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0월호 (통권 683호)


방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조건이 갖춰질 때 그곳을 방이라 부르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생겨나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어떤 대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은 분명 관념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계기는 대부분 현실에서 비롯된다. 건축주 부부가 “우리는 서로 친한 편이지만 이 집에서는 각자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도 좋겠다”고 말한 순간,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집이 떠올랐고 방이라는 대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했다.
방은 주거에서 주로 쓰이는 독특한 단어다. 하지만 주거가 아니더라도 유아방, 이야기방, 놀이방, 심지어 카톡방에 이르기까지 방이라는 말에는 밀접하고 개인적인 내향의 뉘앙스가 있다. 주택은 개인에 집중하는 건축이다. 주말 주택을 의뢰한 두 건축주와의 대화에서 기억에 남는 특징은 각각 여행과 식도락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는 점과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조리에도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방과 개인생활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관심사였기에 소위 말하는 ‘nR+nLDK’라는 유용한 방법을 따르기보다 방에서 두 부부가 어떤 일상을 보낼지 생각하는 일이 설계 기간 내내 이어졌다.



또 다른 중요한 설계 조건은 연면적이 100m2를 넘지 않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점유하는 방이 달라야 한다는 요구와 한정된 면적은 다소 새로운 방식으로 주택을 설계하도록 이끌었다. 방, 거실, 식당, 주방, 화장실, 드레스룸, 다용도실, 현관 등 주택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여러 실이 하나의 방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방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러한 방들 여럿이 모이는 방식을 구상했다. 이 집에서는 방 하나하나가 어떻게 쓰일지, 방과 방 사이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는지가 중요했다. 기능, 쓰임, 새로운 개념이나 해석과 같은 내적 논리에서 시작될 것만 같았던 방의 아이덴티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집 주변에 존재해온 콘텍스트에서 비롯됐다.
이 집은 바다와 산이라는 자연 속에 놓인다. 서측으로는 소나무 방풍림 너머로 안면도 앞바다를 면하고 있고, 북에서 동으로 ㄱ자 형태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구릉이 대지를 감싸고 있다. 남측에는 주택이 인접해 있으며 필지 경계에 키가 크지 않은 식재가 줄지어 심겨 있다. 이러한 동서남북의 결대로 네 개의 방을 내미는 단순하고 간결한 시도에 집중했다. 방은 서로 다른 크기와 볼륨을 가지며, 스스로 중심이 되는 독립적 공간이다. 손을 펴듯이 네 개의 방을 쭉 밀고 그 단부를 자연과 연결하는 것을 주택 구성의 기본 틀로 삼았다. 이로써 주택은 중심부에서 사방으로 확장되는 형상을 띠게 되었다.

Area diagram
집의 외장재는 백색 탄성스터코인데 이 재료는 집의 형상, 나아가 방의 생성과도 연계된다. 물로 개어서 바르는 재료인 플라스터에서 내가 느끼는 지배적인 감각은 이음매가 없다는 것이다. 여럿으로 나뉘지 않고 끈적하게 하나로 연결되는 성질은 이 집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었으나 하나의 3차원 형상을 가지는 것에 대응한다. 기하학적 촉수와도 같은 네 개의 방은 안방, 거실방, 작은방, 책 읽는 방이다. 그 길이와 폭, 높이는 서로 달라 상이한 모양이나 하나의 볼륨에 방을 하나씩 놓는다는 원칙은 유지된다. 방의 개별성은 그대로 형상으로 이어지고, 형상은 콘텍스트와 만나 잔잔한 개구부와 슴슴한 매스의 변주로 마무리된다. 자연과의 연결은 방에 낸 개구부로 구체화된다. 문과 창을 하나 이상으로 늘리거나 ㄱ자, ㄷ자의 창을 내어 자연과 만나는 방법을 다양화한다. 사방으로 뻗은 방은 중립적인 듯 무던해 보이지만, 방과 외부와의 관계는 저마다 장소특정적이다. 방과 방 사이는 느슨하고, 방과 자연은 긴결하다.
이 집에서 방은 주로 특정 개인에 대응한다. 거실방은 높이가 4m에 가까운 편경사 지붕 아래로 쇼파, TV, 식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과 주방, 화장실로 구성된다. 이곳은 가장 큰 체적을 지닌 방으로, 마당으로 열린 커다란 창과 가로로 긴 ㄱ자 고정창, 미세기문이 설치되어 있다. 거실방에서는 TV를 보고, 마당으로 드나들고, 식탁에서 밥을 먹고, 쇼파에 앉아 쉬거나 대화를 하는 등 주택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이 담길 것이다. 거실방은 주방 싱크대 앞에 섰을 때 인상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가로로 긴 창 너머로 앞마당, 방풍림의 소나무, 백사장,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쇼파에 기대어 쉴 때 마주할 것 같은 이 장면을 부엌일을 하는 동안 볼 수 있게 의도했다. 음식을 조리해서 먹고 정리하는 반복적인 노동이 지닌 가치와 소중함에 대한 감사다.


안방은 드레스룸과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고 3면으로 열려 동측의 나지막한 산과 주택 내외부 공간이 시각적으로 연계된다. 손님을 위한 작은방에서는 모서리 창을 통해 동측, 남측으로 낮은 산과 빽빽한 나무를 볼 수 있다. 안방은 부부가 함께 쓰는 공간이고 작은방은 특정한 대상을 정하지 않은 공간이라 비교적 중립적인 분위기다.
유일하게 2층에 위치한 책 읽는 방은 7.6m2의 작은 공간이다. 일반적인 주택에서 방의 천장고는 평면의 가로, 세로 길이와 비슷하거나 작아 평평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책 읽는 방은 작은 바닥면적 탓에 천장고를 높이고 긴 세로창을 두면서 수직 감각을 의도했다. 계단은 수직성을 증폭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1층과 구분되는 독립성을 만들어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계단을 통해 책 읽는 방은 주택의 다른 영역과 분리된다. 이 방은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가 아니며 면적이 작아서 책장을 놓을 수도 없다.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과 여유로움을 가지는 작지만 여백이 있는 서재다. 사색과 글을 좋아하는 건축주는 창대를 머름 삼아 팔을 걸쳐놓고 책을 읽고, 누워서 높은 천장을 바라보고, 때때로 밖에 있는 발코니에서 안면도의 바닷바람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네 개의 방은 동선의 흐름, 시간의 변화, 쓰임과 목적에 따라 연결되지만 그럼에도 방이 지닌 개별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마다 특색 있는 방들이 서로 엮여 만든 다중심의 집이다. 방을 점유하는 순간 그곳은 스스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하나의 세계가 된다. 고요히 자연이 스미는 작고 무한한 개인의 방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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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건축사사무소(김세진)
배창현, 정우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신야리
단독주택
682㎡
92.9㎡
96.84㎡
지상 2층
1대
8.95m
13.62%
14.2%
철근콘크리트조
탄성스터코, 로이복층유리, 용융아연도금강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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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현
엠케이청효
건축주 직영
2022. 3. ~ 9.
2023. 3. ~ 12.
나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