할애하면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산책, 조깅, 피크닉을 하고 때로는 마켓, 퍼레이드 등이 열리기를 기대했다. 넓은 인도에서는 상시로 행사를 열 수 있으며, 더 큰 규모의 행사가 필요할 경우 유닛으로 설치된 조명 겸 레일을 분리해 차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고려됐다. 실제로 오프닝 행사에서는 차의 이동을 막고 DJ 세트가 설치된 자전거의 뒤를 따라 행진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차가 없는 보행자에게는 차를 얻어 타거나, 버스, 택시를 타지 않는 한 다리 위에서 시티뷰를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시몬 베유 브리지는 5km 이상 떨어진 보르도 도심의 풍경을 외곽에 자리한 다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탈중심적이며, 운전자에서 보행자로 이용의 주도권을 옮기고 공공시설을 공공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전복적이다.

프로그램 시나리오
미로 속 산책이 아닌 고리 위 산책
안티-아이코닉, 보행 친화적인 도로 등 건축물 자체를 건축 및 도시사적인 흐름 안에 위치시키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이 다리가 도시 안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동할지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크리스는 2023년 ‘뉴홍익: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조성사업 국제지명 설계공모’(이하 뉴홍익, 「SPACE(공간)」 675호 참고)의 당선을 주도해 근래 국내에서도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는 시몬 베유 브리지를 OMA의 작업 중 “가장 지루한 디자인(지루해 보이도록 의도한 디자인)”이라 언급한 데 반해, 가장 흥미로운 작업 중 하나로 뉴홍익을 꼽았다. 뉴홍익은 인구와 건물의 밀도가 높고 레벨 차가 심한 대지에 위치한다. 이 상황과 지형을 매듭짓는 해법으로 그들은 지하에 교실, 연구실, 오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넣고, 다양한 레벨을 가진 홍대 거리, 홍익대학교, 와우산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축을 만들었다. 이를 ‘미로 속 산책’에 비유한다면, 시몬 베유 브리지는 ‘고리 위 산책’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크리스에 따르면, 서울에는 시위 등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 고궁 안에 자리한 정원 등 큰 규모의 오픈 스페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유럽권과 비교하면 그 개수는 현저히 적으며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파리의 경우, 개방된 공간이 도시의 점조직처럼, 그리고 긴 축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튈르리 정원이라는 오픈 스페이스를 확장하기 위해 계획된 샹젤리제 거리가 대표적인 예다. 크리스는 유럽권에서 오랜 기간 발전해온 이 도시 문법이 뿌리에 자리했기에,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작업할 때 발주처가 요청했던 사항들 - 오픈 스페이스를 더 작게 만들어 달라, 시설물을 추가해 달라 등 - 을 보르도가 요구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도시 문법에서 기인한 넓게 열린 다리는 ‘플랫폼’을 자처하며 보르도의 오픈 스페이스(길)와 프루아라크의 오픈 스페이스(녹지)를 연결한다. 또한 1년 남짓 후 양쪽 입구 부분에 그린 스페이스가 완공된다면, 보르도 쪽에서는 총 길이 10km에 달하는 원형의 오픈 스페이스가, 프루아라크 쪽에서는 강변을 따라가는 그린 스페이스가 형태를 갖추게 된다. 뉴홍익 비평에서 장용순(홍익대학교 교수)이 말한 것처럼, 뉴홍익의 여러 개의 선들이 “도시적 동선들을 엮어서 만든” “미로”라면, 시몬 베유 브리지의 단 하나의 선은 양쪽의 오픈 스페이스를 묶는 고리인 셈이다. 타 도시와의 높아진 접근성, 드넓은 보도가 가져다 준 공공성, 주변의 오픈 스페이스를 엮는 확장성을 품은 이 고리는 보르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오픈 스페이스 매핑. 1년 남짓 후 양쪽 입구 부분에 그린 스페이스가 완공된다면, 보르도 쪽에서는 총 길이 10km에 달하는 원형의 오픈 스페이스가, 프루아라크 쪽에서는 강변을 따라가는 그린 스페이스가 형태를 갖추게 된다.

도시 스케일 모형
토론의 말미에서 한 시민은 한정된 차도가 야기할 교통 체증을 우려했다. 이 우려는 자동차 중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지만, 이는 기존의 도시가 자동차 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일 테다. 이러한 도시에서 보행 친화적인 다리가 어떻게 적응 혹은 변화할지, 그리고 어떤 도시, 건축, 삶의 내러티브 속에 자리 잡아갈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여름철 그늘 하나 없는 이 다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매혹적일지 또한 의문이지만, 필요에 따라 파빌리온과 같은 시설을 설치한다면 비교적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질은 이 평평한 다리를 아이패드에 비유하며 “아이패드가 발명됐을 때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기의 출현이 콘텐츠를 발생시켰다”고 말했다. 2002년 붉은악마 응원, 2016년 촛불시위 때 군중은 차도를 점유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차도가 열린 게 아니라, 차도가 열렸기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기존에 가로막혔던 장소가 열렸다는 그 지점이 사람들을 부추긴 건 아닐까? 그렇다면 기존의 도시에서 제한된 장소를 개방한 것과 같은 이 새로운 다리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 시몬 베유 브리지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사용자와 운영 주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혹은 과하게 중요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잠재성이 크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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