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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 바라는 것: 살림집 커먼

류창수+건축사사무소 이담

글
류창수
사진
류창수(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류창수
진행
박지윤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4년 12월호 (통권 685호) 

 

 

 

모두의 살림집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살림집은 빵집, 중국집, 꽃집처럼 무엇을 사고파는 집이 아니라 온전히 살림살이만을 위한 일반적 주거 건물을 칭한다. 마당이 없어지고 취침과 식사만이 주된 기능으로 자리 잡은 현대의 집에서 여가, 공부, 손님 접대, 집안 대소사 등의 일상과 중요한 집안 이벤트들은 살림 바깥의 별도의 방과 집을 빌려 이뤄지고 있다. 집이 정주보다 일시 거주를 위한 공간으로 바뀐 탓인지 살림집이라는 표현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살림이 없는 집은 주체로서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소유하거나 꾸며서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대상일 뿐이다. 나의 실존을 증명할 희로애락은 집 밖 공간에서 일어나는 외부의 이벤트로 기억되고 기록되면서 집은 점점 서사를 잃고 물리적인 공간과 가격만 남으며, 계속 교환된다.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면서 개인의 실존의 기억들은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도시의 이곳저곳을 떠돌다 사라진다. 부모님 집을 떠나 스무 번의 이사를 했다. 인생의 마지막 집이자, 크고 작은 희로애락의 감정과 인생 대소사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살림살이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만의 살림집이 아니라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모두의 살림집을. 

 

©Lee Seungwon 

 

 

 

내 집을 설계한다는 것 

건축가는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을 둔 제화공에 빗대어지고는 한다. 정작 자기 식구들은 돌보지 않으면서 남의 집만 지어주는 사람이란 말에는 자조와 자기 합리화가 섞여 있다. 그동안 지은 집들은 내가 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건축주가 내세운 조건들이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내키지 않는 조건일지라도 집요한 설득을 통해 조건을 바꾸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고 건축주의 삶보다 자신의 작품을 우선시하는 오만이라 생각했다. 설계에서 아쉬운 부분이 생기면 이러한 생각은 한편으론 나의 역할 밖이라는 핑계가 되기도 했고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면피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내가 문제를 만들고 스스로 답하는 자문자답의 과정이기에 문제도 훌륭해야 하고 답도 훌륭해야 한다는 강박이 앞선다. 또한 짓고 난 다음에도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 건축주를 항상 대면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원망을 감수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식구들의 믿음을 등에 지고 건축주 각자의 발에 꼭 맞는 신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다른 설계보다 훨씬 더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스스럼없이 쏟아낸 그들의 요구를 즉자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도 만족스런 그림이 될 때까지 계속 묻고 답하는 과정이다. 또한 한순간의 행위나 장면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일년 사계절의 변화는 물론 미지의 시간축에까지 대입하는 과정을 통해 밑그림이 완성된다. 식구들에게 도면과 삼차원 모형으로 아무리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더라도 집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아니 한동안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문고리 하나로도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는 믿음이 원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준공과 동시에 내 손을 떠나는 다른 집들과 달리 내가 그렸던 모든 그림들의 맞고 틀림을 일상 속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설계할 때 마음에 그렸던 장면들과 기대하던 가족사들이 사는 동안 내 눈앞에서 펼쳐질 때 느끼는 기쁨은 분명 건축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일 것이다.

 

 

 

 

 

다섯 살림집과 다섯 개의 마당 

오랫동안 논밭이었던 서울 근교 땅에 도로가 그려지고 지적 측량 말뚝이 박히고 가로등이 꽂히고 조마조마했던 분양 절차를 거쳐 나타난 땅은 혼자서 집을 짓기에는 너무 컸다. 누이네 가족과 함께 집을 짓기로 결정한 뒤에도 집 두 채만으로는 십여 년 안에 닥칠 가족 구성의 변화를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지는 단독주택만이 가능한 택지개발 지구였고 지구단위계획에서 다섯 가구까지 계획이 가능했다. 두 집의 그림이 다섯 집 그림이 되면서 내 마음에는 벌써 마당에 사람들로 북적대는 결혼식 장면이 그려졌고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새 식구들과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건축주로 추가됐다. 미래의 새로운 가족 구성을 담아내기 위한 다섯 가구의 살림집을 ’따로 또 같이’ 사는 특별한 가족공동체 주택으로 만들고자 한 구상의 밑그림은 땅을 여러 채로 나누고 채와 채 사이에 다섯 개의 작은 마당을 만들면서 완성됐다. 각 채의 지붕 아래 독립된 살립집 공간을 만들고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은 별도의 공유 공간으로 계획했다. 편하게 손님을 맞이하거나 가족 모임을 할 수 있는, 커먼룸이라 부르는 공유 주방을 중정 마당 한 켠에 만들고, 집에서 운동할 수 있는 홈짐(home-gym)과 공부나 업무를 볼 수 있는 스터디룸, 놀거나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작업 공간을 지하에 만들어 마당을 통해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게 했다. 

 

 

 

 

 

건축보다 오래될 기억 

단순한 집의 형태와 간결한 마감을 선택한 것은 집이 하나의 도드라진 건물의 이미지로 드러나기보다, 마당의 대문을 들어선 이후 펼쳐지는 살림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 집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각자의 개인사와 때론 특별한 가족사들이 차곡차곡 쌓여, 세대를 이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유년 시절의 일부였던 시골집 마당에 들어서면 타작을 할 때 사방으로 날리던 지푸라기와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여름 땡볕 아래 숯 검댕을 얼굴에 바른 할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젊었던 아버지와 철없던 나는 아직도 그 마당에 함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오래된 기억을 형제, 누이들과 나누는 것처럼, 언젠가는 부재할 삶들의 실존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이 이 집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기억으로 빚어질 수 있다면 건축에게 더 바랄 것은 없을 듯하다. 

 

 

 

월간 「SPACE(공간)」 685호(2024년 1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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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류창수(이화여자대학교)+ 건축사사무소 이담(최종문)

설계담당

박예서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용도

다가구주택

대지면적

583.8㎡

건축면적

288.69㎡

연면적

666.2㎡

규모

지상 1층, 지하 3층

주차

6대

높이

12.11m

건폐율

49.45%

용적률

83.75%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목구조

외부마감

외단열 마감(STO), 종석미장, 징크 지붕, 로이 삼중유리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강마루, 마이크로 토핑

구조설계

창민우구조컨설탄트

기계설계

맥앤드씨

전기설계

극동전력에프엠

시공

케이에스피앤씨

설계기간

2021. 1. ~ 2022. 6.

시공기간

2022. 7. ~ 2023. 8.

건축주

류정숙, 류창수, 이희원


류창수
류창수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를, 영국 AA 스쿨 대학원에서 건축 및 도시 설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건축사를 취득했다. 창조건축, 영국 RHWL 아키텍츠, 해안건축 등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2006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최종문
최종문은 건축사사무소 이담의 대표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를,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에서 건축 및 도시 계획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업 후 한국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했으며, 2009년 본인의 사무소를 개설했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근린생활시설 및 소규모 공동주택을 주로 진행하며, 공공건축물에 관심을 갖고 공공도서관과 실내체육관 등의 작업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부에 출강했으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역임했다.